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의 통찰> 히라이 다카시 지음, 이선희 옮김, 다산 3.0 펴냄.

전자기기 제조사 ‘샤프’는 일본 가메야마 공장에서 만든 LCD TV에 ‘가메야마 모델’이란 브랜드를 달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가메야마 모델을 고품질 TV의 대명사로 띄우려는 브랜드 전략이었다. 론칭 초기, 가메야마 모델은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고객들이 LCD TV에서 원한 것은 제품의 브랜드가 아니었다. 해상도와 화면 크기였다. 그것이 LCD TV 사업의 ‘본질’이었다. 그럼에도 샤프의 경영진은 초기 성공이라는 ‘현상’에 현혹되어 ‘가메야마’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매달렸다. 그 결과 뒤늦게 나온 한국 제품에 시장을 내줘야 했고 2012년 이후 여러 차례 구제금융을 받는 신세가 됐다. 2016년 샤프는 대만기업 폭스콘에 팔려나갔다.

모든 경영상 문제의 해답은 본질에서 생각해야 나온다. 본질은 문제나 현상을 만드는 진짜 원인이다. 정보화의 홍수 속에서 갈수록 복잡다단해지는 현상의 외피를 걷어내고 숨어 있는 본질까지 꿰뚫어 보려면 통찰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통찰력이야말로 알파고조차 대체할 수 없는 가장 가치 있는 인간의 노동이라고 주장한다. 책에는 통찰력 강화법으로서 미국 MIT의 ‘시스템 다이내믹스(System Dynamics)’가 소개돼 있다.

시스템 다이내믹스論에 의하면, 현상 뒤에는 모델(Model)과 다이너미즘(Dynamism)이 숨어 있으며, 그것들을 파악하는 힘이 통찰력이다. ‘통찰력 사고’는 4단계를 거쳐 강화된다. 1단계는 생각을 눈에 보이게 그리는 과정이다. 여기에서 ‘모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는데, 모델이란 어떤 현상을 만드는 요소와 그 요소들 간의 관계를 간단한 개념도로 그린 것이다.

2단계는 과거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과정이다. 1단계에서 만든 모델을 시간축에 넣어 생각해보는 것, 즉 ‘다이너미즘’이다. 실적부진에 빠진 기업이 일률적으로 전 부문에서 30% 비용삭감하기로 결정할 경우 목표에 대한 이해가 쉽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명확해 조직 구성원 누구나 쉽게 움직일 수 있다. 여기에 실행력까지 더해지면 원하던 결과가 즉시 나온다. 하지만 시간 축을 대입하면 이 모델은 본질에서 벗어난 처방이다. ‘미래’ 시점에서는 기업 경쟁력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

흔히 중고차 판매의 증가는 신차 판매의 축소로 이어진다고 여긴다. 단기적으로는 자기잠식효과(Cannibalization Effect)가 나타난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축 안에서 수차례 모델을 회전시켜 관찰해보면, 특정 제조사 중고차에 만족한 사람은 그 업체의 신차를 구매할 잠재 고객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이너미즘을 생각할 때는 플로(Flow)인지 스톡(Stock)인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스타벅스는 새 점포를 출점할 때 점포 앞 통행량(플로)보다 사람들의 점포 앞 체류 시간(스톡)을 중시한다. 시내 번화가에서는 사람이 체류하기에 스톡이 될 수 있지만, 주택지와 지하철역을 잇는 큰 간선도로는 단순한 플로에 불과하다.

모델 안에 있는 ‘타임래그’도 살펴야 한다.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걸리는 시간지체 현상이다. 변비에 걸려 설사약을 먹었는데 바로 효과가 없다며 다시 설사약을 복용한다면, 이번에는 설사병에 걸릴 수 있다. 재정적자 해소를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것도 자식세대에 더 큰 빚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3단계는 모델을 바꿔 해결책을 찾는 과정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델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레버리지 포인트’다. 지렛대의 원리처럼,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줄리아니 뉴욕 시장이 흉악 범죄를 줄이기 위해 흉악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지하철 낙서나 소매치기 등 경범죄 처벌을 강화했다. 그 결과 흉악 범죄율이 크게 줄었다. 흉악 범죄의 전 단계에서 그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환경을 만들어 흉악 범죄율을 낮춘 것이다.

마지막 4단계는 현실에서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다. 모델과 다이너미즘, 좋은 해결책까지 찾아냈다 하더라도 현실에 통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현실에서 얻은 피드백으로 기존의 대책을 강화하거나 새로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