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은 산업부 팀장

산지나 농업계, 지자체의 농업 담당자를 만나거나 연락할 때 많은 이들이 “언론의 자극 보도 때문에 불신만 커져요”, “아직도 많은 언론이 금(金)쌀·금배추 등의 어휘를 쓰던데 좀 식상한 거 아녜요?”, “왜 항상 농산물을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몰아가는 건지 모르겠어요. 만만한 게 농업인가요?”라며 언론에 대한 불신을 기자에게 종종 드러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아니에요. 언론도 이전과 다르게 많이 변하고 있고, 균형감을 갖고 접근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저부터 잘 할게요”라며 답하면서도,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한 달 가까이 전국에서 평균 35도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농작물 피해와 가축 폐사가 급증하다 보니, 많은 매체들이 관련 보도들을 쏟아내고 있다. 주로 폭염에 따른 농산물 가격 급등에 관한 내용이다. 헤드라인을 보면 “폭염이 불붙인 물가폭탄”, “폭염에 과일·채소 금값”, “폭염이 부른 금수박” 등 유독 ‘금’과 ‘폭탄’이라는 자극적인 단어가 많이 붙는다. 더위를 못 이기고 불쌍하게 죽은 가축의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독자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쌀값이 오르면 언론들이 ‘금쌀’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며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여기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연 쌀을 금에 빗대는 게 상식에 맞는 것일까? 가격을 따지자면 현재 금 평균 시세는 1g에 4만4000원대, 쌀은 겨우 2.2원 수준(80㎏ 상품 기준 2018년 7월 현재 17만7000원대)으로 무려 2만배 차이가 난다. 사실 쌀은 약 일 년 전인 지난해 7월만 하더라도 가격이 20년 전 수준인 12만원대로 폭락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해 국민 한 명이 먹은 쌀 소비량은 61.8㎏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소비량만 따지면 1년에 국민 한 사람이 쌀 한 가마도 못 먹고 있다. 지난 7월 소비자물가에서 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0.6% 안팎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쌀을 금에 빗대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

연일 귀한 대접을 받는 ‘배추’는 14일 현재 10㎏ 한 망 기준 1만5000원대(고랭지)로 1g당 1.5원, ‘수박’은 같은 기간 개당(평균 6㎏ 기준) 2만6000원대로 g당 4.3원 수준이다. 배추는 현재 평년보다 3600원, 수박은 8000원 정도 오른 것은 맞다. 현 시점에서 소비자가 충분히 부담을 느낄 수 있으나, 이런 가격대가 연중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산지 얘기로는 수박은 3개월 전만 하더라도 일부 대형마트에서 미끼상품으로 한 통에 6900원이라는 ‘헐값’에 판매됐다. 고랭지배추는 올해 폭염피해가 있었지만 전반적인 작황은 언론이 크게 걱정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며, 대개 8월 하순부터 출하량이 크게 늘기 때문에 오히려 큰 폭의 가격하락이 예상돼 걱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요즘 배추 한 망으로 김치를 담그면, 김치 소비가 줄어든 탓에 4인 가족 기준 한 달 정도 먹는 양이라고 한다. 수박 역시 한 통이면 4인 가족이 사나흘, 1~2인 가구는 일주일 이상 냉장고에 두고 먹을 수 있다. 어느 식당에 가도 밥 한 공기 가격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0원을 넘지 않는다.

당장 밥 한 끼만 굶어도 정신이 몽롱하고 의욕이 떨어져 일상에 영향을 받지만, 금은 가지고 있지 않아도 삶에 불편을 끼치지 않는다. 당연한 얘기지만 쌀과 채소, 과일 등의 먹을거리는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에너지원이자 건강, 그리고 생존권과 직결되는 농산물이다. 이에 반해 금은 사치품이다.

꼭 식량안보라는 대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농산물 가격을 굳이 금값으로 빗대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맛있으면서 안전하고, 색상과 모양까지 예쁘면서도 가격까지 싸야’ 그나마 소비자에게 취급받을 수 있는 수박 한 통·배추 한 포기 등의 우리 농산물을 언론의 입맛에 맞게 물가상승의 주범으로만 몰아붙인다면, 갈수록 증가하는 생산비용과 잇따른 시장개방, 고령화, 인력부족 등 다방면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농가의 땀과 눈물은 누가 알아줄까? 언론의 무책임한 표현에 농민의 삶은 더욱 고달파진다. 나부터 반성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