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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양들의 침묵’ 범인은 가까이 있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9.11  19:01:47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인들 중에 제법 큰 규모의 사업가가 있었다. 계열사가 십여 개 정도 되고 전체 매출도 수백억 원 이상이다. 내게도 가끔 골프를 같이 하자고 하기도 했지만 골프채도 잡아 보지 못한 나이기에 번번이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하지만 진심은 그와는 골프를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예전에 대학 다닐 때 잠깐 당구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당구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그때는 당구를 치면서 신사도를 지키지 않는 친구들이 많았다. 당구를 치면서 이상한 제스처를 한다든지, 다른 사람이 당구를 칠 때 비아냥거리거나 큰 소리를 내 방해 하는 친구들이 간혹 있었다. 물론 대학생의 얄팍한 호주머니 사정이야 거기서 거기였는데, 겨우 몇 천원에 친한 친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신사적인 태도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사업가와 몇 번 만나고 난 뒤에 어쩌다 골프 이야기가 나왔는데, 헤어지기 전까지 골프 얘기뿐이었다. 듣기로는 홀인원도 몇 번이나 하고 어떤 골프장에서는 보기 드문 진기록까지 세우기도 했고 틈 나는 대로 골프에 대한 공부에도 열심이었다. 컨디션이 괜찮은 날에는 언더도 종종 기록한다며 스스로를 대단한 골퍼로 치켜 세웠기에 당연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우연히 그와 골프를 함께 한 적이 있는 몇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그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이 와르르 무너졌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쩌다 그렇게 할 수도 있겠죠' 하며 넘겼으나,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반복해서 그런 얘기를 들었을 때, 그 사람에 대한 신뢰는 박살이 났다.

 

고무줄 원칙, 결국 자기 발등 찍어

골프에서 신사도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매너다. 그런데 타인에게는 엄격한 골프 규정을 강요하면서, 본인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멀리건을 계속 남발하는 것을 보면서 그 다음에도 같이 골프를 치고 싶은 골퍼는 없을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아는 다른 지인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평이 급전직하로 바뀌었다. 동반자들과 함께 할 때면 늘 계산은 그가 맡아 하는 모양인데, 내기 골프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내기도 하지 않으니 얼마나 신사적이겠어요?’ 하며 반문하자 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었다. ‘18홀 돌면서 멀리건을 계속 써대는데 다시는 같이 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때는 멀리건이 뭔지도 정확하게 몰랐는데, 검색해보니 ‘이미 친 샷이 잘못된 경우 무효화하고 새로 치는 것'이란다. 쉽게 말해서 그가 친 공이 맘에 들지 않으면 괜스레 갖은 이유를 대면서 다시 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실력이 싱글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지인에 대한 사람들의 평은 아주 극단적일 정도로 형편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평가에 호불호가 엇갈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정도가 아니었다. 최소한 그를 이용해야 될 필요가 있는 사람들 정도만 관계를 이어 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어떤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라 할 지라도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모에 기초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17년 6월 22일, 모 지상파 방송국의 예능PD 47명이 사장 퇴진을 촉구하며 연명성명을 발표했다. 입사해서 시청자들을 웃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왔는데, 도리어 회사가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우스운 꼴을 당하고 있어서 ‘이제 그만 웃기고 회사를 떠나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아무리 실력 있는 출연자도 사장이 싫어하면 쓸 수 없고, 노래 한 곡, 자막 한 줄까지 간섭하며 시키는 대로 안 하면 시청률이 좋더라도 멀쩡한 프로그램을 빼앗긴다고 분노했다.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에는 인색하면서도 ‘귀빈'을 모시는 행사에는 돈을 퍼부었다고 고발했다. 신입 공채는 막아 놓고 기습적인 경력 공채로 충원했고, 사람들 간의 관계가 행여 끈끈해지기라도 할까 봐 노조가입을 방해하고 서로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조직을 망가뜨렸다고 분개했다.

 

정작 본업에는 인색하고, 행사에는 돈 펑펑

의외로 이런 조직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러면서 조직력을 운운하는데, 그런 회사는 회사에 가서 한 나절 정도만 지내보면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일단 조직이 침묵하게 된다. 직원들의 얼굴에서 활기는커녕 생기마저도 사라져 의욕을 느낄 수도 없다. 회사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있지만 누가 누구인지 알지도 모르는 상태여서 서로 반갑게 맞아주는 경우도 잘 없다. 그저 위에서 지시하는 내용에만 고분고분하면 되기 때문에 이럴 때 사람들은 스스로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침잠하게 된다. 그래야 서로가 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재한 리더가 운영하는 조직의 단면이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뿐만 아니라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정사에서도 동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폭군이자 희대의 살인마로 그려져 있다. 마치 로마의 네로 황제를 보는 듯 하다. 동탁은 성격이 잔인하고 비정했으며 가혹한 형벌로 사람을 위협하고 작은 원한도 반드시 복수했다고 한다. 또 형벌의 적용에도 일관성이 없어 사람들이 서로에 대한 무고를 일삼았다고도 한다. 백성은 비명을 질렀지만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하고, 서로 마주치면 눈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동탁은 자기 친척들로 조정을 가득 채웠다.

정사든 소설이든 간에 마지막 권력자는 아무리 혼군(昏君)으로 치장되고 왜곡된다고,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그릴 수 있는 최악의 리더 모습이 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동탁의 흉악무도한 행위에서 살인에 해당하는 항목만 빼고 나면 조직을 침묵시키는 리더에게 그대로 대입해도 된다.

삼국지 얘기를 한 가지만 더 하자면, 유비도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유비가 익주목이 되었을 때였다. 가뭄에 양식이 부족해서 난리였다. 이를 극복하고자 귀한 곡식으로 술을 담아 먹지 못하도록 금주령을 내렸다. 조조나 제갈공명 할 것 없이 법가에 충실했던 사람들 이었기에, 당시 법 집행은 무척이나 엄격했다. 백성들이 술을 담아 먹다가 걸리는 것은 당연히 엄중한 처벌을 받았고, 심지어 술 담그는 도구를 숨기고 있다가 걸려도 체포하여 똑 같은 벌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인심이 흉흉해져서 도처에서 원성이 자자했다. 이를 소덕(昭德)장군 간옹(簡雍)이 비판을 했지만 그만두지 않았다.

어느 날 간옹이 유비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길에서 한 쌍의 남녀가 나란히 걸어 가는 것을 보고 말했다.

“저들이 간통을 하려 하니 빨리 체포해야겠습니다.”

“간통을 하려는 지 자네가 어떻게 아는가?”

“저들은 몸에 간통을 할 수 있는 기관이 있지 않습니까? 집에 술을 담그는 도구를 숨겨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유비는 껄껄 웃고선 즉시 가혹한 법령을 고쳤다.

아마도 삼국지의 작자는 주인공들이 끝까지 자기원칙만 고집하지 않고 법령을 바꾸어 백성들이 억울하게 피해 입는 것을 막았다고 쓰고 있다. 주위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 둔 덕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타까운 현실은 그 지인은 자신의 조직이 암울한 상황에까지 가 있는 것은 모르는 지 아니면 애써 모르는 체 하는 것 같다. 주위 의견에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누구나 만날 때마다 새로운 비전을 열정적으로 이야기 했고 해외에까지 M&A를 하면서 기업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서 분주했다. 그런 그에게 현실을 제대로 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보다 그를 더 잘 아는 다른 지인에게 이런 진단을 털어놓으며, 괜한 오해 생기지 않게 하면서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도록 부탁을 하기도 했다.

한참 뒤 해가 바뀌고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서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회사는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의 생기 없는 모습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1년도 안된 그 기간 동안 관리자급 직원들은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대부분이 낯선 얼굴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또 새로운 침묵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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