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카풀 합법화를 둘러싸고 택시 업계와 카풀 업계의 충돌이 극에 달하는 가운데, 일반 카풀 이용자들로 구성된 카풀운전자연맹 카풀러가 25일 택시 업계를 규탄하는 설명서를 발표했다.

최근 국내 카풀 업계는 위기의 연속이다. 풀러스는 사실상 동력을 상실했고 럭시는 카카오에 몸을 맡기며 숨을 고르고 있다. 중국의 디디추싱이 언제든 국내 카풀,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정부는 손을 놓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 위원회와 같은 관련 조직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현재 카풀 업계의 위기가 동종 업체와의 상의도 없이 무작정 24시간 이용제를 들고나오며 필요이상의 논란을 일으킨 풀러스의 실책에서 시작됐다고 보지만, 핵심은 규제 개혁과 관련된 거대 담론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 럭시는 카카오에 인수됐다. 출처=럭시

택시 업계가 카풀 업계와의 대화에 공식적으로 나서지 않는 가운데 긴장감만 높아졌으나,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월 초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등 택시 4개 단체가 이재웅 쏘카 대표의 혁신성장본부 민간본부장 위촉을 규탄하면서 국토교통부과 주관하고 인터넷기업협회가 나선다면 카풀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국회와 서울시의 관련 토론회를 무력화시키고 4차 산업혁명 위원회의 '애원'을 외면했던 것과 비교하면 진일보한 반응이다.

이후 인터넷기업협회가 아닌, 택시 업계와 카풀 업계가 국토부의 중재로 물밑교섭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택시 업계가 카풀 활성화를 위해 내건 조건이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카풀 업계가 난색을 보이자 택시 업계는 기어이 판을 흔들었다. 택시 4단체는 23일 성명을 발표하며 “카풀 합법화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거부하며 택시 생존권 사수를 위해 공동 투쟁한다”면서 “카풀 합법화 반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의료기기, 은산분리 완화 등 규제 개혁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조만간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모빌리티 산업의 규제 개혁과 관련된 논의가 벌어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택시 업계가 카풀 활성화 막바지 정국에서 강공모드를 선택, 협상 우위에 서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카풀 합법화를 두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가운데 일반인 카풀 이용자들로 구성된 카풀러가 나섰다.

카풀러가 25일 성명서를 통해 문제삼은 것은 카풀에 반대하는 택시 업계의 논리 중 '국민을 모욕하는 장면'이다.

카풀러는 "택시 업계는 2018년 8월23일 한 일간지를 통해 '카풀 운전자의 경우 면허제가 아니어서 성범죄자 등 범법자가 채용될 수 있다'며 카풀에 운전자로 참여하는 일반 시민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했다"면서 "▲승객이 없는 낮 시간대에 몰려나와 운행하면서 수익이 낮다며 한탄하고, ▲승객들을 골라 태우며 이익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승차난을 스스로 해결해 보겠다며 카풀을 이용하는 국민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치부하는 파렴치함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풀러는 "지난해 도로교통안전공단이 적발한 전과자 택시기사가 862명에 달했으며 이중 51%가 성범죄 전과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택시 성범죄로 불안해 하는 여성들을 위해 112 신고 어플을 사용하라는 택시이용 가이드가 나올 정도"라면서 "택시 업계는 이익만을 위한 억지 주장을 멈추고 성실하게 살아온 국민을 모욕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카풀이 기존 대중교통 질서를 교란한다는 주장에도 반박했다. 카풀러는 "택시 업계는 카풀 운전자 200만명이 80% 가동할 경우 택시 시장의 59%가 잠식되어 하루에 약 178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한다고 발표했다"면서 "운전자 5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카풀 시장의 규모부터 왜곡해 상식을 벗어난 무리한 수치"라고 정조준했다.

카풀러는 또 "해외는 라이드셰어링 시대로 진화하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택시의 힘센 기득권 울타리에 갇혀 승차난에 허덕이는 것도 모자라 현행법을 준수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대에 제한된 시간, 제한된 횟수로 운행해야 한다는 지침을 성실히 지키고 있음에도 택시업계로부터 범법자로 몰리고 있다"면서 "국민들은 택시가 채우지 못하는 공백을 채울 카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는 이동의 불편함을 느껴온 국민들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풀러는 마지막으로 "택시 업계가 국민들의 택시 수요를 모두 맞춰 만족할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면, 국민들 스스로가 택시의 공급부족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노력을 폄하하고 방해하는 이기적인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승차난으로 인한 고통은 뒷전으로 미루고,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해 국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카풀러는 풀러스와 럭시 등을 활용하는 일반인들이 모인 단체다. 지난해 네이버 밴드를 통해 정보 교환을 위해 만들어졌으며, 특정 모빌리티 기업과는 관련이 없다는 설명이다. 김길래 카풀러 단체장은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택시 업계가 엉터리 통계로 카풀 운전자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모는 것도 모자라 억지 주장만 계속하고 있다"면서 "5만 카풀 운전자를 대표해 성명서를 내게 됐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말했다.

김 단체장은 자기를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밝혔고 카풀러의 회원은 1670명 수준이다. 카풀을 둘러싼 논란이 심해지는 가운데 일반인 카풀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정국의 새로운 변수 중 하나가 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