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날아온 비행기 한 대가 바하마의 수도 나소의 국제공항에 미끄러지듯 사뿐히 착륙했다. 비행기의 문이 열리자 데니스 레빈(Dennis Levine)은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열대의 강렬한 태양 빛에 눈을 찡그리며 트랩을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여느 여행자들처럼 청바지에 스포츠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의 나이는 이제 27세였다.

그날은 1980년 5월 26일 월요일이었고 메모리얼 데이로 휴일이었다. 바하마는 미국 플로리다 반도 바로 아래 쪽 대서양에 47만㎢에 걸쳐 약 700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 영연방 국가다. 마이애미에서 바하마까지는 비행기로 4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1층짜리 공항 터미널은 에어컨 시스템이 잘 되어 있지 않아 뜨거운 열기가 실내에 가득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온 레빈은 택시를 타고 다운타운으로 향했다.

레빈은 휴가를 즐기러 나소를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동료들에게는 장인을 만나러, 아내에게는 회사 일로 출장을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나소에 왔다. 그가 나소를 찾은 이유는 엄격한 비밀보호법이 작동되는 바하마의 금융산업 때문이었다. 이러한 금융시스템은 지난 10년 동안 바하마를 중요한 역외 금융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이제 영국, 스위스, 프랑스, 미국 등에서 진출한 250개가 넘는 외국의 은행들과 신탁회사들이 바하마의 금융센터인 나소에 사무실을 두고 활동하고 있었다.

다음 날 레빈은 로이국제은행(Bank Leu International)을 찾아갔다. 이 은행은 스위스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은행의 자회사였다. 은행의 총책임자인 장 피에르 프레스는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했다. 레빈은 자신을 미국의 투자은행가(Investment Banker)라고 소개했고, 미국 주식시장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프레스는 은행의 간부인 브루노 플레처를 불렀고, 그에게 새로운 고객을 소개하면서 계좌 개설을 돕도록 했다.

레빈은 프레스와 플레처에게 자신은 전통적인 포트폴리오 분산투자를 하지 않으며 특정 종목에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주식시장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은행의 투자자문은 원치 않으며, 은행은 자기가 원하는 주식을 빠르게 매수하고 매도해 주기만 하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레빈은 다시 한 번 은행의 비밀 정책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콜렉트 콜로 은행에 주문할 것이고, 자신이 먼저 은행에 연락하지 않는 한 전화하는 것을 금지했고 전화번호도 알려 주지 않았다. 레빈은 은행 담당자들에게 자신의 실제 이름을 알려 줬지만, 그는 자신의 익명성을 보호받기 위해 코드로 된 계좌 개설을 희망했다. 그는 ‘다이아몬드’라는 코드네임으로 계좌를 열었고, 주문할 때마다 ‘Mr. 다이아몬드’를 사용했다. ‘다이아몬드’는 그의 어머니의 미들 네임이었다. 고객의 프라이버시와 비밀 보호는 스위스와 바하마에 있는 금융회사에 있어서 일상적인 일이며, 코드 계좌 역시 일상적인 것이었다.

다음 주 초, 레빈은 이전에 거래했던 제네바의 P&C 은행으로부터 12만8900달러를 로이은행으로 전송했다. 6월 5일, 레빈은 첫 주문으로 콜렉트 콜을 통해 다트 인더스트리(Dart Industries) 주식 1500주를 매수했다. 다음 날 다트의 주가는 크래프트(Kraft)가 다트와 합병한다는 발표를 하자 상당할 정도로 상승했다. 레빈은 주가가 상승하자 즉시 매도했다. 레빈은 로이은행을 통한 첫 거래에서 하루 만에 4093달러를 벌었다. 이제 게임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레빈은 6년 동안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거래를 통해 약 11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된다.

레빈은 자신의 비밀 거래가 완전범죄가 될 것으로 확신했다. 이미 SEC는 몇 차례 정보를 가지고 레빈을 조사했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하고 물러났다. 적당한 때에 거래를 멈췄다면 아마 완전범죄로 끝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탐욕에 눈이 멀어 월가의 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그의 야망을 통제하는 것은 아마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바하마에 있는 비밀 계좌를 지나치게 신뢰했다. 미국 정부가 나소에 있는 자신의 계좌에 절대로 접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이 있는가? 레빈의 비밀거래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뜻밖의 사건을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고, SEC는 Mr. 다이아몬드를 잡기 위해 오랫동안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형사기소를 위해 뉴욕 남부지방 연방 검찰청(이하 ‘뉴욕 남부지검’)과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1986년 5월 12일, 드디어 운명의 날이 왔다. 레빈은 평소처럼 아침 8시에 맨해튼 중심가에 위치한 드렉셀 번햄 램버트(Drexel Burnham Lambert)의 사무실에서 바쁜 일정을 시작했다. 외부에서 중요한 M&A 미팅을 마치고 오전 11시경 사무실로 복귀했다. 비서가 신분을 밝히지 않은 두 명의 남자가 레빈을 만나러 왔다 갔는데 옷차림이 고객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잠시 후 비서는 오전에 왔던 두 사람이 다시 찾아왔다고 연락을 했다.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레빈은 SEC가 지난 10개월 동안 자신의 거래와 관련해서 바하마의 로이은행을 조사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아침도 로이은행과 통화했지만 은행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레빈은 비서에게 자기가 사무실에 없다고 전하라고 말하고는 사무실에서 달아났다.

그는 건물을 나서자마자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아내인 로리가 놀라는 표정으로 “무슨 일이야?”라고 물었다. 때는 점심때였고, 그가 아무 연락도 없이 점심시간에 집에 온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놀란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이야?”라고 재차 물었다. 레빈은 그냥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아”라는 말만 했다. 로리는 무슨 일인지 말하라고 재촉했지만 그는 지금 말할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BMW를 타고 집을 서둘러 나왔다.

그는 차 안에 있는 핸드폰을 통해 사무실로 전화를 했다. 비서인 마릴린이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다우존스 뉴스를 보았냐고 물었다. 다우존스 뉴스에는 레빈이 오랜 기간에 걸쳐 바하마에 계좌를 두고 내부자거래를 했다는 긴급 뉴스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로리는 법무부에서 나온 두 사람이 레빈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레빈은 그들 중 한 사람과 통화를 했고, 오후 7시 30분에 집에 갈 수 있으니 그때 만나자고 했다. 다시 로리와 통화했을 때 아파트 건물 전체가 기자들로 둘러싸였고, CNN을 포함해서 모든 방송국 카메라들이 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레빈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법무부 수사관과 다시 통화했고, 연방 법원 뒤편인 ‘세인트 앤드류 플라자 1번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곳은 뉴욕 남부지검의 주소였다.

그는 정신없이 BMW를 몰면서 뉴욕시를 초조한 마음으로 헤매고 다녔다. 그는 변호사와 통화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꼈다. 7시 30분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스스로 맨해튼 남쪽에 위치한 뉴욕 남부지검으로 운전해 갔다. 연방 수사관은 그에게 체포 영장을 보여주면서 수갑을 채웠다. 월가 황태자의 귀에 미란다 원칙이 들리고 있었다.

레빈의 체포 사실은 TV를 통해 전국에 긴급뉴스로 방송되고 있었다. 뉴욕의 변두리 출신이 월가의 정상에 오르기까지 힘겹게 달려왔던 인생이 그렇게 산산조각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드렉셀에서 해고됐고, 모든 재산은 압류됐다. 아내 로리는 “도대체 내부자거래가 무엇이냐?”라고 절규했다. 그의 화려한 경력, 재산, 명예,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월가의 황태자로 인정받던 레빈은 이제 범죄자가 되어 법의 심판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 글은 Douglas Frantz, Levine & Co.: Wall Street’s Insider Trading Scandal (Henry Holt and Company, 1987); Michael Stone, “INSIDERS – The Story of Dennis Levine and the Scandal That’s Rocking Wall Street,” New York, July 28, 1986, 28, 그리고 판결문을 참조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