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변호사 A씨는 대법원이 지난 2015. 7. 23. 변호사들의 형사사건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단(관련기사 ☞ [법과 사건] 형사변호사 성공보수 무효판결, 안 줘도 되나요?)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5다200111)이 법원의 공권력 행사로서 변호사들이 누려야 할 계약 체결의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이를 취소해 달라며 청구한 헌법재판소법(이하 헌재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대하여 ‘각하’ 판단을 내렸다.

#2. 1973년도에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발동으로 영장도 없이 체포되었고 이후 유죄 판결까지 받았던 B씨는 2009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2013년 무죄를 확정 받았다. 이에 B씨는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을 근거로 대한민국을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까지 했지만, 대법원은 긴급조치에 따른 공권력 행사는 법원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운 ‘통치행위’에 해당하므로 국가가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형사사건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도 정작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한 B씨는 이처럼 앞뒤가 다른 대법원의 판단, 즉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자신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였다며 해당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해 달라며 헌재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지만, 이 역시 ‘각하’판단을 받았다.

지난 30일 헌법재판소의 선고 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선고가 예정되어 있던, 앞서 살펴본 두 사건은 공교롭게도 이른바 ‘양승태 코트’가 ‘상고법원’설치에 반대하는 당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길들이기 위해 혹은 박근혜 정부의 정치성향에 맞추어 부당한 판결을 하였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일 뿐 아니라,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헌재법 제68조 제1항이 위헌인지의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는 사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헌법재판소는 위 두 사건에 대하여 ‘실체적인 판단’ 자체를 하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각 사건에 대하여 ‘각하’라는 판단을 내린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다. ‘각하’란 당사자의 소송상 신청 자체가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어 ‘실체적인 판단’자체를 할 필요도 없는 경우에 법원이 내리는 결정이다. 이는 헌법재판소가 헌재법 제68조 제1항이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사실 ‘대법원의 판결’이 헌법소원의 대상으로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한 위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법조계의 오랜 논쟁거리였다. 헌재법 제68조 제1항 상의 헌법소원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를 구제하기 위한 제도’인데, 헌재법 제68조 제1항 조항 자체에서 ‘법원의 재판’은 헌법소원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이를 제외시켜 놓으면 잘못된 대법원 판결, 즉 사법부의 오판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았을 경우에는 어디에서도 구제받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입장은 확고했다. 헌법소원제도는 일반사법제도와 같이 보편화된 제도가 아니고 헌법소원을 채택하고 있는 나라마다 서로 달라 헌법소원의 심판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야 하는가는 입법자의 재량에 속하는 문제라는 점,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은 행정부와 달리 사법부는 기본권의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점, 1심부터 대법원까지 이미 3번의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된 만큼 헌법재판소가 굳이 헌법소원제도를 통해 ‘제4심’의 역할을 할 필요는 없다는 점 등을 들어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헌재법 제68조 제1항은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헌법재판소 1997. 12. 24. 선고 96헌마172 등). 물론 예외는 있다. 만약 법원이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에 대해서는 헌법소원이 허용된다.

비록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는 헌법재판소가 이번 ‘각하’결정을 통해 ‘양승태 코트’의 ‘문제적 판결’에 대하여 ‘면죄부’를 준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올 수 있지만, 지금껏 헌법재판소가 지켜온 ‘법원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법리를 고려해 본다면,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문제다. 헌법재판소는 단지 ‘법원의 재판’은 원칙적으로 헌재법 제68조 제1항 상의 심판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하였을 뿐이고, 그에 대한 반사적 이익으로 마치 헌법재판소가 ‘양승태 코트’의 판결들을 옹호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오히려 같은 날 선고된 구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위헌심판 및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청와대와의 ‘부당거래’가 의심되는 ‘양승태 코트’의 판결들이 근거로 삼았던 법률 조항들에 대하여 차례로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대법원은 지난 2013년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사 피해자가 낸 소송에서 소멸시효를 ‘재심 무죄 확정 이후 형사보상 결정 확정일로부터 6개월’로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해석했고, 2015년에는 민주화보상심의원회로부터 보상금을 받은 자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지만, 이번 위헌 결정으로 이들에게는 재심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헌법재판소는 ‘양승태 코트’를 편들지도, 그와 척지지도 않았다. 법원이 블랙리스트 파동으로 혼돈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도 2018년 9월 1일부로 서른번째 생일을 맞이한 헌법재판소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