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자각에서 시작됐다. 알아가는 것. 자기와 집단을 자각하는 순간 신화와 전설이 생겼고, 이는 역사의 원류가 되어 특정 집단의 내재화된 의식에 긴밀하게 숨어들었다. 마치 아기가 자기와 부모를 인지하고, 사회와 규범을 습득하는 것과 같다.

역사가 시작되며 한정된 영역에서의 자각은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를 바라기 시작했다. 그것이 폭력의 형태를 품으면 전쟁으로, 호기심에서 시작되면 무역이나 탐험으로 가면을 바꿨다. 인류는 이동하고 뻗어나가기 시작하며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조직에 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발전을 거듭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말(馬)이 지대한 역할을 수행한다. 기원전 3000년 동부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말이 인류의 삶으로 들어오던 순간, 인류의 속도는 빨라졌고 덩달아 사고의 흐름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몸이 이동하며 동시다발적인 접촉의 경계선이 무한대로 증가했다. 말은, 속도는 그렇게 인류의 역사를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21세기 우리는 속도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이동하는 모든 것은 ICT 기술과 만나 더욱 강하고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하게 됐다. 여기에 공유경제와 온디맨드 플랫폼이라는 일종의 방법론이 적용됐으며, 모빌리티라는 새로운 가치가 탄생했다. 자동차를 넘어 자전거와 그 외 이동하는 모든 사물은 완벽한 플랫폼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빠르게 변하는 모빌리티의, 속도의 시대. 글로벌 업계는 어떻게 적응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디쯤 와 있을까.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모빌리티(Mobility)의 범위는 크고 넓다. 일반적으로 우버나 디디추싱과 같은 온디맨드 플랫폼을 표현하지만 스마트 모빌리티(Smart Mobility)라는 표현을 통해 그 개념이 더욱 확장되기도 한다. 자동차와 승객을 연결하는 플랫폼 서비스를 넘어 자율주행과 같은 다양한 ICT 기술도 큰 틀에서 모빌리티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모빌리티를 플랫폼으로 인식, 다양한 파생 서비스 전반을 통합 생태계로 인식하기도 한다.

소프트뱅크의 야망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맹주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소프트뱅크다. 손 회장은 비전펀드를 동원해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판을 새롭게 짜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뜨거운 감자다.

소프트뱅크의 모빌리티 야심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우버 공략전이다.

미국의 리프트, 중국의 디디추싱, 싱가포르의 그랩택시, 인도의 올라택시 등은 각자의 협력과 투자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2015년 리프트와 그랩택시, 올라택시는 서로의 협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통일까지 타진했으며 리프트는 디디추싱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현존하는 대표적 플레이어들이 모두 연결됐다는 뜻이다.

그 중심에 소프트뱅크가 있다. 이들 온디맨드 차량업체 모두에 투자한 상태에서 일종의 블록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특유의 투자 감각으로 일찌감치 글로벌 업체들을 연결하고 있다. 당시만 해도 소프트뱅크는 일종의 반(反) 우버 연대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전은 지난해 벌어졌다. 우버가 갖은 추문으로 흔들리며 사업 동력을 급격히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내부였다. 미국 현지 언론을 통해 우버 조직문화에 대한 비판이 나왔으며 강압적인 업무환경에 성추행 폭로까지 나왔다. 여기에 트래비스 칼라닉 최고경영자(CEO)는 트럼프 행정부와 실리콘밸리가 이민자 문제로 긴장감이 높아진 시기, 트럼프 행정부의 자문단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이민자 규제에 반대해 택시기사들이 공항에서 파업을 선언하자 우버 택시기사들이 높은 가격으로 손님을 받아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이외에도 각지에서 벌어지는 우버에 대한 반발도 커졌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가운데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에서 근무한 엔서니 레반다우스키 전 오토 대표를 영입했으나, 그가 알파벳 재직 시절 기밀정보를 빼온 것으로 확인되어 법원에 의해 퇴사 조치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유출된 파일은 9.7㎇로 알파벳 웨이모의 핵심기술인 ‘라이다(LiDAR)’ 회로 기판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탓에 우버는 자사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하나인 구글을 잃기도 했다. 사태는 앤서니 레반다우스키가 퇴사하며 마무리됐으나 우버가 입은 내상은 상당했다.

그 과정에서 애플과의 악연도 재조명됐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우버는 애플 몰래 아이폰을 초기화하거나 우버 앱을 삭제한 이용자를 식별하는 시스템을 구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2015년 초 우버는 한때 애플 앱 스토어에서 퇴출될 뻔 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위기를 타개하고자 우버는 지난 3월 다양성 보고서와 정확한 실적공개를 통해 조직문화 일신을 선언했다. 사실상 회생을 위한 몸부림이다. 임직원 성별과 인종 분포를 분석한 결과 백인과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우버는 소수 인종을 지원하기 위해 3년간 300만달러(약 33억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결국 2017년 6월 11일(현지시간) 트래비스 칼라닉 CEO와 그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에밀 마이클 최고사업책임자(CBO)는 회사를 떠났다.

우버가 흔들리자 소프트뱅크가 움직였다. 글로벌 모빌리티 전략을 추구하며 마지막 남은 퍼즐조각을 맞추기 시작한 셈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017년 9월 소프트뱅크가 우버에 100만달러를 투자할 가능성을 보도했으며, 그해 11월 투자는 실제로 이뤄졌다. 12월에는 소프트뱅크가 우버의 지분 15%를 인수하는 작업을 완수했고, 이후 소프트뱅크는 우버의 대주주가 됐다.

소프트뱅크가 우버의 새로운 ‘운전사’가 됐지만 우버의 사정은 녹록치 않다. 우버는 이미 2017년에 러시아에서도 철수했고 그 이전인 2016년에는 중국의 사업을 매각했으며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8개국의 사업부를 경쟁자인 그랩에 매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소프트뱅크는 글로벌 온디맨드 업체의 강자 우버를 통해 모빌리티 전반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모빌리티의 원조인 우버를 통해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우버는 내년 기업공개를 할 예정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거미줄 같은 합종연횡

우버의 최대 주주인 소프트뱅크는 비전펀드를 중심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까지 끌어들였으며, 중국 디디추싱은 물론 인도의 그랩, 인도의 올라에도 소프트뱅크의 자금이 투입된 상태다. 한동안 반(反) 우버 진영의 핵심으로 활동하던 소프트뱅크가 기어이 우버의 최대주주까지 되며 모빌리티 플랫폼 전략이 선명하게 드러난 상태다. 여기에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웨이모는 미국의 리프트와 협력하며 자율주행차 비전까지 타진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야심은 본거지인 일본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사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4일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문형 차량 서비스 제공 회사 모넷 테크놀로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일본 시가총액 1위와 2위 기업이 만난 셈이다. 모넷은 올해 출범하며 토요타의 자율주행 등 모빌리티 플랫폼에 소프트뱅크의 인공지능 경쟁력을 덧대는 방식이다.

토요타는 자체 자율주행차 기술력을 끌어 올리는 한편, 올해 초 공유 자동차 플랫폼 이팔렛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강자로 활동하면서 자율주행과 차량공유 전반에 강력한 시동을 걸고 있다는 평가다.

글로벌 모빌리티 업계의 행보가 빨라지는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MS)도 나섰다. 동남아 시장에서 우버를 퇴출시킨 그랩에 8일 전격 투자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액수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랩이 올해 30억달러 투자 유치에 나설 것이라 밝혔으며, 이미 20억달러는 조달에 성공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5억달러 수준이 유력하다는 말이 나온다.

현재 토요타는 MS와 제휴를 맺고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으며, 우버에도 투자한 바 있다. 토요타는 8월 27일 우버에 무려 5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토요타의 우버 투자는 이번이 처음은 아닌 데다, 우버만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6월에는 동남아시아 시장에서 우버를 밀어낸 그랩에 10억달러를 투자했고, 최근에는 미국 겟어라운드의 3억달러 펀딩에도 참여했다.

소프트뱅크 동맹군의 일원인 중국 디디추싱도 빠르게 달리고 있다. 이미 글로벌 전략에 돌입했다는 평가다. 유럽 일부 지역에 진출하고 남미에서도 사업을 시작하는 등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남미 진출이 눈길을 끈다. 디디추싱이 브라질 차량공유 1위 업체 99의 대주주가 된 가운데 소프트뱅크가 이미 99에 투자한 대목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리적으로 보면 승차공유 시장의 턱 밑으로 진격한 셈이다.

일본에도 진출했다. 테크크런치 등 주요 외신은 지난달 28일 디디추싱이 일본 일부 지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오사카 일대를 중심으로 국지적인 서비스를 시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역시 디디추싱에 투자한 소프트뱅크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본 정부가 우버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바꾸고 있지 않지만, 소프트뱅크의 지원을 받은 디디추싱의 행보는 그 자체로 신선하다는 평가다.

그랩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월 우버의 동남아 8개국 사업부 지분을 넘겨받은 가운데, 거침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이번 MS와의 협력을 통해 ICT 기술력을 끌어 올린다는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 그랩은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8개 국가 186개의 도시에서 승용차, 오토바이, 택시 등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소프트뱅크의 투자를 받은 곳이다. 그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앱)은 7700만대 이상의 모바일 기기에 다운로드되어 이용되고 있으며, 등록된 운전자도 230만명에 이른다. 소프트뱅크 중심의 모빌리티 진영에서 또 하나의 강력한 첨병이다. 2020년 그랩은 자사 플랫폼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숫자를 1억명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도 세웠다.

우버가 심은 씨앗

소프트뱅크를 중심으로 모빌리티 전략이 빨라지고 있지만, 역시 원조인 우버의 행보부터 되돌아가 짚어볼 여지가 있다. 시장조사업체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 보고서 ‘모빌리티 산업, 인프라 역할 더욱 커진다’에 따르면 우버가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시발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은 우버를 두고 “버스와 택시 등 합법적인 라이선스를 받은 교통 서비스 업체들이 독점했던 운송 시장에서 일반인도 서비스 공급자로 변신, 이용자 친화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승차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며 향후 10년의 모빌리티 시장을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우버는 공유경제에서 온디맨드로의 발전을 끌어내며 비즈니스 플랫폼을 확립한 회사다.

우버가 글로벌 전략을 강화하며 모빌리티의 씨앗을 뿌리자, 각 지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를 내세운 플레이어들이 등판을 서두르고 있다. 리프트와 그랩, 올라를 넘어 새로운 플레이어들도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 알리바바의 행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애플의 투자를 받기도 한 디디추싱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알리바바는 O2O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한편 지난 7월 자회사 오토내비를 통해 새로운 승차공유 서비스 Gaode Jiaoche를 시작했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속도를 내며 빅데이터와 승차공유, 알리페이의 금융 서비스까지 염두에 둔 전략이다. 모빌리티 플랫폼 확장전략이다.

통신사들도 모빌리티에 뛰어들고 있다.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은 “통신사들은 직접적인 승차공유 서비스보다 부가 서비스 확대와 새로운 매출원 발굴, 미래의 유망 서비스 시장을 선점하는 차원에서 기존 택시 업계와의 협력을 통해 움직이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승차공유 서비스가 금지되어 있는 일본에서 도코모와 소프트뱅크가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등 빨라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사례가 도코모다. 도코모는 지난해 11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차량을 빌릴 수 있는 차량공유 서비스 d카쉐어를 출시했고 인공지능 택시 전략도 펼치고 있다. 우버의 운전대를 잡은 소프트뱅크도 디디추싱과 합작사를 설립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우버와 그랩, 올라 등 모빌리티 기업들을 아우르는 연합전선의 맹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