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과 주식 시장의 동반 약세는 투자자들이 금융 시장에서 빠져나와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출처= Dallas Observ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뉴욕 증시가 10일(현지시간), 지난 2월처럼 다시 폭락장세를 연출했다.

이날 다우지수는 831.83포인트, 3.15%나 떨어져 2만 5598.74로 마감됐고, S&P 500지수는 3.29%, 기술주가 폭락한 나스닥은 4.08%나 급락했다.

장 마감 후 시간외 거래에서도 급락세는 이어져서 다우는 1000포인트, 나스닥은 5% 이상 하락했다. CNBC는 대부분의 폭락장이 월요일, 금요일에 일어났던 반면 이번 폭락이 수요일에 발생함에 따라 블랙 수요일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날 나타난 투매 현상이 많은 투자자들을 놀라게 했겠지만 월가의 분석가들은 지난 여름동안 달아올랐던 투기적 저가주와 기술주에 대한 조정은 이미 이달 초부터 예견됐으며 이런 조정은 앞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같은 투매를 촉발한 가장 큰 원인은 장기 국채금리의 급등이었지만, 전략가들은 시장이 무역 전쟁과, 무역 전쟁이 기업 이익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따라서 다가오는 실적 발표 시즌 동안 시장의 초점은 무역 전쟁과 관세가 기업 매출과 이익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맞춰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날 폭락세를 이끈 것은 미 재무부의 국채 입찰이었다. 재무부는 이날 360억달러 규모의 3년물 국채와 230억달러 상당의 10년물 국채를 입찰에 부쳤다.

그러나 10일 오후 2시(미 동부시간)에 입찰 결과가 발표되고 보니 10년물은 연 3.225%란 높은 수준에 발행됐다. 특히 응찰률이 2.39배로 1년 평균인 2.52배를 크게 밑돌았다.

국채 금리가 최근 단기간에 2%대 후반에서 3.25%까지 치솟은 만큼 수요가 있을 것이란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채권 금리가 이렇게 올랐는데도, 수요가 적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면서 국채 금리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시장을 지배했다. 200~300포인트 하락에 머물렀던 다우는 오후 2시 무렵부터 급격히 하락폭을 키우기 시작했다.  

금리 상승으로 벌써 미국 경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모기지 금리가 5%를 넘으면서 주택 매매 건수 증가가 줄고 있으며, 9월말 현재 4.79%를 유지하고 있는 오토론도 무이자 상품이 아예 사라졌다.

지난 2월의 폭락 때처럼 프로그램 매매가 매물을 쏟아냈다는 관측도 있다. 실제 공포지수로 불리는 변동성 지수는 이날 20을 돌파했다.

이날의 폭락이 공포를 키운 것은 채권과 주식 시장이 동시에 하락했기 때문이다.

통상 금리가 올라 증시가 하락하면 돈이 증시에서 빠져 채권 시장으로 옮겨가는 이른 바 '자금 이동 현상’(money-move)이 나타난다. 지난 20년간 S&P 500 지수가 2% 이상 떨어진 달에는 항상 채권 가격은 강세를 보여왔다. 그런데 이날은 둘 다 약세를 보인 것이다.

이는 투자자들이 금융 시장에서 빠져나와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주식과 채권이 모두 약세를 보이면서 포트폴리오 재편을 위한 투자자금 이탈 현상도 확대되고 있다. 요동치는 증시와 환율에 불안감을 느낀 투자자들이 대기 자금을 확보하며 관망세로 돌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 국채 금리의 급등이 미국 주식 시장의 폭락을 가져왔다.   출처= 美 재무부

실제로 미 고등급채권의 대표 ETF 상품인 아이쉐어즈 코어 미국 채권 ETF(iShares Core US Aggregate Bond ETF, AGG)에서 9일 하루 만에 20억달러 상당의 자금이 이탈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이날 보도했다. 이는 2003년 해당 상품이 출시 이후 역대 일일 최대 유출 기록이다.

또 글로벌 펀드리서치업체인 이머징마켓 포트폴리오 리서치(EPFR)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14거래일 동안 뮤추얼펀드와 ETF 상품 등에서 81억 달러 이상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했다. 지난 주에는 세계 채권시장의 벤치마크인 블룸버그 바클레이즈 다중유니버스 지수(Bloomberg Barclays Multiverse Index)가 급락하며 9000억달러(1026조원) 이상의 가치가 증발하기도 했다.

다중유니버스 지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대선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고, 연간 기준으로도 2005년 이후 최악의 해를 기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각국 중앙은행들의 긴축정책에 대비해 투자자들이 대응에 나서면서 증발된 가치만 2조 5000억달러(2850조원) 이상이라고 FT는 전했다.  

한달 전만 해도 3%를 밑돌았던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장중 3.42%까지 치솟는 등 임계치인 3.5%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화정책에 민감한 2년 만기물의 경우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미국의 금리인상, 트럼프 정부의 감세정책, 경기지표 호전 외에도 제롬 파월 의장을 비롯한 연준 관계자들의 강경발언은 최근 국채금리를 끌어올리는 배경이 되고 있다.

미 국채금리가 3.5%선을 넘어설 경우 그간 빠져나온 대기 자금은 물론, 증시 자금까지 우르르 채권으로 몰릴 것으로 보인다. 각국 증시는 물론, 환율에도 직격탄이 불가피하다.

CNBC는 "증시가 확연히 나빠지면 채권은 다시 안전지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고, 블룸버그통신은 고수익 채권펀드를 중심으로 한 최근 자금이탈 사례를 언급하며 "금융시장에서 매도세가 확산되며 정크본드 투자자들이 긴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급락장이 좋은 매수 기회가 될 것이란 목소리도 여전하다. 아직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은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제임스 매킨토시 월스트리트저널(WSJ) 칼럼니스트는 10일 “고공 행진을 이어온 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알파벳, 넷플릭스 등이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2013년 긴축 발작(테이퍼 탠트럼)이 발생했을 때도 증시는 수개월 내에 낙폭을 회복했다”고 지적했다.

중간 선거 이후 증시가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애널리스트들은 11월 초 중간 선거 이후 강력한 시장 성과를 토대로 4분기가 더 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은 민주당이 다시 하원 과반수를 장악하고 공화당이 상원에서 우위를 확보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공화당이 양원을 모두 장악해도 주식 시장에는 긍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