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두산 일송정 해란강은, 227.3×181.3㎝ Acrylic on canvas, 2017

“역사는 이야기들로 해체되는 게 아니라 이미지들 속으로 해체되는 것이다. 그들(이미지들)은 가시권 속으로 빛을 발산할 때에만 인지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참된 상(像)은 늘 회복 불가능하게 사라져갈 위험에 처하며, 무심한 사유에게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지나가버린다.”<발터 벤야민(예술, 종교, 역사철학), N.볼츠, 빌렘 반 라이엔 지음, 김득룡 옮김, 서광사 刊>

회화가 역사학적 궤적을 남긴 모티브를 품으면 어떤 정신사적 감흥으로 피어날까. 적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은 요새였던 고구려 산성들. 하나로 뭉쳐 생과 사를 함께했던 강인한 결집력은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으리. 물, 나무, 불, 흙, 쇠(金)의 오행(五行)과 생과 소멸의 순환이라는 대자연의 이치가 어떤 좋은 기운이 되어 흐른다.

▲ 삼족오(三足烏) 노닐다, 195×114㎝

그런가하면 ‘초원길’ 열어 서역과 교역했던 호방한 세계관의 고구려인들이 즐겨 입던 점무늬 옷처럼 화면은 수많은 점으로 이어져 있다. 저 광활한 들판에 700년 고구려역사 그 드라마틱한 대장정(大長程)의 맥박이 숨 쉬고 있다. 어디쯤에선가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글귀가 과거와 오늘을 잇는 데자뷔(deja vu)처럼 벅찬 감동으로 밀려오는 듯하다.

김대영 화백(KIM DAE YEOUNG, 김대영 작가)은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할 때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던 일송정 해란강을 굽어보면서, 멀리 백두산이 보이는 웅지를 폈던 기상을 회화적 감성을 부여하여 ‘백두산 일송정 해란강은’에 담았다”라고 전했다.

▲ 겨울나기-조팝나무, 92×65㎝

고구려국내성고분벽화의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 삼족오(三足烏). 작품 ‘삼족오 노닐다’는 유려한 날개를 펼치며 생동감 넘치는 기상으로 백두산 천지 위를 날면서 저 멀리 광활한 평야의 터전을 달리는 뜨거운 맥박의 웅지를 실어 나른다.

◇어머니 품 같은 넝쿨

한여름 푸름은 퇴색됐지만 이듬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도록 새로움의 에너지를 보듬고 있는 넝쿨. 혹한겨울이 지나고 새싹을 보듬는 갸륵한 넝쿨의 헌신은 어머니 품과 다르지 않으리. 생명의 발현 그 잠재적 힘을 어찌 가벼이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