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패를 가졌다고 해서 도박에서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은 영화 <타짜> 중 한 장면. 출처= 네이버 영화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국내외 많은 기업들은 콘텐츠 경쟁력이라는 ‘원 아이드 잭’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카드게임에서 잭을 잡았다고 해서 승률이 100%가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콘텐츠 경쟁력을 갖췄다고 해서 시장의 선도 주자가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 산업은 초기에 투입되는 막대한 비용에 비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산업인 것이다.

불확실성의 함정

콘텐츠산업의 순환구조는 제조업과 다르다. 시간과 자본을 투입한 생산의 결과물이 어떤 수량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기에 투자 규모와 사업의 성공 확률이 항상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과거 성공이 미래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이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영화 <한 솔로:스타워즈 스토리>(2018)다. 원작 IP에 대한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작품이고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됐지만 흥행에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 스타워즈 IP를 활용하고도 흥행에 실패한 영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출처= 네이버 영화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는 작품성에서는 스타워즈 마니아들에게서 호평을 받았지만 전 세계 상영 수익은 3억4400만달러(약 3852억8000만원)를 올렸다. 제작비 2억5000만달러(약 2796억2500만원)가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스타워즈’라는 콘텐츠의 명성을 감안하면 이 영화는 흥행 면에서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즈니가 수조원을 들여 ‘어벤져스’와 ‘엑스맨’이 모두 등장하는 역대 최강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어도 흥행에 처참하게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콘텐츠 업계의 가능 큰 리스크인 ‘불확실성’이다.

신지원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정책과 연구원은 “소비자들의 선호나 취향이 급변하기 때문에 이를 맞추거나 이후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콘텐츠 산업의 위험 요소 중 하나”라면서 “이는 세계 최대의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 판에서 이기려면

이처럼 불확실성이 크면서도 치열한 콘텐츠 경쟁에서 ‘원 아이드 잭’을 잡아 우리 콘텐츠 기업들이 글로벌 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먼저 산업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우리 콘텐츠 업계의 문제점을 크게 3가지로 요약한다. 첫 번째는 다른 산업에 비해 투자재원 마련이 쉽지 않아 자본력을 지닌 몇 개의 대기업들이 업계를 이끌고 있고, 두 번째는 창작자나 제작자의 지원은 약한 반면 콘텐츠 유통에 유리한 수익구조가 고착화돼 있으며, 세 번째는 보유한 IP에 비해 플랫폼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첫 번째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힘이 있는 대기업에 콘텐츠 투자를 위한 자본이나 역량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자본의 원활하지 못한 유입으로 콘텐츠 시장 참가자들의 숫자가 일부 대기업으로 제한돼 경쟁력을 더 확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현우 한국콘텐츠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콘텐츠 업계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CJ E&M의 연간 매출은 1조7000억원대(2017년 기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 매출일지는 몰라도 기업 인수 금액으로만 수십조원이 오고 가며 전체 규모 2000조원의 글로벌 시장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면서 “장기 관점으로 콘텐츠의 잠재력을 보고 더 많은 자본들의 유입과 투자를 받아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이 더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두 번째 문제에 대해 콘텐츠 연구자이자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의 필진인 배기형 전 KBS PD는 “콘텐츠 유통채널들이 우월 지위를 악용해 창작자들에게 불공정한 계약을 강제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런 관행은 방송, 영화, 웹툰 등 콘텐츠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플랫폼보다는 IP 영역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악순환의 고착은 결국 우리 콘텐츠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콘텐츠 업계의 이런 불공정 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관들을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콘텐츠진흥원은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안(가칭)’ 추진 준비와 함께 ‘공정 상생 센터’를 운영해 업계의 불공정 사례로 피해를 입은 기업들의 신고를 받고 문제를 조정하고 있다.

세 번째 문제에 대해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신기술과 콘텐츠가 접목되는 실험은 계속될 것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디바이스, 플랫폼의 확장과 OTT 서비스 보편화는 기존의 영상 콘텐츠 이용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덜어줄 것”이라면서 “넷플릭스 등으로 대표되는 글로벌 유통 플랫폼에 우리 콘텐츠를 더 이상 종속시킬 게 아니라 우리 콘텐츠를 전 세계에 제대로 전할 수 있는 우리의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전 세계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우리나라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일련의 문제는 우리 콘텐츠 업계의 경직된 산업구조 개선과 정부의 실효성 있는 정책 수행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은다. 위정현 중앙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겸 콘텐츠경영연구소장은 “일부 대기업으로 지나치게 집중된 산업구조는 독과점으로 굳어져 콘텐츠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제한하고 있고 정부는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중소 콘텐츠 업체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중소 업체들의 시장 진입을 자유롭게 해 산업의 유연성을 높이고 실효성 없는 콘텐츠 지원정책이나 필요 이상의 규제부터 없애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