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일 오전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를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났다. 김 부총리는 “기업의 목소리를 듣고 정부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모색하고 고민해왔다”면서 “우리 경제는 굉장히 중요한 전환기를 맞았고 패러다임을 바꾸는 시기다. 대표주자인 삼성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계산서는 없다”

김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고, 대기업 방문은 네 번째다. 김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LG를 시작으로 1월 현대차, 3월 SK, 6월 신세계를 방문하며 구본준 부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최태원 회장, 정용진 부회장을 연이어 만나 현장 스킨십을 강조했다.

김 부총리는 오너들을 만난 자리에서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맞춰 국내 경제 활성화에 나서는 한편,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에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 기업들도 화답했다. LG그룹이 올해 19조원을 투자하고 1만명 고용을 약속한 것과 현대차가 5년간 4만5000명을 고용하겠다고 발표한 시점은 모두 김 부총리 방문 직후에 벌어진 일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도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판로지원을 강조했으며 SK하이닉스의 경기도 이천 공장 신축도 김 부총리의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 부총리의 삼성전자 방문도 지금까지의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김 부총리가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삼성을 8월 초 방문할 계획”이라고 언급할 당시 재계에서는 ‘김 부총리 방문, 삼성의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상생협력 방안’이 나올 것으로 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9일 인도 노이다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서 이 부회장을 만났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관련 재판이 아직 대법원 판결을 남겨둔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직접 만나 국내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문 대통령에게 “노력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함에 따라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을 만나 일종의 확답을 받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김 부총리가 이 부회장과 만난 후 삼성전자가 100조원 이상의 시설투자는 물론, 중소기업과의 상생협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규모 펀드를 구축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삼성전자가 지난달부터 상생협력 보따리를 연이어 꺼낸 장면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130개에 이르는 반도체 협력사에 총 200억원 규모의 격려금을 제공했다. 생산성 격려금과 안전 인센티브 명목이며 생산성 격려금은 2010년부터, 안전 인센티브는 2013년부터 지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에도 반도체 협력사에 상반기 200억원, 하반기 300억원을 격려금 명목으로 제공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31일 2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국내 중소기업, 중견기업에 스마트팩토리 지원을 목표로 5년간 총 600억원을 제공한다고 공시했다. 스마트팩토리 구축에 연간 100억원 규모, 총 500억원을 출연했으며 대상 기업에 대한 판로개척, 인력양성, 신기술 접목 등 종합지원 활동에 연간 20억원 규모, 총 100억원을 지원한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 시점을 두고 고민하는 상황에서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내민 정부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내 대표 기업이라는 상징성에 경제 활성화,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부와 함께 미래를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이달 초 재계 일각에서 김 부총리의 기업 방문을 두고 ‘기업 팔 비틀기’라는 비판이 나오며 분위기가 돌변했다. 정부가 기업을 압박해 계산서를 내미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고, 김 부총리도 결국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지난 2일 “삼성전자 평택공장과 관련해 기업의 투자나 고용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부총리가 삼성전자를 방문해 이 부회장을 만났으나 삼성이 당장 대규모 투자나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발표를 하지 않은 이유다.

삼성 관계자는 “정확히 어떤 의사표현이 오갔는지는 모른다”면서도 “우리(삼성전자)가 별도로 준비하고 있는 안건이 있기 때문에, 6일 회동과는 별도로 조만간 다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를 타진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내민 손을 잡아 일종의 사회공헌을 계기로 국면전환에 나설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삼성 추켜세운 김 부총리...명확한 메시지 던졌다

김 부총리의 말대로 그의 삼성 방문 직후 별도의 투자 계획이나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발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김 부총리가 명확한 메시지는 던졌다는 평가다.

김 부총리는 6일 삼성전자 평택공장에서 삼성을 잔뜩 추켜세웠다. 정부가 기업과 원만한 소통을 이어가며 대표주자인 삼성의 역할을 주문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김 부총리는 방명록에 ‘우리 경제의 초석 역할을 하여 더 큰 발전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있기 때문에 삼성이 대표주자의 역할을 확실하게 해 주는 한편,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총리는 “정부는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등 미래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해 정책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면서 “삼성이 동반성장의 모범을 만들고 확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방침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삼성이 국내 경제 맏형의 역할을 해달라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동반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는 메시지도 숨기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이병철 초대회장의 호암자전까지 인용하며 삼성의 적극적인 역할수행을 촉구했다.

김 부총리의 발언은 대규모 투자, 상생협력, 일자리 창출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모두 담고 있다. 정부가 지원을 아끼지 않을테니 삼성이 대표주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달라는 의도도 보인다. 김 부총리는 마지막으로 “투명한 지배구조와 불공정 관행을 개선하는데도 앞장서 달라”는 말로 삼성의 투명성 강화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