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법에 대해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라면 ‘채권자취소’라는 말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채권자취소’란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자기 명의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 즉 사해 행위를 할 경우 채권자가 그 법률행위를 취소하고 재산을 원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권리’를 말합니다(민법 제406조 제1항). 법률용어로 하면 어렵게 보이지만, 풀어 쓰면 ‘여기저기 빚진 곳이 많은 채무자가 얼마 남지도 않은 자기 명의의 재산을 여러 명의 채권자에게 빚진 비율대로 골고루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채권자에게만 주거나 자신의 지인 등 가까운 사람에게 ‘빼돌려’ 결과적으로는 채무자 명의의 재산이 줄어든 경우, 빚을 변제받지 못한 채권자가 그 재산을 본래의 주인인 채무자 명의로 되돌려 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것입니다.

사실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채권자취소’라는 제도는 민법에 규정은 되어 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아 사문화되어 있던 것이었습니다.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우리나라가 IMF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부터입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부도위기에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빼돌리거나 특정 채권자에게만 빚을 갚아 다른 채권자들이 빚을 변제받지 못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지자, 그때부터 ‘채권자취소’ 제도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해 이제는 하나의 방대한 판례군(群)이 형성된 것입니다.

채권자가 채권자취소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채권자로서 채무자에 대한 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채무자가 ‘사해 행위’를 해야 하고, 사해 행위를 함에 있어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번 판례에서 문제가 된 것은 채무가 초과된 상태의 채무자가,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자신의 거의 유일한 재산인 본인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물품을 계속 공급받는 것이 ‘사해 행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법원의 답변은 “자금난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금을 융통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고 부득이 담보를 제공하고 물품을 제공하는 것은 사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번 판례는 기존의 주류적 판례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판례는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있는 채무자가 그의 유일한 재산인 부동산을 채권자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채권담보로 제공하는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사해 행위가 된다(대법원 2002. 4. 12. 선고 2000다43352 판결, 대법원 2006. 4. 14. 2006다5710 판결 각 참조)고 판시해 왔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번 사건은 기존의 주류적 판례가 전제한 사해 행위가 되지 않는 ‘특별한 사정’에 해당하는 것인데, 그동안에도 대법원은 신규자금의 융통을 통해 채무 변제력을 높이기 위한 것은 사해 행위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대법원 2012. 2. 23. 선고 2011다88832 판결 등 참조). 이번 판결도 그러한 ‘특별한 사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자금난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채무자가 자금을 융통해 사업을 계속 추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 빚이 많은 상태에서 자신의 부동산을 특정 채권자에게 담보로 제공하고 물품을 공급받는 것은 사해 행위가 아니라고 판시한 것’입니다.

비록 대법원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법원은 사업을 계속 추진하기 위해 납품업체에 담보를 제공하고 공급을 받는 행위에는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치겠다는 의사, 즉 사해 의사가 개입되지 않았다고 본 것 같습니다. 비록 이 같은 행위의 결과가 무위에 그쳐 결국 다른 채권자들이 빚을 변제받지 못하는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사해 의사가 존재하는지의 여부는 채무자의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를 할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납품업체에 담보를 제공한 것에 기존에 밀린 물품대금을 변제하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가령 납품업체에 1억8000만원 상당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했는데, 8000만원은 기존의 밀린 물품대금이고 1억원은 새로 발주하는 물품대금이라고 한다면 1억원에 대해서만 사해 행위가 인정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이 대법원의 입장입니다. 납품업체 입장에서도 기존의 물품대금이 밀린 상태로 새로이 물품을 공급하지는 않을 것이 뻔하니 채무자 입장에서는 새로이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서는 기존의 물품대금을 먼저 갚는 것이 당연하고, 기존에 밀린 물품대금을 갚기 위한 담보제공 행위와 물품을 계속 공급받기 위한 담보설정 행위는 불가피하게 동일한 목적 하에 하나의 행위를 이룬다고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다25842 판결 참조).

사업을 하다보면 언제든 위기는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오판을 하면, 민사적으로나 형사적으로 여러 가지 난처한 일을 당하게 됩니다. 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어떠한 순간에도 사심 없이 정정당당히 사업을 계속 이끌어 나가고, 무엇보다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많이 남겨두는 것입니다. 결국 법정에서 자신의 결백을 변호해줄 수 있는 것은 매순간 자신이 내린 경영적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