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8월 28일 정오쯤 SEC 조사관은 로이은행의 계좌 관리자인 마이어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조사관은 SEC의 조사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로이은행이 계좌 내역을 자발적으로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SEC의 전화를 받은 마이어는 충격을 받았다. SEC가 본격적으로 로이은행의 거래 내역을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플레처의 사무실로 황급하게 달려가서 소리쳤다. “우리 이제 똥 됐어.”

SEC 조사관이 언급한 거래 리스트는 명백하게 레빈의 거래를 의미했다. 그리고 SEC가 캠벨의 거래를 역추적해서 로이은행까지 오게 된 것도 알게 됐다. 이 상황은 이미 지난 7월, 캠벨이 전후 사정을 로이은행에 알렸기 때문에 로이은행은 레빈의 거래가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SEC가 로이은행의 담당자에게 직접 전화하자 로이은행은 다가오는 위험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됐다.

플레처는 이 위급 상황을 레빈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레빈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것은 바하마 은행법의 엄격한 비밀 보호 조항이었다. 9월 2일, 그는 나소로 왔고 플레처와 마이어에게 SEC의 조사는 특별한 것이 없을 것이며, 이 문제는 잘 처리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그는 은행의 간부들에게 그의 투자는 은행이 관리하는 포트폴리오 계좌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을 맞추자고 했다. 은행은 SEC의 조사가 조용해질 때까지 거래하지 말 것을 제안했지만 레빈은 거절했다. 그는 자신이 겁먹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오히려 유죄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빈은 이 미팅에서 로이은행에게 중요한 제안을 했다. 만약 로이은행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대응해야 한다면 미국의 하비 피트(Harvey Pitt)를 선임하라고 했다. 9월 초, 로이은행은 레빈의 추천대로 하비 피트에게 연락해 SEC를 상대하는 법적인 문제에서 로이은행을 대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피트는 미국의 증권법 소송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변호사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SEC에서 오래 근무했고, 마지막으로 수석 변호사를 역임한 후 민간 로펌인 프리드 프랭크 해리스 슈리버 앤 제이콥슨에 조인했다. 이후 그는 SEC의 조사 관련 분야에서 명성을 날렸다.

피트 이외에 뉴욕 사무소의 선임 소송 파트너인 마이클 라우치가 이 사건에 함께 참여했다. 그는 프린스턴과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후 연방 검찰에서 4년간 근무한 후 1983년에 로펌 프리드 프랭크에 조인했다. 그 역시 증권 소송 분야의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었다. 운명의 장난인가? 레빈의 추천에 의해 로이은행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된 피트는 최후에 로이은행을 구하기 위해 SEC에 레빈을 팔아넘기는 아이러니를 연출한다.

피트는 정말 비싼 변호사였다. 그는 한 시간에 300달러를 청구했고, 사안이 복잡한 경우에는 그 몇 배를 청구했다. 그는 정열적으로 일했고, 항상 비행기 1등석을 이용했으며, 급할 경우에는 전세 비행기를 이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고급 호텔만을 이용했다.

피트는 동료인 마이클 라우치 변호사와 함께 나소를 방문했다. 피트가 플레처와 마이어를 만나기 위해 나소에 왔을 때 마이어는 그를 위해 싸구려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 호텔에는 더운 물이 나오지 않아 피트는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처음으로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이러한 정황은 로이은행이 피트를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피트는 나소에 와서 마이어, 플레처 그리고 리처드 쿨손 변호사를 만났다. 쿨손은 로이은행을 위해 일하고 있던 미국 변호사였다. 로이은행은 피트를 변호사로 선임했지만 레빈의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은행 계좌를 통해 이루어진 거래는 마이어의 증권 분석과 리서치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은행의 간부들은 자신들의 변호사인 피트에게 결코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11월 말까지 로이은행의 간부들은 레빈의 은폐 계획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SEC의 압박은 커지고 있었고 중간에 있는 피트는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었다. 피트는 로이은행이 리서치 자료를 분석해 투자했다는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피트는 바하마 은행법상 고객의 정보를 제출할 수는 없지만, 은행의 ‘옴니버스 계좌(Omnibus Accounting)’(옴니버스 계좌란 통합 계좌라는 의미인데, 글로벌 자산운용사, 증권사, 은행 등은 옴니버스 계좌, 즉 하나의 계좌를 통해 다수 고객의 주문을 통합해 한 번에 주문과 결제를 처리하는 계좌를 의미한다)의 구성 내용까지는 제출하겠다는 타협안을 SEC로부터 받아냈다. 피트는 다시 나소로 가서 플레처와 마이어를 만났다. 비록 제한적이었지만 옴니버스 계좌가 몇 명의 투자자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SEC에 제공하는 것도 스위스 본국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스위스 로이은행 본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본사의 수석 변호사인 한스 피터 샤드를 나소로 급파했다.

일요일 밤 늦게 바하마에 도착한 샤드는 공항에 마중을 나온 플레처와 함께 로열 바하마 호텔로 갔다. 쿨손과 마이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플레처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SEC로부터 제출 요청을 받은 28건의 거래 리스트, 그리고 그 계좌는 한 명의 것이지만 은행이 관리하는 계좌라고 거짓 답변했다고 설명했다. 플레처는 법률문제에 대해 본국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그렇게 되지 못했고, 미국 변호사들에게 사실을 말하면 SEC에게 그대로 전달될까 봐 그들에게도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다.

샤드는 처음으로 이 사건의 전체를 알게 됐다. 그는 은행 직원들이 은행을 대리하는 변호사에게조차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야 할지 마음의 결정을 했다. 그는 “우리는 피트와 라우치에게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신의 변호사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은 이해가 가지 않아요. 그것은 여러분들이 한 가장 최악의 행동입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방향은 정해졌다.

월요일, 피트와 라우치는 개인 비행기를 전세 내어 나소를 방문했다. 피트는 화요일에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에서 중요한 구두변론이 예정돼 있었다. 정기 항공편으로는 하루 만에 뉴욕에서 나소를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샤드는 나소를 방문한 피트와 라우치에게 잠깐의 형식적인 인사를 마치자마자 직설적으로 진실을 말했다. 은행의 옴니버스 계좌 뒤에는 오직 한 계좌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피트와 라우치는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한 내부자거래였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내부자거래 사건이 될지도 몰랐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피트와 라우치는 은행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했다. 로이은행의 운명은 두 변호사의 손에 맡겨졌다. 샤드는 두 변호사에게 은행은 이 건에 대해 전폭적으로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샤드는 현명했다. SEC에게 지금까지 이야기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린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동안 은행 직원들이 자신들의 변호사들에게조차 사실을 말하지 않고 은폐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까지도 SEC에 말하는 것을 허용했다.

플레처와 마이어는 문제가 된 계좌에 대해 처음부터 일어났던 모든 일을 피트와 라우치에게 이야기했다. 두 변호사는 이제 이 계좌에서 발생한 모든 일을 알게 됐다. 그리고 SEC의 조사와 관련해서 진행된 은폐 작업도 고객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아직은 레빈을 “Mr. X”라고만 불렀지만, 그가 드렉셀의 뉴욕 본사에 있는 투자은행가라고까지 알았다. 그들은 Mr. X가 1981년에서 1985년 사이에 190만달러를 인출해 간 것도 알게 됐다. 그들은 이 사건이 엄청난 내부자거래 사건이 될 것으로 직감했다. 월요일 밤 늦게 개인 비행기의 트랩을 오르는 두 변호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