▲ 세계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칵테일 위기가 고조되면서 유럽 경제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출처= Focus Economics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유럽 경제는 2017년에 수십 년 만에 최고의 실적을 구가했다. 아마도 그런 호경기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유럽 경제가 올해 들어 이상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유로화는 올해 들어 새로운 무역 장벽, 브렉시트에 대한 불확실성, 정치적 갈등으로 신뢰가 떨어지고, 은행들이 큰 압박을 겪으면서 올해 유럽 경제성장은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CNN이 10월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세계 최고(最古) 은행인 베렌버그 은행(Berenberg Bank)의 플로리안 헨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칵테일 위기(Cocktail of Risks, 여러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뒤섞여 일어나는 현상)가 고조되면서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중앙은행은 유로존 성장률이 올해 2%로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보다 더 높은 성장률(2.5%)을 구가했던 유럽이 1년 만에 다시 미국의 성장률에 뒤처진 것이다.

기업들은 이미 한기를 체감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IHS 마킷(IHS Markit)이 10월 25일 발표한 구매 관리자 설문 조사에 따르면 유로존 경제는 10월 들어 2년여 만에 가장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세계 무역 분쟁이 유럽 수출 수요를 감소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불길한 것은 미래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4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경제 연구소인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스티브 브라운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곳곳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돼 투자 결정이 지연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유럽 ​​중앙은행(ECB)은 10월 25일, 오는 12월에 경기 부양책을 종료한다는 계획을 재검토할 만큼 데이터가 암울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ECB는 2015년 이후 정부 채권 매입을 통해 2조7000억유로(3500조원)를 시장에 쏟아 부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확실히 모멘텀이 떨어지긴 했지만, 기본 시나리오를 바꿀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멘텀이 약해진 것이지, 본격 하락세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유탄

미국은 유럽에 철강 및 알루미늄에 대한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 게다가 유럽 기업들은 미중 간 무역 전쟁의 유탄도 맞고 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브라운 이코노미스트는 “많은 기업들이 양국에 완제품에 들어가는 부품을 판매하고 있어 미중 간 무역 긴장은 유럽의 기업들에게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영향을 받는 나라는 최근 무역 활동이 부쩍 줄어든 수출 강국 독일이다. 독일 상공회의소(German Chamber of Industry and Commerce)는 2018년 독일의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하향 조정했다.

IHS 마킷의 조사에 따르면 독입 제품에 대한 해외 주문이 두드러지게 떨어졌고 독일의 자동차 산업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폭주 기관차, 독일 자동차 산업도 고전

독일의 자동차 업체들은 세계 무역긴장과 디젤 스캔들에 새로 도입된 유럽의 차량 인증 시스템으로 생산이 지연되는 등 여러 악재를 정면으로 맞고 있다.

BMW는 지난 9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국제 무역 갈등’ 때문에 목표 이익에 달성하지 못했다고 발표했고, 메르세데스 벤츠의 다임러도 10월 25일, 3분기 이익이 급감했다고 보고했다.

다임러의 디터 제체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자동차 산업 전체와 다임러가 여전히 매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럽 연합이 무역 장벽을 줄이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유럽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거듭 위협하고 있다.

 

다가오는 브렉시트, 불안요소 증폭

예정대로라면 영국은 2019년 3월에 유럽 연합을 떠나야 하지만, 유럽과 영국의 기업들은 영국의 브렉시트가 자신들의 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2016년 6월 영국 유권자들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 투표 당시에 예상했던 것보다도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면서, 영국이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떠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른바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유럽의 넓은 시장에 접근하지 못하는 영국 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영국에 공장이 있는 BMW의 경우, 부품 조달을 확신할 수 없어 브렉시트 직후 최소 한 달 이상은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 재규어(Jaguar)는 브렉시트가 이루어지면 올 크리스마스까지 1000명의 근로자들이 1주일에 3일만 일하게 될지 모른다며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했다.

항공사들도 사업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며, 소비자들은 식품과 의약품을 비축하라는 권고까지 받고 있다.

 

이탈리아 문제, 또 다른 뇌관 될까

유럽의 정치 또한 경제적 안정을 위협하고 있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회는 최근 이탈리아의 예산안이 EU 규정 위반이라며 거부했다. 이탈리아가 내년 예산안에 반영한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2.4%로 전임 정권의 기존 목표치(0.8%)는 물론, 시장에서 평가한 마지노선(2%)을 상회한다. 재정적자를 확대하는 현 정책을 고수할 경우 앞서 유로존을 뒤흔든 그리스처럼 이탈리아발 재정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이탈리아와 EU 간 갈등이 더욱 심화되면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이탈리아의 금융 시장에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탈리아의 경제 전체로 압박이 확산될 것이다.

영국의 금융 중개 서비스 회사 캐피털 인덱스(Capital Index)의 캐스린 브룩스는 “이탈리아는 유로존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국이다. 이탈리아의 재정적 운명은 유로존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