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더 해야 할까요?” 코칭을 받던 사람에게 필자는 머리를 ‘쾅’ 하고 얻어맞은 것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는 이미 몇 개월에 걸쳐서 코칭을 받고 있었고, 나름의 성과를 지닌 상태에서 지원 가능한 회사를 추려서 실질적인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었다.

그가 스스로 생각할 때는 괜찮은 성장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는 시그널이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는 잘 모르겠고, 빨리 납득이 되지 않으면 스스로 중단할 것 같다는 솔직한 말도 덧붙였다.

당연히 의뢰인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기다리라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저지른 과오가 떠올랐다. 의뢰인과 필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성장’의 관점을 충분히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이에 대한 협의 없이 무작정 진행한 것이 아닐지 다시 한 번 되짚어 보는 것이 필요했다.

한참 동안 각자가 바라는 성장의 모습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성장을 위한 방향성이나 철학에 대해 충분히 공감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고, 함께 내린 결론은 겉치레와 속 단장 중 무엇이 먼저인가에 대한 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눈에 띄는 결과를 얻어야만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헛되지 않았고 보상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살아왔으니 앞으로 직장 속에서 생존하는 것도, 그 생존을 위해 직장을 옮기는 것도, 새로운 일을 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결코 ‘전부’가 아닌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어도 단순하게 ‘잘 먹고 잘 살기’위해 지금 하는 여러 노력을 모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럴 수 있지만, 그렇다면 더욱 쉬운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이 모두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단순히 운에 기대어 무작정 원하는 성장을 위한 방향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것은 다소 무모한 일이다. 따라서 방향에 적합하도록 단계적으로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을 위해 노력하면서 순간순간이 삶에 기록되어 자연스럽게 노출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그것이 곧 의뢰인과 필자가 바라는 성장의 모습이었다.

단지 그 성장의 모습이 나타나는 방식이 내면의 성장을 통한 외면의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갖추고 싶은 모습을 위해 내면을 단련하고 인격적으로 성숙해지며, 동시에 주변으로부터 많은 인정을 받는 직간접적 메시지를 받고, 그러면서 조금씩 멋지게 혹은 세련되게 변해가는 것을 말한다.

물론 그 ‘겉치레’가 어떤 차림새 또는 옷매무새를 뜻하는 말은 결코 아니다. 쉽게 말하면 그(녀)만이 내보일 수 있는 일종의 분위기 또는 아우라를 뜻한다. 당연히 그에 어울리는 차림새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갖추어지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의 노력은 기본이겠지만, 그것 보다는 속을 단장하는 것에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성장의 관점을 겉과 속을 ‘분리’해서 생각하거나 함께 생각한다고 해도 인위적인 노력이 함께 곁들여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적어도 한 분야의 고수 또는 전문가로 인정받는 이가 주로 맡고 있는 쪽이 ‘겉모습’과 관련된 직종이 아니라면, 겉모습 때문에 전문가로 인정받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은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일 때, 뽐내고 싶은 아우라 또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그걸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혼자서는 알 수 없으며,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내가 아무리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어떤 경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올바른 성장이란 자신이 바라는 모습을 주변으로부터 하나 둘씩 알아주기 시작하면서부터 알아차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내면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나타난다는 뜻이고, 반대로 무작정 이를 분리해서 연출하고 싶은 이미지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원하는 성장을 위한 올바른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스스로가 바라는 성장, 겉치레, 속 단장의 균형을 갖출 수 있을까.

첫째, 성장을 위한 방향 또는 단계를 정할 때, 스스로가 납득 가능한 명분에 의한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 마케터가 조직에서 제시한 ‘매출 기준’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스스로가 정한 목표를 연관지어 추가로 정한다고 보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는 고객들이 누구이고 그들이 어떠한 상태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Loyalty를 보여주는 것을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매출을 기준으로 프로모션을 하기보다는, 그들이 최상의 Loyalty를 보여주었던 때를 재연할 수 있는 방법을 기획하고 시도해야 한다.

당연히 이 과정 속에서 스스로가 바라는 성장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매출로 당장 결과로 기대하기는 다소 어렵겠지만, 적어도 우리 기업의 고객의 성장을 위한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보았으며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했고, 궁극적으로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결과까지 나타난다면 금상첨화인 것이다. 물론 각각의 시도는 조직과 개인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과정과 기대 가능한 결과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

둘째, 성장을 위한 납득 가능한 기준에 단계를 부여해야 한다. 현재 처한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한 번에 여러 일 혹은 쉽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부터 부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올바른 성장의 모습은 ‘내면으로부터 나온 외면의 아우라’인데 어떻게 단시간에 그런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말이다. 따라서 그에 부합하는 합리적 수준의 단계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겉 또는 내면의 목표가 서로 충돌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예를 들어 멋진 마케터가 되기 위해 우리 제품을 계속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분석함으로써 내가 가진 경험을 일반화하기보다는 나 이외의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과의 물리적 접점을 늘려가는 것도 함께 해야 한다. 이는 겉과 속의 균형, 나와 타인의 경험을 함께 정리하는 관점에서 내면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자신이 기대하는 우리 제품의 미래의 모습으로 귀결시킬 수도 있다.

셋째, 설정된 단계의 목표 달성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시도해보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대부분 처음에 했던 방법의 효율성만을 생각해 계속해서 같은 방법으로 여러 번 할 것을 권장한다. 물론 그것도 의미가 있지만, 오히려 일의 초반에는 이를 초기화해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해보는 것이 더 큰 성장을 위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는 효율성만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 자체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며, 이전의 성공 방법에 취하지 말고 유사한 목표 혹은 다음 단계를 위한 진화라고 해도 결코 이전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효과적’으로 일하는 것을 시스템상으로 체득해 적용하는 것을 뜻한다.

물론 이외에도 필요한 리소스, 네트워크,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포함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전문성 관점에서 필요한 교양과 상식이 계속해서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꾸준한 경험과 정리 습관 등도 필요하다.

당연히 인간은 어떤 방향이든 자신이 원하는 성장을 바라고, 이를 꾸준하게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법이다. 어렸을 때는 그걸 꿈이라고 불렀고, 나이가 먹으면서는 비전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에 가까운 삶을 위해 노력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같은 이상향을 꿈꾸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같은 노력을 하지도 않을 것이다. 결국 누가 왜(Why) – 무엇을(What) – 어떻게(How) 자신이 바라는 성장을 위한 어느 정도(When)로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서 각자의 삶을 현실 속에서 조금 더 가까운 꿈꾸던 이상의 모습을 구현할 수 있는 것이다.

보통은 이 세 가지를 통해 스스로가 정한 성장의 방향을 쉬지 않고 점검하고, 이를 통해 원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힘과 함께 노하우를 갖게 됨을 수많은 사람들을 상담하고 코칭하면서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필자부터 실천하기 위해 일상 속에 크고 작은 노력을 수년째 해오고 있는 것이다.

의뢰인들이 올바른 성장의 길과 방법, 이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이직스쿨에서 하는 일이다. 무작정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용기를 불어넣기보다는 냉철한 비즈니스를 따뜻한 가슴으로 안고, 품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을 말한다. 그게 곧 필자가 생각하는 진정한 겉치레와 속 단장의 균형 잡힌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