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올 초 삼성증권에 이어 유진투자증권도 ‘유령주식’ 매도 사태가 발생했다. 불과 4개월 만이다. 이번에는 국내가 아닌 해외거래에서 발생했다. 증권사 주식매매시스템이 전방위적으로 허술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친 것은 다름 아닌 주가연계증권(ELS)이었다. 과거 증권사들의 ELS 시세조종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시세조종 소식을 접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증권사가 공매도를 통해 해당 ELS의 기초자산 가격을 낮춰 이익을 취하면 고객도 잃고 기업의 연속성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대담한 행동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었다.

증권사의 시세조종을 부정했던 또 다른 이유는 수량이었다. 증권사가 공매도를 위해 많은 주식을 한 번에 빌려오기 어렵다는 판단이었다. 종목이 아닌 지수가 대상이라면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유령주식 사태는 실제 체결이 됐다는 점에서 ‘유령’이 아니었다. ‘실물’로 살아 움직이는 주식이었다. ‘충격’이라는 말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공매도를 위해 주식을 빌리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한국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듯 증권사가 주식을 찍어내면 그만인 셈이다. 그것도 무한대로.

금융투자업계에서는 “ELS의 기초자산에 직접투자하지 말라”는 말도 나온다. 과거 화학, 자동차, 홍콩H지수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ELS는 손실이 발생하거나 만기 전 투자자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ELS의 기초자산은 부진한 것일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본 이유는 수급에서 찾을 수 있다. 특정 자산에 대해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것은 이에 상응하는 매도 물량이 나오기 때문이다. 해당 자산의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한 주에도 셀 수 없이 많은 ELS가 쏟아져 나온다. 편입 기초자산에 대한 매수물량도 상당하다. 그러나 ELS 발행이 해당 자산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ELS가 ‘폭탄’을 끌어안고 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물론 지수형 ELS의 기초자산이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종목형 ELS가 문제다. 그러나 국내외 모든 증권사들이 유령주식을 만들어 매도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수도 얼마든지 끌어내릴 수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분명 ‘의혹’이지만 이번 사태로 증권사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삼성증권의 우리사주 배당지급 시스템은 지난 20년간 개선되지 않았다. 현금배당과 주식배당은 업무처리 화면이 분리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일부 여타 증권사도 유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었다.

금융당국은 ‘20년’ 만에 점검에 나섰으니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그간 증권사는 기관투자자가 주식을 차입했다고 통보하면 이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공매도를 중개해줬다. 이를 인지한 금융당국은 최근 증권사에 차입여부를 확인토록 했다. 이행하지 않으면 강화된 제재를 받도록 하는 대책도 내놨다. 다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일각에서는 공매도를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공매도는 매수의 반대편에 서서 시장 가치를 조절하고 거품을 막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 순기능은 충분히 살리되 불공정거래가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은 막아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은 코스닥벤처펀드 도입, 공모 리츠 활성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초기 단계인 만큼 미흡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을 지탱하기 위한 기반여건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향후 어떤 위험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닥칠지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말이다. 금융 선진국은 아직 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