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미국은 금리 하나만으로 홍콩은 물론 중국 등 아시아 시장 전역을 흔들 수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특히 미국의 중국 관세 부과 품목이 ‘첨단기술’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반도체·IT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에도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하락이 심상치 않은 이유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10년물-2년물)는 지난 2013년 266bp에서 지난달 18bp까지 축소됐다. 과거 기록을 보면 경기침체를 앞두고 10년물 국채금리가 2년물보다 낮아지는 수익률 역전 현상(마이너스)이 나타났다. 최근 금리 스프레드 하락에 시장이 주목하는 이유다.

장단기 금리차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 Rate: FFR)를 올리면 축소되고, 내리면 확대된다. 금리스프레드 축소만으로 경기침체를 속단할 수 없는 이유다.

또 장단기 수익률이 역전되더라도 실제 경기침체로 이어지는 데는 시차가 존재한다. 금리 스프레드가 빠른 속도로 마이너스 구간에 진입할수록 위기도 빠르게 찾아왔다.

최근의 금리 스프레드 하락은 과거 위기 발발 전에 비해 완만한 속도로 진행중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만큼 경제성장에 대한 의구심도 많았다.

▲ 미국 FFR, 장단기 금리차, GDP 대비 국가부채 추이(회색구간은 경기침체) [출처:FRED]

한편,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금융위기 직후 73%에서 2013년 100%를 넘어섰다. 이후 오름세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100%를 웃돌고 있다.

경기침체가 시작된 시기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국가부채부담이 커지고, 연방기금금리는 하락하며 금리스프레드는 확대된다. 현재는 세 가지 조건 중 한 가지만(부채) 경기침체 요건을 충족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국가부채”라며 “위기 후 늘어난 재정지출에 트럼프가 경기부양을 지속하면서 확대된 부채를 해소할 곳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감세 등을 통해 성장을 높여 금리인상 여력을 확보하는 가운데 무역마저 흑자로 전환한다면 미국은 더욱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감세와 금리인상은 서로 상쇄효과를 지닌다. 감세는 재정지출 확대에 따른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하지만 금리인상은 과열된 경기를 억누르는 역할을 한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압박을 가할 수 있는 기반이다.

미국, 금리 하나만으로 아시아시장 ‘좌지우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는 만큼 같은 수준으로 맞설 수 있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의 주인이자 경제성장도 견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흥국은 미 금리인상에 취약하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올해 3월말 기준 글로벌 채무잔액은 247조달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40% 넘게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신흥국은 3배 증가한 69조달러를 기록했다.

미국은 중국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과의 직접적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홍콩을 통해 간접적으로 공격이 가능하다. 홍콩은 달러 페그제를 적용하고 있다. 달러 당 7.8홍콩달러를 중심으로 7.75~7.85를 설정하고 있다. 이 페그를 유지하려면 미국 금리인상 시 홍콩도 금리를 같이 올려야 한다.

문제는 홍콩의 과열된 부동산 시장이다. 홍콩의 소득대비주택가격(PIR)은 19.4배로 주요국 중 가장 고평가된 도시다. 쉽사리 금리를 올릴 수 없는 환경이다. 페그제가 붕괴되면 홍콩은 아시아 금융허브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중국 본토로의 자금공급 기능이 위축된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협상 테이블에 어쩌면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미국은 고금리만으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의 반도체 ‘경고’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에 위협적인 이유는 단순 ‘한미 금리역전=자금유출’이 아니다. 이 공식이 유효하다면 이미 국내로부터의 외국계 자금은 전부 빠져나가고 없어야 한다. 글로벌 자본이동은 단 한 가지 요인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지난해 한국 증시를 주도한 업종은 반도체와 IT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었다.

▲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포함여부에 따른 지수 수준 [출처:신영증권]

문제는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하락이 심상치 않는 것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잇따른 경고도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의 논지는 ‘반도체 사이클’이다. 산업의 변화가 일어날 때, 반도체 수요는 일시적으로 감소한 이후 다시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반도체 고점’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향후 12개월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6.7배, 3.4배로 저평가 돼 있다. 문제는 ‘저평가’가 역설적으로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에 관세를 부과한 부문은 ‘중국제조 2025’를 겨냥했다. 첨단기술 제품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미국은 중국의 발전을 지켜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내 4차산업혁명 투자 모멘텀 약화는 국내 반도체·IT 등 수출과 경기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과도한 저평가 국면에 있다”면서도 “외국인의 두 기업에 대한 주식비중이 줄고 있다는 점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심리적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미 금리인상에 따른 국내 경기둔화 등과 함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