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공기 기장이 수염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회사 취업규칙은 무효다.

# 국내 유명 항공사인 A항공의 취업규칙인 <임직원 근무복장 및 용모규정> 제5조는 ‘임직원의 용모는 단정하고 청결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제1항 제2호에서 ‘남자 직원의 경우 안면은 항시 면도가 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며, 수염을 길러서는 아니 된다. 다만, 관습상 콧수염이 일반화된 외국인의 경우에는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허용한다.’라는 규정을 두고 있었습니다(이하 이 사건 조항). 이에 A항공 안전운항팀 팀장은 2014. 9. 12. B에게 “B가 턱수염을 기르는 것은 이 사건 조항에 위배되므로 면도를 하라.”고 지시하였으나, B는 위 조항이 B와 외국인 직원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B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 지시에 계속 불응하였습니다. 이후 A항공은 A의 지시에 불응한 B에게 2014. 9. 12.부터 2014. 9. 말까지 비행업무를 정지하는 처분(이하 이 사건 비행)를 내렸고, B가 면도를 하고 비행업무에 복귀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하자, A항공은 2015. 10. 8.부터 같은 달 10.까지 비행임무 전 지상근무 관찰기간을 거쳐 같은 달 11.부터 B를 다시 비행업무에 복귀시켰습니다. 다행히 비행업무에 복귀는 하였으나, 억울한 마음이 든 B는 이 사건 비행정지가 부당한 인사처분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고 중앙노동위원회는 2015. 5. 14. ‘이 사건 조항은 유효성에 논란이 있을 수 있고, 이 사건 비행정지에 업무상 필요성이나 합리적 이유가 없고 그로 인하여 B가 입은 생활상 불이익이 크다.’는 이유로 이 사건 비행정지가 부당한 처분임을 인정하는 등의 판정을 하였습니다.

A항공은 중앙노동위원회의 이 같은 판정에 반발해 2015. 6. 29. 중앙노동위원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결과 1심에서는 승소를 하였으나, 항소심, 대법원에서 잇따라 패소하였습니다. 비록 A항공은 헌법상 보장된 영업의 자유 등에 근거하여 이 사건 조항을 제정하였으나, 이는 헌법상 보장된 B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므로 무효라는 것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법원은 A항공이 고객의 신뢰와 만족도 향상, 직원들의 책임의식 고취와 근무기강 확립 등 필요에 따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취업규칙을 통하여 소속 직원들을 상대로 용모와 복장 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이러한 취업규칙은 근로자의 기본권을 침해하거나 헌법을 포함한 상위법령 등에 위반될 수는 없다는 한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 개인 용모의 다양성에 대한 사회 인식의 변화 등을 고려할 때, A항공 소속 직원들이 수염을 기른다고 하여 반드시 고객에게 부정적인 인식과 영향을 끼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 오히려 직원의 적당한 개성 표출은 고객 신뢰나 만족도 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B직원은 항공기의 조종을 책임지는 기장으로서 항공기에 탑승하는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당연히 포함되지는 않으며, 항공운항의 안전을 위하여 항공기 기장의 턱수염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여야 한다는 A항공의 주장에서 합리적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이 고려된 것입니다.

물론 이번 판례는 다른 사기업의 모든 취업규칙에서 일반화시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법원이 전제한 바와 같이 만약 B가 A항공 기장이 아닌 객실 승무원으로 고객들과 직접 대면하고 서빙도 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이 사건 취업규칙은 어느 정도 타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사업주로서는 취업규칙의 내용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직원의 개성표출까지 억압하는 수준에 이르는 경우에는 무효로 판단 내려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번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수준 이하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한 학교법인, 이사장, 총장은 학생들에게 손해배상책임이 있다.

# 지난 2013년 A학교법인이 운영하는 S대학교의 재학생 B 등은 S대학교의 교육시설 및 설비 미비 등을 이유로 A학교법인, A학교법인의 이사장, S대학교의 총장(이하 A학교법인 등)을 상대로 A학교법인 등을 상대로 B 등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을 청구하였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사건 소송 제기 당시 S대학교가 학교에 쌓아둔 적립금은 3,000억 원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등록금 중 실제 교육에 쓰인 비용은 70%에 불과하였고, 등록금 대비 실험 실습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41%, 학생지원비는 수도권 소재 종합대학교 평균의 8.98%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총장과 이사장은 개인적 목적의 출장에 교비를 사용하였다는 의혹까지 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법원은 A학교법인 등에게 이들이 연대하여 학생들에게 각 재학기간 1년당 30만원씩 지급하여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A학교법인 등은 사립학교법 제32조의 2 등을 위반하여 적립금과 이월금을 부당하게 적립, 운영함으로써 B 등이 등록금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실험, 실습 교육을 받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S대학교의 시설, 설비 등의 미비 정도는 객관적으로 보아도 현저할 뿐 아니라 B 등이 위 대학교를 선택할 당시의 기대나 예상에 크게 미치지 못함으로써 B 등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B학생 등이 실제로 입었을 정신적 피해 규모에 비추어 본다면 학생 1인당 겨우 최대 120만원의 위자료를 인정한 이번 판결은 B학생 등의 손해를 충분히 배상 했다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판결이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우리 법원이 사실상 처음으로 ‘교육 소비자’인 재학생들의 학교법인, 이사장, 총장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비단 A학교법인이나 A학교법인의 이사장, S대학교의 총장이 아니더라도 값비싼 대학 등록금을 받고도 그에 현저히 미치지 못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땅의 다른 많은 대학과 교육자들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