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터키 리라화 가치폭락이 한 달 째 이어지는 가운데 터키의 외환위기가 코앞까지 왔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달러화에 대한  리라화 가치는 올 들어 지난달까지 7개월 동안 23%가 빠졌으며 8월에만 추가로 20% 폭락했다. 현재 달러에 대한 리라 환율은 6.5396리라다.

터키가 국제통화기금(IMF) 문 앞에 서기까지를 살펴봤다.

▲ 터기가 가치 안정을 위해 3개월 동안 리라화 예금에 대한 세율은 인하하고, 외화 예금에 대한 세율은 인상한다고 발표에 달러당 6.3745리라 반짝 떨어졌으나, 곧 다시 올라갔다. 1일 현재 6.5396리라다. 출처=블룸버그

리라화 가치 폭락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터키산 알루미늄과 철강에 대한 관세를 2배로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터키산 알루미늄관세는 20%, 철강관세는 50%를 결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간첩·테러 혐의로 2016년부터 터키에 구금된 앤드루 브런슨 목사를 석방하라고 요구했지만, 터키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관세 폭탄을 던진 것이다.

터키는 미국의 이란 제제에 대해 따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반대에도 러시아 방공미사일 도입을 강행해 트럼프 대통령이 보복초치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왔다.

밖에서 압박이 들어오는 중에 터키 내부 사정도 좋지 않았다. 터키는 경상수지적자와 재정적자 등 쌍둥이 적자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상수지 적자규모가 크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지 않다.

지난 28일 터키의 5년 만기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전날에 비해 27bp(1bp=0.01%p) 급등한 535bp로 2주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이는 터키 국채 1000만달러를 보증하는데 53만5000달러가 든다는 뜻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금리인상 등 통화긴축을 경고하고 있지만 터키 정부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은 16%에 이르는 물가상승률에도 7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해 통화가치 하락을 촉발했다. 터키 당국의 물가목표는 5%다.

터키 경제는 그동안 과열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고속 성장했는데 대부분 해외에서 빌려다 쓴 외채로 조달한 자금을 동력원으로 삼았다. 터키의 성장률은 올해 2분기 7.22% 성장해 중국과 인도를 앞질렀다.

터키재무부에 따르면, 터키의 외채는 1 분기 기준으로 4667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2.9%를 기록했다. 특히 만기 1년 미만인 단기외채는 1810억달러에 이른다. 반면, 외한보유액은 5월 기준 1073억달러로 턱없이 부족하다. IMF도 터키의 외채가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  영국 국영매체 BBC가 9일 '터키는 경제위기로 가고 있는가?'라는 기사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경제노선이 통화 안정을 필요로 하는 시장에 불신을 가져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로이터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터키 금융회사 20곳의 신용등급을 낮추자 통화가치는 더 떨어졌다.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터키 리라 가치는 이날 낮 12시 20분께 1달러당 6.45리라로 약 3% 정도 떨어져 2주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역으로 리라 달러 환율은 그 만큼 오른 것이다.

30일 에르칸 킬림지 중앙은행 부총재의 사임 소식이 퍼진 직후 환율은 달러당 6.8427리라까지 치솟았으나, 장 막판 조금 안정돼 6.6542리라로 마감했다. 4거래일 연속 상승했다. 무디스의 은행권 신용등급 강등에 이어 중앙은행 부총재의 사임 소식의 영향이다.

터키는 외환위기 직전이며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위한 문 앞에 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 사이에 ‘넥스트 터키’에 대한 경계감이 돌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터키 화폐가치 폭락에 따라 주요 신흥국 통화가 동반 하락했기 때문이다. 남아공 랜드화가 2% 이상 내렸고, 중국 위안화도 역외시장에서 0.5% 가량 떨어졌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달러 대비 3년 내 최저치로 후퇴했고, 브라질 헤알화도 2년 내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인도 루피화는 사상 최저치를 찍었다. MSCI에 따르면 이달 들어 신흥국 통화는 1.8%의 손실을 냈다.

영국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올리버 존스 이코노미스트는 마켓워치에 “아르헨티나와 터키 사태의 전염 리스크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높은 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추가 긴축을 단행할 것이라는 관측이 신흥국 통화를 압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서는 모양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은 28일 독일 정부가 터키에 긴급금융지원을 제공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WSJ는 터키 경제가 무너질 경우 유럽 은행들의 채권이 약해지면서 연쇄 충격을 발생할 수 있고, 독인의 난민·테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터키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독일 정부 관계자는 “IMF 없이 독일과 유럽연합(EU)만으로는 터키를 충분히 지원할 수 없다”고 말해 터키가 IMF 구제금융 요청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는 뜻을 전했다.

터키는 긴급조치를 취하긴 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리라화 가치 안정을 위해 3개월 동안 리라화 예금에 대한 세율은 인하하고, 외화 예금에 대한 세율은 인상했다고 지난달 31일 터키 NTV가 보도했다. 터키정부가 한시로 리라 예금에 면세를 결정한 것은 리라 대신 외화를 보유하려는 수요를 억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터키의 긴급처방에 1달러당 6.3745리라 반짝 떨어졌으나 곧 다시 올라갔다.

그러나 터키가 앓고 있는 중병의 근본원인을 그대로 놔둔 것이어서 터키의 운명은 거의 정해진 것 같다. 달아나는 자본을 잡아들이고 폭등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인상 처방이 필요한데 하지 않고 쌍둥이적자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 터키가 자존심을 구기고 IMF에 손을 벌릴 날도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