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불똥이 한국으로 튀었다. 지난 7월 미·중 양국이 서로에게 관세 포탄을 터뜨리기 시작한 이후 3개월 만에 한국 산업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중국 정부가 해외에서 럭셔리 상품을 사서 귀국하는 중국인들을 엄중히 단속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한국을 오가는 ‘다이거우(구매대행·보따리상)’ 업자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과 함께 느슨해진 한한령(한국 단체관광 등 한류 금지령)에 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이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중국의 자구책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업계는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 중국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롯데면세점.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미국의 미디어그룹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5일 중국 정부가 해외에서 럭셔리 상품을 사서 귀국하는 중국인들을 엄중히 단속하기 시작했다.

다이거우는 중국인 관광객이나 해외 거주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명품 제품을 사서 중국으로 들여와 이윤을 남기고 되파는 행위를 말한다. 똑같은 제품이 중국보다 해외에서 가격이 30~40%정도 싸기 때문에 보따리상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특히 한국에서 활동하는 보따리상이 주요 단속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한·중 간 보따리상 규모는 제법 크다. 다이거우가 한국에서 중국으로 유통하는 제품은 글로벌 럭셔리 시장의 1.5%로 추산된다.

JP모건은 화장품 구매 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봤다. 최근 중국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가장 많이 사오는 제품이 화장품이고 그중 한국산의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분석회사 제프리스의 스테파니 위싱크 애널리스트는 “중국인 관광객의 해외 구매 1위 상품은 화장품”이라면서 “해외에 나간 중국인 50% 이상이 화장품을 사온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가 세관 단속을 강화한 이유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가 모든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지만 중국 정부는 관세 카드를 모두 소진한 상태다.

상하이 증시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위안화 약세가 지속하는 등 경기 둔화 조심이 보이자 중국 정부는 타개책으로 내수 진작을 내놓은 것이다. 세관 단속 강화로 중국인의 해외 소비를 줄이고 중국 내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국 세관의 여행객 쇼핑 물품 단속 강화 소식은 위챗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타고 퍼졌다. 공항에서 세관 직원들이 럭셔리 브랜드로 가득 채워진 중국인 귀국자들의 트렁크를 샅샅이 검사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을 비롯한 미국·일본·홍콩·프랑스·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중국인의 명품 쇼핑이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러한 우려는 프랑스와 일본, 한국 등의 패션, 화장품 기업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다.

▲ 화장품을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이 늘어섰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국내 아모레퍼시픽은 직격탄을 맞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보복보다 더 떨어진 것이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최근 22만원대까지 폭락했다. 이는 2015년 5월 액면분할 이후 처음이다. 최고점을 찍은 2015년 7월(45만5500원) 주가와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중국 정부의 단속 강화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 4일과 5일 각각 13.99%, 1.1%가 빠졌다. 8일에는 전 거래일 대비 0.89% 하락한 22만30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LG생활건강도 지난 4일 7.71%, 5일 0.50% 하락했고 8일 0.25% 떨어진 119만4000원에 장을 마쳤다.

일본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 주가는 5일 최고 3.6% 하락했다. 4일과 5일 이틀 연달아 주가가 내려갔다. 주가 하락은 유럽으로 번졌다. 구찌, 입생로랑 등을 보유한 케링그룹 주가는 5.4%, 루이비통, 디올 등을 보유한 LVMH 그룹은 4.9% 폭락했다. 프랑스 화장품 기업 로레알은 36% 빠졌다.

국내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중국 소비자가 매출 증가율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화장품 기업의 주가는 중국 관련 뉴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설명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9월 면세점 업계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0%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사드 보복이 느슨해지긴 했지만 완전히 해소되지 않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발이 여전히 묶여있는 상태다. 그럼에도 매출액이 클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중국인 보따리상들이 국경절을 앞두고 물량을 대량 구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보따리상뿐만 아니라 중국 개인 관광객들도 상당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아시아나항공은 추석 명절 기간 해외에서 입국하는 비행기 중 중국 노선이 전체의 72%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전세기를 이용한 단체관광객이 없더라도 그만큼 중국인이 많이 유입된다는 얘기다. 더불어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높다는 뜻이다.

이러한 우려에도 화장품 업계와 면세업계는 “매출 중 중국의 비중이 높은 것은 맞으나 중동, 동남아시아 등 업계는 꾸준히 국가를 다변화해왔다”면서 “사드 보복 이후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설명한다.

▲ 중동, 동남아시아 등 한국을 찾는 관광객들의 국가가 다변화되고 있다. 사진= 이코노믹리뷰 견다희 기자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에서 제출받은 ‘최근 5년 간(2014년~2018년 7월) 연도별 면세점 매출 현황’에 따르면 시내면세점·공항면세점·지정면세점 등을 모두 포함한 전체 면세점 매출액은 해마다 증가해왔다.

2014년 8조3077억원, 2015년 9조1985억원, 2016년 12조2757억원, 2017년 14조4684억원, 2018년 1월부터 7월까지 10조7084억원으로 나타났다.

한한령의 직격탄을 맞은 2017년에도 전년보다 매출은 늘었던 셈이다. 면세점 수는 2014년 47개, 2015년 56개, 2016년 65개, 2017년 50개, 2018년 59개로 집계됐다. 이 중 대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각각 22개, 24개, 29개, 18개, 24개로 나타났다. 여러 데이터를 종합하면 한한령이라는 악재에도 면세점 시장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보따리상의 매출은 일부일 뿐 단체관광객이 들어오기 전에는 중국의 단속이 있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