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흥국 통화 공포가 계속되고 있지만 신흥국들이 통화 불안 전염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출처= bunkerist.com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신흥국가의 통화 위기가 좀처럼 진정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 등 극단적인 대응책에도 불구하고 다시 통화가치가 폭락하는 등 2차 위기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부국가에서는 통화가치가 상승하며 진정세를 보이는 모습이지만 이 역시 신흥국 통화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해결된 상황이 아니어서 단기에 그칠 전망이다.  

남미의 아르헨티나는 기준금리를 60%까지 인상하며 시장 방어에 나섰지만 페소화가 다시 급락세로 돌아서며 위기감이 재차 증폭되고 있다. 브라질도 한 때 안정세를 회복했지만 최근 달러 강세 영향으로 헤알화가 24년만에 최저치로 다시 급락세를 보였다.

터키도 13일(현지시간) 마지막으로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하면서 시장 방어에 나서 리라화가 강세로 전환되며 진정세를 보이는 모습이지만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다.

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5일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금리 인상이 예상되는 러시아 루블화도 최근 1주일 새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차별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 역시 지속여부에서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역분쟁에 따른 달러강세로 자본유출 추이가 이들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주요 통화 위기 신흥국과의 교역과 금융거래가 큰 국가들도 전염여부가 지속적인 관심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신흥국 통화 공포가 계속 확산되고 있지만 신흥국들도 이 공포에서 탈출하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도입하는 등 노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터키 마침내 금리 인상 단행

환율과 물가에 비상이 걸린 터키가 마침내 예상보다 강력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13일 통화정책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정책금리)인 환매조건부 채권 금리를 17.75%에서 24%로 6.25% 포인트를 올렸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15년 동안 가장 큰 폭의 인상이다.

중앙은행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물가 안정을 목표로 모든 가용 수단을 활용할 것”이라면서 “인플레이션 전망이 현저하게 개선될 때까지 수축적 통화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달 터키의 연간 물가상승률은 17.9%로 3달 연속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금리 인상 발표 직후 리라화는 한때 5% 이상 상승했다.

리라화는 터키경제의 구조적인 문제에 미국과 외교갈등이 겹치며 올 들어 전날까지 연초 대비 40% 폭락했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자체로 리라화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얻는 것과 함께, 정책 신뢰도를 되찾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터키 중앙은행은 지난 7월 리라 약세와 고물가 속에서도 금리를 동결해, 에르도안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금리 인상으로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중앙은행이 독립성을 잃지 않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게 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리라화 안정세가 지속될지 여부는 에르도안 대통령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영국의 컨설팅회사 캐피털 이코노믹스(Capital Economics)의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 제이슨 투베이는 "이제 다음 일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보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자신의 영향력을 재확인하려는 시도를 하는 순간 시장의 반응은 다시 나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앙카라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고금리가 고물가를 초래한다는 특유의 경제관을 역설하며 중앙은행의 발표와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그는 “금리에 관한 내 감각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터키 중앙은행이 독립적으로 결정하며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터키 경제성장률은 최근 5.3%로 둔화된 상태이다.

남아공 랜드·러시아 루블↑, 아르헨 페소·브라질 헤알↓

터키 금리 인상에 동조해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는 이날 하루 1.3% 급등하며 일주일간 하락분을 일시에 회복, 지난 3일 이후 최고치로 상승했다.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달러화 대비 1.1% 상승하며 일주일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4일 통화정책회의를 개최하는데, 전문가들은 50bp 금리인상을 예상하고 있다.

반면, 아르헨티나의 페소화는 달러당 39.9페소를 기록하며 다시 사상 최저치로 추락했다. 전날보다 3.51% 하락한 수치다.

아르헨티나는 지난달 30일 금리를 60%까지 올렸지만 이달 들어서만 7.27% 하락하는 등 올해 들어 53.26%나 떨어졌다. 이날 발표된 최악의 물가상승률 지표가 가뜩이나 취약한 페소 가치 하락을 부추겼다.

아르헨티나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 8월에 올들어 최고치인 3.9%를 기록, 연간 기준으로는 34.4%에 달했다.

정부가 복지차원에서 교통, 전기, 가스 등 공공서비스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대폭 줄이면서 공공 서비스 요금이 대폭 올라 연말까지 연간 물가 상승률은 40%를 웃돌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브라질 헤알화 가치도 전날보다 1.21% 떨어진 달러당 4.196헤알에 마감됐다.

외환 전문가들은 10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데다 터키의 금리 인상 등 외부 요인도 헤알화 약세를 부추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에두아르두 과르지아 브라질 재무장관은 “최근의 달러화 강세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따른 것”이라면서 “현시점에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거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신흥국, 자본 유치·개혁 늦추지 말아야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고 금융위기 이후 추진해 온 자산 매입을 축소하면서 시장 압력이 더 커질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과 유럽 중앙은행이 포트폴리오를 축소함에 따라 투자자들은 미국과 유럽 채권에 더 몰리게 될 것이다(그만큼 신흥국 자본 유출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신흥 시장 공포가 국가별로 엇갈리는 것은 유동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개발 도상국들이 자본 유치를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신호라고 지적하고, 아직 감염되지 않은 신흥국들은 통화 공포가 자국을 타깃으로 삼기 전에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틈타 개혁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