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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가격, 가상화폐發 ‘버블’이었나비트코인·이더리움 경쟁, 산업 판도 변화...예측 어려워

[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글로벌 투자은행(IB)이 반도체 산업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넘친다는 이유다. 산업계서는 산업 변화에 따른 일시적 영향이라며 공급 과잉론에 맞서고 있다. 양측의 의견은 각각 일리가 있는 만큼 어느 편에 서기도 어렵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반도체 산업이 ‘버블’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상화폐를 주 원인으로 꼽는다. 최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는 대목이다. 가상화폐 간 경쟁에 따른 산업 판도 변화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출처:뉴시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반도체 업황에 대해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부정적 전망이 지속되고 있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반면, 주가는 올해 하반기 들어 본격 하락하는 모습이다.

하나금융투자에 따르면 블룸버그 컨센서스 기준 미국과 중국 플랫폼 기업(FAANG, BAT)의 2019년 시설투자 합산 금액은 전년대비 8% 증가에 머물 전망이다. 2018년 성장률 46%를 크게 하회하는 수치다. 서버 DRAM과 SSD 수요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된 이유다.

미국 반도체 섹터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SOX지수는 지난 3월 1400포인트를 상회한 후 등락을 반복하다 최근에는 1200포인트 초반까지 내려왔다. 글로벌 IB들은 반도체의 새 수요처로 지목되는 자동차와 데이터 센터 등에서도 수요가 부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는 일정 수준의 가격조정이 있을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수요처 다변화로 실적 부진은 일시적이라는 평가다.

양측의 반도체 시장 전망을 둘러싼 공방의 중심에는 ‘4차 산업’이 있다.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반도체 시장 전반으로 과도하게 반영돼 있다는 주장과 실수요 증가가 맞닥뜨리는 셈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반된 의견이지만 양측 모두 일리 있는 의견”이라면서도 “반도체 가격이 4차 산업에 대한 기대감을 선반영하고 있다면 다시 가격을 회복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반도체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늘면 기업의 실적은 증가하겠지만 지난해 호황 수준을 언제 넘어설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SOX지수는 지난 2000년 초반 IT버블 당시 1200포인트에 근접했다. 당시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 상승세는 무서울 정도로 가팔랐다. 거품이 꺼지자 이전 수준(약 200~300포인트)으로 돌아왔다. SOX지수가 재차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하반기(2008년 전후는 금융위기로 제외)부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동반 상승했다.

반도체 호황, 이더리움이 만든 버블이었을까

그간 ‘반도체 호황’을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그 이면에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의 영향도 있었다. 암호를 풀기 위해 방대한 계산을 반복하는 만큼 주문형직접회로(ASIC)나 영상처리반도체(GPU) 등 고성능 반도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비트코인 SOX(반도체) 지수 추이(단위: 달러, 포인트) [출처:인베스팅닷컴]

지난 몇 년간 가상화폐 채굴 수요 증가는 GPU업계에 호황을 가져다줬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GPU 가격에 높은 프리미엄이 형성됐다. 그러나 올해 4월 이후 프리미엄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더리움 채굴용 수요가 줄어든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같은 달 중국의 가상화폐 채굴 기업인 비트메인은 이더리움 전용반도체인 E3를 공개했다. 동일 전력 대비 채굴 성능이 GPU 대비 2배가 넘는다. 이 또한 GPU 가격 하락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더리움은 비트코인과 달리 ASIC이 아닌 GPU 방식의 채굴을 이용한다. 이더리움의 가격 하락이 비트코인 대비 빠르다는 점도 GPU 중심 반도체(메모리) 수요에 부정적이라 할 수 있다. ASIC 대비 대용량 D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 이더리움 SOX(반도체) 지수 추이(단위: 달러, 포인트) [출처:인베스팅닷컴]

이더리움 공동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비트코인 채굴이 ASIC에 집중돼 있다고 말했다. ASIC는 GPU와 E3 대비 월등한 채굴성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가격도 비싸다. GPU와 대규모 투자를 감당할 수 있는 주체만 채굴이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가상화폐 시장에서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요인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더리움은 계산 방식 상 ASIC으로 채굴이 어렵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경쟁, 더 나아가 가상화폐를 향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경고는 반도체 수요에 부정적 요인이다. 현재 가상화폐가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그러나 글로벌IB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암울한 진단만이 시장을 억누르고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현 시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단순 수요·공급 전망만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물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수준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지난해 메모리 가격이 비정상적이었다면 그것은 ‘버블’이고 가상화폐 채굴 관련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 등 변화요인이 있다면 향후 반도체 수요 공급 주체도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성규 기자  |  dark1053@econovill.com  |  승인 2018.10.23  08: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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