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유통업계는 ‘지구의 종말(아포칼립스)’이라는 말로 대변될 정도로 위기를 겪고 있다. 한때 미국인들의 주말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쇼핑몰은 방문객의 발길이 뜸해진 가운데 잇달아 문을 닫았고 2017년에만 무려 7000여개의 유통업체 점포가 폐점했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시어스홀딩스의 시어스 백화점과 K마트, JC페니 백화점, 메이시스 백화점 등도 잇달아 점포 폐쇄에 나섰다.

올해 들어서도 많은 유통업체들이 잔인한 운명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액서세리 업체 클레어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신발 브랜드 나인웨스트, 세계적 완구유통업체인 토이저러스가 줄줄이 파산신청을 한 것이다.

파산신청을 하고 점포 폐쇄계획을 밝힌 이들 업체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사업 부진의 이유는 온라인과의 경쟁, 특히 ‘아마존(Amazon.com)’과의 대결이다.

온라인 상점인 만큼 점포 임대료 등의 부담에서 벗어나 있고 24시간 주문을 받을 수 있으며, 오프라인 점포에 비해서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상품이 있어 고객들이 온라인 상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성장률이 최근 4년간 가장 높은 수준인 4%의 성장률을 기록하는 가운데 유통업계만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의아한데, ‘잘나가는’ 유통업체들은 따로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철이 지난 유명 브랜드의 의류, 가정용품, 폐업한 회사의 브랜드 제품들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할인업체인 로스(Ross)의 경우, 다른 의류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최근 들어 30개 매장을 개설했고 연내에 추가로 70개 매장을 더 개설할 예정이다.

현재 1500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로스는 전체 점포 숫자를 2500곳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다른 유통업체들이 아마존과의 경쟁을 위해서 온라인 사이트에 집중하고 마케팅하는 것에 비해, 로스는 아예 온라인 사이트가 없어서 소비자들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직접 매장을 방문해야 한다.

▲ ROSS

로스와 비슷하게 의류와 잡화, 가정용품 등을 할인 가격에 판매하는 TJ맥스 역시 TJ맥스(TJ Maxx), 마샬(Marshalls), 홈굿즈(Home Goods) 역시 올해 238개의 신규 점포를 개설하는 것이 목표다. 또한 의류 할인 유통업체인 벌링톤 스토어(Burlington Store) 역시 40개 점포를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메이시스나 토이저러스와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도 아마존에 밀려서 휘청이는 가운데 이들 할인매장들은 성장을 지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더 넓어진 빈부격차와 사라지는 중산층이 저렴한 제품을 판매하는 할인매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으로 분석한다.

의류업체들이 휘청이는 가운데 중저가 의류를 전문으로 하는 올드네이비와 같은 중저가 유통업체는 지난 5년간 매출이 37%가량 상승한 것도 이를 방증한다.

중산층의 몰락은 저가 제품을 판매하는 유통매장과 고가의 매장만이 살아남는 양극화도 보였다. 코치와 같은 프리미엄 제품 유통업체는 지난 5년간 81%나 판매가 증가했다.

로스의 경우 판매 물건의 평균 가격은 10달러에 불과하고 매장 물건의 98%가 30달러 이하의 저가제품이다.

할인매장 보고서에 따르면 로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평균 연봉은 6만3000달러인 반면 아마존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평균 연봉이 8만5000달러인 점도 할인매장의 인기를 설명한다.

로스가 판매하는 제품은 브랜드 제품이지만 여러 차례 할인을 거쳐서 최소 20%에서 최고 60%까지 대폭 인하된 가격에 판매된다.

로스나 TJ맥스는 매장에 가득한 과거 시즌의 제품들 가운데 보물을 찾아내는 ‘획득’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온라인 매장과의 차별화를 둔다.

온라인 쇼핑몰은 내가 원하는 상품을 정확히 알고 검색을 해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 눈으로 훑어보다가 지난해 사고 싶었지만 너무 비싸서 내려놓았던 제품이 60% 할인된 가격에 진열된 것을 보고 구입하는 ‘보물찾기’의 기쁨은 로스와 같은 오프라인 할인매장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