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김진후 기자] 미중 무역전쟁이 가열되면서 국내 경제에 미칠 후폭풍에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당장 큰 변화는 없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우리나라 수출 전반에 큰 피해가 예상된다. 정부가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누구 편들기도 곤란하다"

미국이 중국을 겨냥해 340억달러의 관세부과를 결정한 지난달 6일, 로이터와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유력 매체들은 중 무역전쟁에 크게 흔들릴 나라 10개를 꼽았는데 한국을 6번째로 지목했다. 1위에는 금융과 ICT 기술력이 강한 룩셈부르크가 올랐으며 2위는 대만, 3위는 슬로바키아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작은 영토와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기술집약적 경제모델을 통해 성장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도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백운규 산업통상부장관은 당일 서울 강남 한국기술센터에서 열린 미중 무역분쟁 관련 실물경제 점검회의에서 "단기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출 전선에 큰 이상현상은 보이지 않는데다 대중 수출과 대중 수출 모두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 장관의 말대로 미국의 공격을 받고있는 중국과의 수출도 큰 이변이 없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대중국 수출은 전년 하반기보다 21% 늘어난 792억달러로 집계됐다.

산업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강성천 통상차관보가 주재하고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 수출지원 기관과 업종별 단체가 대부분 참여하는 '실물경제 대응반'을 가동해 실시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호언대로 미중 무역전쟁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까. 증시 상황만 보면 맞는 말이다. 윤영교 케이프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이 자유무역주의를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면서 "국내 증시에 위기감이 이미 반영됐기 때문에 큰 틀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는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재선 KTB투자증권 연구원도 "시장 투자심리 개선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태의 장기화 여부다. 미국과 중국이 각 국의 수입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에 나서기 때문에 소비재 형태의 한국산 수출품엔 큰 영향이 없겠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길어지며 우리의 주력 수출품인 중간재 수요마저 꺾이면 한국 수출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글로벌 무역 전반의 동력이 상실될 경우 문제는 더 커진다. 한국은 수출 중심 국가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경제는 내수 부진으로 수출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10일 발표한 최근경제동향에 따르면 7월 수출은 518억8000만달러를 기록해 7월 수출금액 기준으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반면 6월 전산업생산은 5월 대비 7% 줄었고, 취업자수도 2712만명으로 고용률 기준 전년 동기 대비 0.1% 하락했다.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5.9% 떨어지며 4개원 연속 감소세다. 국내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으나 내수 경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가 시한폭탄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한국의 제1 수출 대상국은 중국이며, 제2 수출대상국은 미국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지금까지는 국내 수출 환경에 큰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수출 전선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수출 의존도가 높고 내수경제가 부진한 국내 경제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면서 내수경제가 침체기를 겪으면 수출 의존도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 그나마 경제를 받치고 있는 수출이 타격을 받으며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당장 자동차 수출 전선에 먹구름이 끼어있다. 중국이 미국산 외산 브랜드에 관세폭탄을 매긴다면 한국 자동차 수출 경쟁력은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기도 어렵다 두 나라 모두 국내와 정치, 경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백운규 장관은 당시 회의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 국면을 걱정하며 "누구 편을 들 수도 없고"라는 말을 했다. 한국이 처한 상황을 이 이상으로 잘 설명하는 말이 어디에 있을까.

다변화가 답이다?

한국이 탈출로를 찾기란 대단히 어렵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19일 내놓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영향 비교'에 따르면,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 경우 한국 경제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에게 500억달러 상당의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경우 두 나라의 경제성장 둔화에 따른 한국의 GDP 감소는 연간 0.018%, 2억3649만달러에 이른다는 경고다.

미중 무역전쟁이 길어질 경우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나라는 대만이며 그 다음이 한국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하는 가공무역 비중이 크기 때문에, 한국은 고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꼴을 면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미중 무역전쟁이 올해를 넘겨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26일 "미국의 매파들은 자국 경제의 호황을 바탕으로 미중 무역전쟁을 내년까지 끌고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기점으로 포성이 잦아들 것이라는 일각의 전망과는 결이 다른 셈이다. 정치컨설팅업체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은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은 글로벌 패권국 힘의 균형"이라면서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중국이 항구에서 미국 선박을 통제하는 등의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수출시장 다변화로 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 BOK경제연구가 20일 발표한 '수출다변화의 거시경제 안정화 효과:한국의 사례' 보고서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한국 경제가 찾은 답에 주목했다. 국내 24개 제조업 부문별 수출 자료 추이를 보면 국가별 수출 다변화 전략이 품목이나 단순 수출 경쟁력 향상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2000년 한국 수출은 미국과의 비중이 22%에 이르렀으나 전략 다변화로 10% 내외로 낮추고 중국 비율을 23.9%로 올려 위기를 넘겼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보복 현상을 복기할 필요도 있다. 중국이 한국의 사드 배치를 빌미로 관광객 수 제한 등 제재에 돌입하자 국내 관련 업계는 동남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 위기를 크게 상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제3의 답안지를 통해 향후 수습 국면의 협상력을 높이는 작업도 주효했다.

미중 무역전쟁이 한반도 평화 무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미중 차관급 회의가 빈손으로 끝난 후 마크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이 좌절됐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과 북한, 중국과 한국을 둘러싼 다자외교가 치열한 눈치싸움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막으며 중국을 북한의 배후 조종국으로 지적한 대목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특유의 협상전술이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마크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에서 미중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을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의 '위험요소'로 지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미국과 중국의 경제 ICT 패권 다툼을 넘어 정치와 경제, 외교, 국방의 영역까지 넘어와 영향을 미치는 분위기다. 미중 무역전쟁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한국 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