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슬라가 만든 세계 최대 리튬이온 배터리 호주 혼스데일 전력 저장소(Hornsdale Power Reserve).   출처= Hornsdale Power Reserv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재생 에너지로 충전된 초대형 배터리가,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피크 시간에 몰려있는 발전소의 부하를 큰 폭으로 덜어주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른바 피커(Peaker)라고 하는 천연가스 발전소들은 운영비가 너무 비싸서, 전력 수요가 급등하거나 일반 전력 생산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때만 현재 가동되고 있다. 이같이 유지비가 높아 특정한 시기에만 제한적으로 가동되는 천연가스 발전소를, 재생에너지로 충전된 초대형 배터리들이 그 역할을 대체하기 시작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최근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이 같은 발전 대체 수요가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초대형 배터리가 건설되고 있거나 검토되고 있다. 그야말로 재생에너지 저장용 초대형 배터리 건설이 붐을 이루고 있는 것.

특히 남서부 지역에서는 여러 회사들이 ‘태양열 발전 및 저장’ 프로젝트를 미래의 효자로 보고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툭손 전력(Tucson Electric Power, TEP)은 애리조나에 100메가와트(MW) 규모의 태양열 발전 시설과 함께 30메가와트 배터리 저장소를 건설 중이다. 넥스트이어러에너지(NextEra Energy Inc.)가 개발한 이 프로젝트로, 툭손 전력은 전력 수요가 적은 아침에 저렴한 비용으로 태양열 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해 저장해 두었다가 오후 가장 더울 때 전력 수요가 올라가면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아직 요금은 공개하지 않았다.

넥스트이어러에너지의 짐 로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말 투자자들에게 “배터리 전력이 전통적인 비효율적 발전 수단보다 훨씬 적은 요금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에는 툭손 프로젝트보다 세 배 이상 큰 배터리가 건설되고 있다. 배터리 부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AES(AES Corp.)와 독일 시멘스(Siemens AG)와의 합작 기업인 플류언스 에너지(Fluence Energy LLC)는 캘리포니아 남부 지역 6만 가구에 4시간 동안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를 건설 중인데, 이는 테슬라가 지난해 호주에 건설한 현재 세계 최대 배터리보다 세 배나 큰 세계 최대의 리튬 이온 배터리로 기록될 것이다.

플류언스의 존 자후라닉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배터리가 새로운 가스 피킹 발전소의 실질적 대안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굴뚝 옆에서 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대신 태양열판이 줄과 열을 맞추어 설치되고 커다란 박스 창고처럼 보이는 시설이 동네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피크 타임 전력을 제공하는 새로운 방법은 지난해 대규모 해고를 단행한 시멘스나 GE 같은 전력 터빈 제조업체에게 위협이 될 것이다.

대형 배터리 어레이는 여전히 값이 비싸기 때문에, 전력망에서 배터리가 전력을 공급하는 실제 시장은 틈새 영역에 국한될 것이다. 그러나 배터리가 가치와 신뢰성이 입증되면, 풍력 발전이나 태양열 발전소가 더 많은 전력을 저장함으로써 미래에 전력망에서 더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피킹 발전소는 전력 수요가 최고 수준에 이를 때 추가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대개 하루에 몇 시간 정도만 운영된다. 연방 정부 자료에 따르면 피킹 발전소는 2016년에 11억달러의 천연 가스를 연료로 연소시켰다.

연방 정부는 새 가스 피킹 발전소가 발전소 건축 및 연료비를 포함해 메가와트 시간당 약 87 달러의 비용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에 비해, 엑셀에너지(Xcel Energy Inc.)의 콜로라도 지부는 최근에 공개 입찰에서 메가와트 시간당 36달러의 중간 가격으로 태양열 발전 및 저장 프로젝트 87건을 낙찰받았는데, 이는 지금까지 입찰가 중 가장 낮은 낙찰가 수준이다.

미네소타에 본사를 두고 있는 엑셀 에너지의 벤 포우크 최고경영자(CEO)는 “앞으로 10~15년 내에 배터리 저장 전력의 가격이 전통적인 피킹 발전의 30%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텍사스주 산 안토니오(San Antonio)에 있는 알라모 솔라 프로젝트의 유니코스(Younicos) 배터리 전력 저장소. 출처= Renew Economy

배터리가 지난 몇 년 동안 전력망에서 사용되긴 했지만, 주로 전압과 주파수를 안정화하기 위해 짧은 시간, 때로는 즉 단 몇 초 동안, 전기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일리노이까지 13개 주에 전력을 공급하는 거대 전력망인 PJM 인터커넥션(PJM Interconnection)에서도 이런 의무 서비스의 4분의 1은 배터리를 사용한다.

그러나 현재 건설 중인 배터리는 용량이 훨씬 더 크다. 이것은 전력 공급 시간이 4시간 이상 지속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전력 컨설팅 회사 나비건트(Navigant)의 애니사 드함나 이사는 말한다.

최근 전력망에 사용되는 배터리에 관한 에너지국 보고서를 쓴 버지니아 조지 메이슨 대학교(George Mason University)의 데이비드 하트 공공 에너지 정책 교수는 “피커 발전소의 교체가 단기간 최대 시장으로 떠올랐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분석가들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배터리를 통해 추가 전력을 생산하는 것이 전통적인 피커 가스 발전소에 비해 약 35%의 비용이 더 소요되지만, 2024년이 되면 비용이 역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들은 배터리는 겨울 전기 피크가 4시간 이상인 추운 지역보다는 그보다 짧은 따뜻한 지역의 피커 발전소를 교체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권고했다.

정부에서도 일부 주에 대해 배터리 채택을 권고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는 2020년까지 1.3기가와트의 저장 시설을 추가할 것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고, 뉴욕과 매사추세츠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캘리포니아는 올해 초 퍼시픽 가스앤일렉트릭(Pacific Gas & Electric, PG&E)에 기존의 세 개 가스 발전소를 대체해 전기료를 낮출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시스템에 대한 입찰 참여를 주문했고, PG&E는 지난 8월 총 570메가와트에 달하는 4개의 저장 프로젝트에 대한 세부 계획을 제출했다.

천연가스 생산자들을 대표하는 로비 단체인 미국석유 협회(American Petroleum Institute, API)는 배터리의 성과에 박수를 보냈지만, 평등한 경쟁의 장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장 에너지 프로젝트가 신재생 에너지와 결합되면 연방 투자세를 30% 공제받을 수 있는데, 이 조항은 석유협회의 로비 덕분인지 공화당의 세제개혁안에도 그대로 살아남았다.

석유협회의 대변인은 “배터리 기술이 이제 시장에서 경쟁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이는 그동안 배터리 기술의 개발을 장려하기 위해 정부가 제공해 오던 각종 재정 지원이 없어질 때가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