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바이오 산업 규제 완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김 부총리도 간담회가 종료된 후 "삼성이 바이오 산업과 관련된 규제 완화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삼성이 바이오 산업을 제 2의 반도체로 여기는걸까?

8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이나 간담회에 동석한 고한승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이사가 직접 바이오 산업 규제 완화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 부회장이 삼성전자에 소속된 상태에서 삼성 바이오 산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경우 그룹을 대표해 발언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이는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 그룹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일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분식회계 논란을 겪는 상태에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고한승 대표이사가 직접 바이오 산업 규제 완화를 거론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삼성은 바이오 산업 규제 완화를 요청하며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약가를 시장이 자유롭게 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건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바이오미실러가 시판되는 순간 오리지널 신약 대비 가격이 강제 하락되는 것과 세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 대목이 핵심이다.

업계의 의견은 갈린다. 바이오시밀러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바이오시밀러에 지원이 시작될 경우 오리지널 신약 개발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않다.

삼성이 김 부총리에게 바이오 산업 규제 완화를 건의한 이유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현재 국내 바이오 산업은 현재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신약 기술력을 내놓은 한미약품과 바이오시밀러 산업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은 셀트리온을 중심으로 지난해까지 국내 바이오 산업계는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도 글로벌 시장 최대 규모의 바이오시밀러 위탁 생산공장을 완공했다. 2015년 기공식 당시 대통령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산업통산자원부 장관 등이 총출동해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스위스의 로슈와 미국의 BMS 등 글로벌 제약사 의약품을 위탁생산하며 존재감을 알린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미래에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상황은 올해 초 돌변했다.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연구개발 능력이 지나치게 '뻥튀기' 됐다는 의혹이 나오는 한편 연구개발 비용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금융감독원의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후자의 경우 연구개발 비용을 자산으로 잡으며 흑자를 유지하던 기업들에게는 치명타를 입혔다.

국내 바이오 산업이 주춤거리고 있으나 삼성에게 바이오 산업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갈 길이 멀지만, 삼성에게 바이오는 분기 영업이익 10조원 이상을 보장하는 반도체 산업이 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바이오 산업은 중장기적으로 꺾이기 어려운 영역으로 평가된다. 한국공학학림원에 따르면 글로벌 바이오 헬스 산업은 2017년 기준 제약 바이오 1조2145억달러, 의료기기 3440억달러의 거대한 시장이다.

글로벌 ICT 기업들도 속속 바이오 산업에 뛰어드는 이유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바이오 전담 자회사 칼리코와 베릴리를 설립해 노화 예방, 헬스케어 데이터를 수집하고 페이스북은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아내와 함께 바이오허브를 설립, 인체 세포 지도를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중국의 알리바바도 2014년 온라인 약품 판매 업체 중신21스지를 인수했고 아마존도 의약 산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 빌 게이츠는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 개발에 3년간 3000만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혔다. 바이오 의약품만 보면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대세기 때문에, 성장의 여백도 넓다는 평가다.

바이오 산업은 반도체와 닮은 구석도 많다. 반도체 설비공정을 구축하려면 길게는 10년을 내다보고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월급사장'이 결정하기에는 부담스럽다는 뜻이다. 바이오 산업도 라인을 깔아 제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긴 안목으로 치밀한 로드맵을 세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경영복귀에 나설 타이밍을 재고 있는 이 부회장에게 바이오 산업이 꼭 필요한 이유다. 산업의 잠재력이 풍부한데다 오너의 결단이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일종의 대의명분도 있다.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 등 조만간 발표될 사회공헌정책과의 시너지도 노려볼 수 있다.

바이오 산업의 중요한 특징, 즉 전자산업을 비롯해 다른 산업의 영역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보이는 점도 중요하다. 이 부회장은 2015년 중국 보아오 포럼에서 바이오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IT와의 시너지를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현재 한국은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중이며 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연금부담과 의료비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면서 “의료와 관광, 문화사업이 융합을 통해 새로운 혁신을 창출하고 여기에 큰 기회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그는“혁신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좋은 비용으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적 측면에서 바이오 산업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부수라고 보는 분석도 있다. 반도체를 핵심으로 삼아 도약했던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와 닮았다.

삼성전자가 1983년 64K D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후 1992년 글로벌 D램 시장 석권, 2002년 낸드플래시 시장 장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 시장의 가능성에 주목했던 이건희 회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4년 이건희 회장이 아버지 이병철 회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재까지 털어 한국반도체 지분 50%를 인수하는 순간,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는 결정됐다. 이건희 회장의 승부수가 반도체라면, 이재용 부회장의 승부수는 바이오라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