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3구 자가주택 점유 가구주의 부채여부. 단위(명) 출처=서울시

[이코노믹리뷰=정경진 기자]  정부가 고가주택자와 다주택자를 잡기 위해 강력한 대출규제 정책을 들고 나왔지만 정작 부유층에게는 대출규제의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강남 3구(서초, 강남, 송파)에서 자가를 보유한 가구주의 절반 이상은 부채가 없고, 거주주택 외 부동산 마련을 위한 대출도 미미하다. '고가·다주택 보유자=투기'라는 프레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정부의 정책 의도와는 달리 실제 대출이 필요한 서민의 유동성이 팍팍해 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서울시는 19일 ‘2018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자료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서울에 거주하는 가구주중 자기집에 거주하고 있는 비중이 54%에 이른다고 밝혔다. 반대로 서울에 거주하되 전세나 전월세, 반월세 등 자가집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는 비중은 46%인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 서베이 도시정책자료조사는 국내 광역시 중 가장 큰 규모로 총 조사대상이 2만가구에 이른다. 매년 서울에 거주하고 있는 2만가구의 15세 이상 가구원 4만6000여명과 외국인 2500명을 대상으로 한다.

서울시 통계과 관계자는 “통계청보다도 추출단위가 가구단위로 더 정교하고 서울연구원과 통계학과 교수 등이 참여해 통계설계와 가중처리 등을 정교하게 했다”면서 “기술적인 부분들에 많은 투자한 만큼 현존하는 기법 중 우수하다고 자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결과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부분은 서울 거주자들의 대출비중이다. 서울에서 자기집을 소유하고 있는 가구주가 전체의 54%에 해당하지만 정작 이들의 대출여부가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코노믹 리뷰>가 ‘2018 서울 서베이’ 원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서울 25개구 중 집값이 가장 높은 강남3구에 거주하는 자가주택 보유 가구주 1523명 중 877명(57.6%)이 부채가 아예 없다고 응답했다. 구별로는 ▲서초구 318명(64%) ▲강남구 325명(62%) ▲송파구 234명(45%)이다.

또한 이들 중 거주주택 이외의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한 가구주 비중은 3%대에 그쳤다. 비중이 가장 낮게 나타난 구는 강남구로 자가주택 소유자 518명 중 9명만이 거주주택 이외의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했다고 응답했다. 이어 서초구 3.6%(495명 중 18명), 송파구 3.9%(510명 중 20명) 등이다.

▲ 9.13 대책 이후 은행권에 전달된 주택담보대출 금지 공문. 출처=이코노믹 리뷰

앞서 정부는 서울 집값 안정을 위해 지난 13일 ‘9.13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그 중 가장 많은 파장을 일으킨 부분은 갭투자자와 다주택자들의 추가 주택 구매를 억제하기 위한 강력한 대출규제였다.

문제는 이 같은 대출규제가 결국 어느 계층에게 피해가 가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강남 사는 다주택자의 절반 이상은 부채 없이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거주지 외 부동산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은 가구주 비중도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9.13 대책에 따르면 2주택이상 보유세대는 규제지역 내 주택신규 구입을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받을 수 없게 됐다. 1주택세대도 규제지역에서 주택을 새로 사기 위한 주택담보대출도 원칙적으로 금지됐다. 예외를 허용해 숨구멍을 뚫어놨지만 실거주 목적으로만 제한해 대출문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규제지역에서 아파트를 살 때에도 공시가격 9억원을 초과하는 소위 시세 13억원 가량 주택을 구입하려면 실거주 목적을 제외하고는 주택담보대출이 금지된다. 1주택가구는 기존주택을 최장 2년 이내에 처분한다는 조건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이 된다.

그러나 실거주 목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또 하나의 문턱이 바로 LTV와 DTI, 그리고 DSR이다.

현재 무주택자는 서울 등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서 집을 살 때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40%를 적용 받는다. 10억원 아파트를 살 때 LTV로는 4억원가량 대출이 가능하지만 DTI 기준, 즉 연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중이 40%를 상회할 수 없다는 기준까지 충족해야 한다. 단순 계산하면 연 소득 5000만원인 대출자의 경우 연간 원리금상환액이 2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금리 3.5%에 만기 20년 기준으로 4억원을 빌릴 경우 월간 원리금상환액은 231만원 선으로 연간 원리금상환액이 2780만원으로 2000만원을 초과하게되면서, 사실상 LTV 40% 기준을 적용하면 대출금이 4억원보다 낮아지게 된다.

여기에 대출규제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DSR이 다음달부터 은행권에 도입돼 대출 받기가 더 빡빡해진 것은 사실이다. DTI보다 강도 높은 규제인 DSR은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까지 원리금상환액에 포함시킨다. DTI가 주택담보대출의 연간 원리금상환액과 신용대출 이자만 계산했다면 DTI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계산한 후 소득과 비교해 대출규모를 축소시킨다.

서울 강북에서 전용면적 84㎡기준 10억원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다. 3.3㎡ 당 3000억원 대다. 영등포구 신길동의 ‘신길 래미안 에스티움’ 의 최근 실거래가는 10억3000만원이다. 동대문구 전농동 ‘동대문롯데케슬노블레스’ 역시 지난달 10억원에 거래가 됐다. 마포구 ‘공덕파크자이’도 9월 기준 실거래가는 13억2500만원을 기록했다.

서울 아파트값이 잇따라 10억원을 넘고 있지만 서민층의 유동성은 팍팍해지는 실정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S공인중개사 대표는 “9.13 정부 발표가 났지만 이쪽 동네는 영향을 크게 받고 있지 않다”면서 “주택을 구매할 당시 잠시 주택대출을 받은 고객들이 있었지만 전세를 놓으면서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해 부채가 없는 사람들이 여럿 된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LTV나 DTI는 은행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제도”라면서 “이 말인 즉슨 대출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은 소득이 낮고 자산이 없는 사람들의 유동성을 쪼이는 것이지 그렇지 않은 자산가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