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고영훈 기자]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3.98%의 처분 결정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구조가 완전 해소됐다. 이에 삼성그룹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가운데 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 나왔다. 단, 금융 부문만의 금융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선 긍정적이라는 의견이다. 

삼성화재와 삼성전기는 전날 보유 중인 모든 삼성물산 주식을 블록딜(block deal, 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으로 매각한다고 밝혔다.

삼성화재와 삼성전기는 이날 장 마감 후 각각 삼성물산 보유 지분을 블록딜 방식으로 모두 매각한다고 공시했다. 삼성화재가 262만주(약 1.4%), 삼성전기가 500만주(약 2.6%)를 매각했다. 전날 종가 기준 삼성전기 보유지분 6424억원, 삼성화재 보유지분 3364억원 등 거의 1조원에 달한다.

2018년 삼성그룹 지배구조 변화. 출처=메리츠종금증권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와 삼성전자는 보유지분 3.98%를 전량 주당 12만2000원에 매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4월 10일 삼성SDI보유 삼성물산 지분 2.1%, 5월 30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보유 삼성전자 지분 0.42%에 이은 세 번째 계열사 보유 지분 처분으로, 이번 처분으로 삼성그룹의 순환출자는 완전 해소됐다는 평가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그룹에게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라고 압박했다. 이에 삼성그룹은 올초 공정위에 연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겠다고 밝혔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내에서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은 A기업에 다시 출자해 자본을 늘리는 것을 의미한다. 오너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어 공정위는 이를 문제삼아 왔다. 오너일가의 삼성물산 지분 매입 등도 전망됐지만 삼성그룹은 주식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를 통해 4개의 순환출자 고리가 해소됐다.

문재인 정부는 금산분리(금융·산업자본 간 상호 소유·지배 금지) 규제 등 재벌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에 삼성그룹의 추가적인 개편 방안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제 남은 이슈는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92%에 대한 처리다.

앞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삼성생명을 겨냥한 보험업법 개정안 등은 앞으로 추가적인 삼성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변수로 평가 받고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물산, 삼성생명 제치고 삼성전자 최대 주주 등극하나

증권가는 차후 지주사 전환 가능성에 대해선 부정적이지만 금융지주사에 대해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그룹 금융지주회사 전환 절차. 출처=NH투자증권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 주식 매각에 따른 현금유입, 오버행 해소와 밸류에이션 부각(삼성물산) 등 관련 종목이 윈-윈할 수 있는 구조"라며 "금융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 등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번 지분 매각으로 삼성전기는 투자재원 확보와 삼성화재는 자산운용 수익성 제고 효과가 있다"며 "삼성물산 입장에서도 비교적 큰 물량이 출회되지만 밸류에이션과 절대 주가수준은 매력적이며,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 기대감이 상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긍정적인 이벤트"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삼성그룹 지배구조는 규제환경을 준수하고 있으며 최근 공고된 정부의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순환출자 지분 처분이 강제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순환출자의 완전 해소는 정부와 시장의 지배구조 개편 요구에 대한 화답이며, 추가적인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이다.

지배구조 개편의 완성은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인데, 비금융지주회사 전환시 삼성전자 최소지분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금융부문만의 지주회사체제 전환이 유력하다.

김 연구원은 "유예기간이 최장 7년으로 길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유지가 용이하다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기회요인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향후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예상 시나리오. 출처=메리츠종금증권

은경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법으로 강제됐던 앞선 이벤트들과 달리 자발적 노력으로 그룹 내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해소시켰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그러나 생명→전자로 이어지는 금산분리 해결은 여전히 숙제"라고 말했다.

은 연구원은 "삼성그룹이 삼성물산 중심의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당장 자회사로 편입될 삼성전자의 지분율을 현행법상 20%까지 확보해야 하는데 현 시가총액 대비 약 46조원의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보유 계열사 지분 중 가장 큰 규모인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43.4%, 약 15조원) 매각을 가정해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며 여기에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자회사 행위요건이 30%로 강화될 경우 현실성은 더 떨어진다는 진단이다.

그는 "일반지주회사의 금융회사 소유가 금지된다는 점에서 삼성전자의 대주주 지분(7.9%)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을 매각해야 하는 이슈도 발생할 수 있다"며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제시한 3년이라는 유예기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한 은 연구원은 지난 8월 27일 발표된 공정거래법 입법예고안에 삼성물산을 강제 지주전환 시킬 수 있었던 지주비율 강화 법안이 빠져있다는 점도 들었다.

그는 "삼성전자의 지배권 상실을 가져올 급진적 법안에 대해 한 발 물러선 결정으로 해석되며, 이에 삼성그룹도 정부의 금산분리 해소 요구에 일정 부분 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금산분리 문제의 핵심은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며, 여기서 지배라 함은 최대주주 중 최다 출자자임을 뜻한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물산이 보유한 현금 등을 활용해 삼성생명 보유 삼성전자 지분 1.7% 이상을 매입 후,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등극할 가능성에 주목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