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5월 22일, 뉴욕 금융센터의 중심에 위치한 메릴린치 뉴욕 본사에 익명의 이상한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에는 발신자의 이름이나 주소도 없었고, 단지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의 우체국 소인만 찍혀 있었다. 이 편지는 문법도 틀리고 철자에도 오류가 있었지만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었다. 메릴린치 카라카스 지점의 두 명의 증권 브로커가 내부정보를 이용해 거래를 하고 있다는 투서였다.

레빈이 주도면밀하게 내부자거래를 했지만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레빈만이 그 ‘링(Ring)’에서 수익을 내는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다. 레빈이 만들지 않은 링, 그러한 링이 있을 것으로 상상도 못했던 다른 링들이 작동되고 있었고, 베네수엘라에서 은밀히 작동하던 링에서 문제가 터지면서 링의 중심인 레빈의 거래뿐만 아니라 링과 연결된 모든 비밀 거래 전체를 수면 위로 끌고 올라온 것이다.

레빈의 트레이딩이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는 것을 본 로이은행의 관계자들이 그의 거래를 따라 했다. 그들은 레빈의 내부자거래에 무임승차(Piggybacking)한 것이다. 로이은행의 은행장인 프레스, 책임 매니저 플레처, 그리고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마이어 모두가 레빈의 거래를 따라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시 뉴욕에서 로이은행의 많은 주문을 처리했던 메릴린치의 브로커였던 브라이언 캠벨도 레빈의 거래를 따라 한 것이다. 캠벨은 그의 여자 친구에게 정보를 전달했고,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지점의 증권 브로커인 카를로스 쥬빌라가에게도 전달했다. 그리고 쥬빌라가는 같은 지점의 동료인 맥스 호퍼에게 정보를 전달했다. 이처럼 레빈의 비밀 거래는 나소에서 출발해서 뉴욕,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까지 확대되고 있었다.

이 편지는 메릴린치 컴플라이언스 부서의 부책임자인 리차드 드루(Richard Drew)의 책상 위에 놓여졌다. 드루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14년간 근무한 후 1981년에 메릴린치에 들어온 변호사였다. 메릴린치는 당시 컴플라이언스 인력을 75명이나 두는 등 월가에서 가장 컴플라이언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였다. 메릴린치는 문제의 두 증권 브로커인 쥬빌라가와 호퍼의 지난 12개월간 트레이딩 내역과 은행 계좌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흥미로운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월가에서 주목을 받았던 M&A 거래들을 거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은행 계좌를 조사한 결과 쥬빌라가가 브라이언 캠벨에게 총 8000달러를 2번의 수표를 통해 보낸 사실도 발견했다.

캠벨은 뉴욕 메릴린치 본사의 국제부에서 기관투자자들을 상대하는 증권 브로커였는데, 베네수엘라의 증권 브로커가 캠벨에게 수표를 보냈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캠벨은 지난 2월에 메릴린치를 떠나 스미스 바니로 자리를 옮겼다. 드루는 캠벨과 쥬빌라가와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1982년 메릴린치에서 증권브로커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두 사람이 같은 클래스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시 캠벨의 트레이딩 내역을 조사한 결과, 캠벨, 쥬빌라가 그리고 호퍼가 거래한 주식이 모두 동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단지 차이는 캠벨이 베네수엘라의 브로커들보다 하루 먼저 매수했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캠벨의 정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을 알아내는 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캠벨의 가장 큰 고객은 나소에 있는 로이은행이었다. 로이은행의 거래내역을 들여다 본 그는 충격을 받았다. 캠벨과 베네수엘라의 증권 브로커가 매수한 주식과 로이은행이 매수한 주식이 모두 일치했기 때문이다. 차이라면 로이은행의 매수 규모가 훨씬 컸을 뿐만 아니라 은행은 브로커들보다 더 많은 M&A 주식을 거래했다는 사실이었다. 캠벨은 로이은행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이은행은 어떻게 M&A 공시가 나기 직전에 매수해서 엄청난 이익을 남기고 매도하는 신출귀몰한 거래를 할 수 있었을까? 내부정보를 이용한 거래가 아니면 상상을 불허하는 행운의 연속인데, 어느 쪽 확률이 높을까?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오랫동안 내부자거래를 조사했던 드루가 볼 때, 로이은행의 거래 내역은 행운의 연속으로 보기에는 너무 의혹이 많았다. 그는 메릴린치에서 내부자거래 조사에서 최고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로마노를 불렀다. 로마노는 1970년대 중반까지 뉴저지주에서 연방 검사로 일했고, 1977년에 SEC에 조인해서 집행국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83년에 메릴린치로 옮겨 온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였다. 드루의 설명을 들은 로마노는 단번에 로이은행의 거래는 내부정보를 이용한 내부자거래라고 확신했다.

이제 전체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누군가가 M&A 정보를 공개 전에 입수하고 로이은행의 계좌를 통해 거래를 해서 엄청난 이익을 올렸고, 그의 거래가 확실하게 이익을 보는 것을 알게 된 캠벨이 그 거래를 따라 했고, 캠벨은 이 정보를 쥬빌라가에게 전달했고, 쥬빌라가는 다시 호퍼에게 전달했고, 그들은 캠벨에게 사례로 8000달러를 보낸 것이라는 그림이 그려졌다.

6월 중순, 로마노는 쥬빌라가와 호퍼를 뉴욕의 메릴린치 본사로 소환했다. 예상대로 쥬빌라가는 로이은행의 메인 브로커인 캠벨로부터 정보를 받아 거래했다고 실토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부자거래는 부인했다. 쥬빌라가는 단순히 캠벨이 중요한 고객의 거래를 따라 하면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물론, 캠벨은 쥬빌라가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대가를 요구했다(메릴린치는 둘을 즉각 해고했지만, 내부자거래로 처벌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들은 해당 정보의 출처에 대해서는 모르는 리모트 정보 수령자였기 때문이다).

드루와 로마노는 문제에 봉착했다. 쥬빌라가와 호퍼로부터 캠벨까지는 추적이 가능했지만 외국 은행에 대해서는 비밀보호법 때문에 추적이 불가능했다. 그들은 로이은행에 관해서는 SEC에 사건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6월 28일, 로마노는 SEC의 집행국 책임자인 개리 린치(Gary Lynch)에게 전화를 했다. 로마노의 전화를 받은 린치는 바로 밑의 부책임자인 존 스턱을 스피커폰으로 연결해서 로마노로부터 메릴린치가 조사한 내용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메릴린치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SEC는 여름이 끝날 무렵 로이은행이 거래했던 27개의 의문스러운 리스트를 확보했다. SEC는 쥬빌라가와 호퍼를 소환했다. 캠벨 역시 소환되어 3일간 조사를 받았다. 캠벨은 로이은행의 거래를 따라 한 것은 맞지만, 메릴린치의 조사보고서도 참고하면서 거래했다고 변명했다. SEC 역시 메릴린치가 도달한 지점까지는 쉽게 올 수 있었다. 사건의 전모도 파악했다. SEC가 총구를 겨눠야 할 타깃은 로이은행이었다. 이제 로이은행의 계좌를 이용해 내부자거래를 한 계좌의 실제 주인공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일만 남았다.

궁극적으로 SEC는 바하마의 비밀보호법이라는 장벽을 넘으면서 비밀계좌의 주인공이 데니스 레빈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를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전혀 예기치 않게 베네수엘라에서 발사된 총알은 데니스 레빈의 심장을 관통했고, 다시 그 총알은 1990년대 월가를 지배했던 두 명의 황제를 향해 날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총알은 대포가 되어 1990년대를 뒤흔든 세기의 내부자거래 스캔들로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