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의 모험> 미히르 데사이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현대 자본주의의 꽃’ 금융은 과연 사악한가? 17세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의 투자자이자 저술가로 활동한 호세 데 라 베가는 저서 <혼돈 속의 혼돈(Confusion of Confusions)>(1688)에서 “금융은 가장 공정하면서도 가장 사기가 심하고, 세상에서 가장 고상하면서도 가장 악명 높으며, 지구상에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상스러운 것”이라고 묘사했다. 전형적 유태상인이던 그는 금융을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금융 위기 이후 세상은 금융을 기만적이며 악명 높고 저속하다고 여기게 됐다.

저자는 2015년 하버드경영대학원 MBA 졸업반 학생들에게 특별한 강의를 했다. 인문학을 통해 금융의 핵을 이루는 관념과 이상을 깊이 살펴봄으로써 금융에 인간성을 복원하려는 시도였다. 저자는 금융에 대한 공감력이 커지면 부패에 대한 저항력도 더 강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책은 8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통계와 확률, 보험과 도박 이야기로 ‘금융의 본질’을 설명한다. 세상은 우연으로 가득한 위험한 곳인데 여기서 규칙을 발견하여 리스크에 대처하려는 것이 보험과 금융의 근원이라고 말한다. 2장은 리스크 관리의 핵심 전략인 ‘옵션’과 ‘분산’에 대해 설명하고 이것이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에도 적용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3장은 자산 운용과 투자에서 중요한 요소인 ‘가치 창출’과 ‘가치 평가’를 다룬다. 4장은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인 ‘기업 거버넌스’ 즉 ‘주인(주주)-대리인(경영자) 문제’를 이야기하고, 5장은 ‘합병’을 결혼에 빗대어 설명한다. 6장은 빚을 지렛대 삼아 수익을 추구하는 ‘레버리지’가 소개되고, 7장은 ‘파산’을 윤리적 실패나 죄악이 아닌 ‘회생’이라는 관점에서 살핀다. 마지막 8장은 금융의 훌륭한 개념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비결을 이야기한다.

책에는 수치와 그래프는 없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소설, 시, 희곡 등 문학 장르를 비롯하여 역사, 철학, 과학, 종교, 심리학, 미술, 대중문화까지 섭렵하면서 금융의 중요한 개념들을 알기 쉽게 풀이한다. 그 가운데 중세시대에 결혼문제를 금융공학으로 해결한 사례가 나온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는 능력 있고 나이도 적당한 신랑감이 크게 부족했다. 흑사병과 잇따른 전쟁 탓이 컸다. 이 때문에 적령기 딸을 둔 아버지들은 가파르게 상승하는 신부 지참금이 심각한 고민꺼리였다. 신랑감으로서도 과연 혼례 시점에 신부 집안으로부터 거액의 지참금을 받아낼 수 있을지 불안해졌다. 실제로 결혼 후 수년이 지나서야 겨우 지참금이 정산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때 피렌체 정부가 절묘한 아이디어를 냈다. 신부 측과 신랑 측은 물론 밀라노와 루카를 상대로 전쟁하느라 파탄 직전으로 몰린 정부 재정 문제까지 일거에 해결해줄 금융공학적 해법, 즉 ‘신부 지참금 펀드’였다. 1425년 피렌체 정부가 공식 출시한 신부 지참금 펀드는 시민이 딸의 다섯 번째 생일에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 혼인이 성사될 때 정부가 연리 11%의 고정 금리를 붙여 신랑 측에게 직접 지급해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첫 펀드 가입자는 단 2명이었다. 가뜩이나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에 딸이 혼인 전 사망하면 원금을 날린다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8년 뒤 재정이 더욱 악화된 피렌체 정부는 이 독소 조항을 삭제하고 금리도 21%로 높인 2차 신부 지참금 펀드를 내놓았다. 대박이었다.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국가에서 이후 100년 동안 약 2만개의 신부 지참금 펀드 계정이 개설되었다.

책에는 이 밖에도 ‘리스크 관리자’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속 여주인공 리지 베넷을 소개하고, ‘레버리지’ 전략의 전형으로서 ‘키치의 왕(King of Kitch)’으로 불리는 현대 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유명한 신약성서의 ‘달란트의 비유’는 ‘가치 창출’ 혹한 원리를 설명할 때 동원된다. 멜 브룩스 감독의 뮤지컬 코미디 〈프로듀서〉(1967년)에서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인 ‘주인-대리인 문제(기업 거버넌스)’를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