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고등학교의 졸업시즌이 한창이던 때, 이곳저곳의 고등학교에서 올해부터 수석졸업생인 발레딕토리안(Valedictorian, 졸업생 대표)과 차석졸업생인 살리토리안(Salutatorian)을 선정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통적으로 미국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그해의 수석졸업생이 졸업식에서 고별사를 하고, 차석졸업생이 졸업식에 참석한 가족과 친지 등 내빈을 환영하는 인사말을 해왔다.

아예 수석졸업생과 차석졸업생을 선정하지 않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어떤 학교는 다양한 명칭을 붙여서 무려 48명이 ‘수석졸업생’이라는 타이틀을 받기도 했다.

어떤 학교는 마치 대학처럼 특정 학점 이상의 학생들에 대해서 라틴어 성적등급인 숨마쿰라우데(최우등졸업, Summa Cum Laude), 그 아래는 마그나쿰라우데(준최우등졸업, Magna Cum Laude), 그 아래는 쿰라우데(Cum Laude, 우등 졸업)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오랜 전통이던 수석졸업생의 졸업사를 없앤 이유는, 1등에서부터 학생들을 차례로 등수를 매기는 것이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고 잠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환경을 만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전국 중등학교장 연합(National Association of Secondary School Principals)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 내 중고등학교의 절반 이상이 등수를 매기지 않는다고 한다.

수석졸업생과 차석졸업생이 아직도 있는 학교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직접 이를 없애자는 운동에 나서고 있다.

단지 0.1점 차이로 누구는 수석졸업생이 돼서 모든 환호를 받고 누구는 뒷자리에서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상위 10등이면 표창을 받고 11등이면 받을 수 없는 상황은 친구를 적으로 보게 만들고, 학생들과 부모들이 모두 과도하게 성적에 집착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실제 평점(GPA)에서는 거의 비슷한 학생들이 등수를 매기면 큰 차이가 나면서 대학 입학심사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고등학교 내 학생들의 등수 세우기를 반대하는 것이다.

실제로 뉴저지의 럿거스 대학을 비롯한 일부 대학에서는 대학입학 전형과정에서 지원자들의 등수는 고려하지 않고 각 과목별 성적이나 전체 평점, 학교 내 생활 등을 전반적으로 평가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에서는 학교들의 등수를 없애는 변화가 미래를 이끌어나갈 젊은 세대들의 눈송이세대화를 가속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눈송이세대(스노우플레이크 제너레이션)라는 표현은 마치 눈송이처럼 약해서 한번 충격을 받으면 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2010년대의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이들은 감정적으로 굉장히 연약해서, 기분이 상하는 말을 듣거나 겪으면 이에 대해 심하게 상처를 받고 과도하게 분노하는 경향을 보이며 이런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부모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은 마치 곧 녹을지도 모르는 눈송이처럼 이들을 조심조심 대해야 하고,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나 상처도 주지 않으려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가정이 아닌 학교에서도 지속되는데, 고등학교들이 성적을 매기지 않는 것도 하나하나 모두 소중하고 독특한 아이들의 능력을 천편일률적으로 숫자로 정리할 수 없다는 이유다.

대학에서도 이런 경향은 이어져서 상대평가를 하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학생들에게는 모두 A를 주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성인인 학생들을 사회에 내보낼 준비를 하기보다는 그저 감싸안기만 한다는 자조 섞인 비난이 나오기도 했다.

몇 년 전 텍사스의 한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을 한 윌리엄 맥레이븐 전 해군 제독은 요즘 학생들은 연습의 중요성을 전혀 모른다면서, 이들은 자신이 시간을 들이고 노력한 것이 반드시 보상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개탄했다.

불편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하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아예 불편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게 없애버렸더니 학생들이 이를 배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시험폐지와 등수 폐지 등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데, 이것이 정말 미래 세대에게 긍정적인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눈송이세대를 양산하는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