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제8대학교의 프랑스문학 교수이자 정신분석가인 피에르 바야르는 자신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통해 어느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욕 게임’을 묘사한다. 이 게임의 규칙은 단순하다. 모든 사람이 읽었으나 자신은 읽지 않은 책을 찾아내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교양 없음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스스로를 모욕해야 승리할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모욕 게임’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이 게임이 소설 속에서 여러 차례 벌어진다고 설명하는데, 그중 후반부에 전개된 게임은 여러모로 우스꽝스럽고 흥미롭기 짝이 없다. 바로 자존심 센 영문학자 하워드 링봄 교수가 이 게임에 참가하면서부터다. 어떤 이야기인지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책에 인용된 부분을 통해서 살펴보자.

 

그때 갑자기 하워드 씨가 주먹으로 테이블을 탁 하고 치더니 턱을 앞으로 길게 내밀며 말하더군요.

“<햄릿>!”

물론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죠. 그러나 실없는 농담이겠거니 해서 그리 많이 웃지는 않았어요. 한데, 알고 보니 그게 전혀 농담이 아니었던 거예요. 하워드는 로렌스 올리비에의 영화를 보았지 <햄릿>의 텍스트를 읽은 적은 없다고 하더군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어 주지 않자, 그는 그것을 몹시 불쾌하게 여겼어요. 그는 우리에게 자신이 지금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고, 그의 물음에 사이씨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속내를 넌지시 내비쳤죠. 그러자 하워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화를 내더니 자신은 결코 그 극작품을 읽은 적이 없노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더군요.

 

자, 이렇듯 자신의 무지를 당당하게(아니, 사실은 홧김에) 드러낸 하워드 씨는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까? 안타깝게도 솔직함은 그의 인생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얼마 뒤 열린 자격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마 당신도 그저 재미난 우발적 사건이라고만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뒷얘기를 마저 들어보세요. 놀랍게도 하워드 링봄은 그 사흘 후의 면접 심사에서 탈락하고 말았어요. 모두들 영문과에서도 <햄릿>을 읽지 않았다고 공언한 사람에게 감히 자격을 부여할 수는 없었을 거예요.

사실 <햄릿>을 직접 읽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대부분 이 소설의 줄거리를 알고 있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독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 클라우디우스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 하워드 씨처럼 영화를 본 사람도 있을 것이며, 연극이나 뮤지컬을 통해 이야기를 접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은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이야기를 접한 사람도 있을 테고 말이다. (혹여 그 줄거리를 몰랐다고 해도 햄릿의 그 유명한 말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이 소설이 무언가 비극을 다루고 있음을 추측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겠다.)

피에르 바야르는 모욕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며 하워드 씨가 이런 사태를 맞이한 데에는 ‘모호성’을 남겨두지 않은 데에 그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정불능의 문화공간’, 즉 우리가 우리 자신 혹은 타인에게 무지의 여지를 허용하는 공간을 마련하지 않았으며, 이를 통해 큰 문제 없이 지나갈 수 있는 일을 하나의 ‘사건’으로 키웠다는 것.

이렇듯 그는 자신의 책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통해 우리 스스로 평생 할 수 있는 독서량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다른 방식을 통해 체화하고 보완할 수 있는 여러 방법과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하루에도 수 백, 수 천 권의 신간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언가를 읽지 않음에 대해 부끄러워하기 보다는 이를 극복할 방안과 새로운 관점을 확인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것이다.

어떤가? 그의 말은 분명 설득력 있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속까지 조금은 시원해지기도 한다. 구태여 두껍고 지루한 책을 끼고 있지 않아도, 어렵고 복잡한 학문을 공부하려 끙끙 앓지 않아도 된다니 말이다. (물론 그가 하려고 한 말이 이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더불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점점 늘어나서 최근에는 다양한 전문 지식을 꼭꼭 씹어 전달해준다는 사람들이 세상에 가득하다. 우리는 이제 손쉽게 철학을, 문학을, 과학을, 미술을, 아니 거의 모든 분야를 책 한 권으로 쉽게 마스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에 소개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로 늘 손꼽는 책이다. 우리 모두가 터부시하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당당히 이야기하고, 이를 오히려 유쾌하게, 그것도 지적으로 비틀어버리는 글은 어디서나 쉽게 만나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번 이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무지無知의 지知’, 즉 알지 못함을 알고 있음으로 인해 가장 현명한 자로 손꼽힌 소크라테스를 떠올리게 된다. 왜 우리는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알지 못함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일까, 우리가 이런 겉핥기식 공부를 통해 알게 된 것을 정말로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햄릿>을 읽지 않은 것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햄릿>을 읽지 않았음에도 ‘아는 척’해야 한다고 하는 사회,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는 어쩌면 조금 잘못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끝내 아는 척 할 것이냐, 아니면 무지를 받아들이고 발전하기 위해 좀 더 진지한 자세로 애쓸 것이냐. 그것은 분명히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