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

평균 30도 후반을 웃도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고, 일부 내륙지역은 40도를 넘나들면서 닭·오리 등 가축 폐사와 농작물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주말 태풍 ‘종다리’의 영향으로 동해안을 중심으로 비가 오고 일부 내륙지역에 소나기가 잠깐 내렸으나, 폭염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기상청이 8월 상순까지 이상고온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면서, 앞으로 가축폐사 급증 우려는 물론 일부 농작물 작황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이에 유통업계도 농산물 수급과 품질 관리에 대비하고 있다.

가금 최대 밀집사육 전남 등 전국 각지 가축폐사·농작물 피해 속출

이달 중순부터 폭염이 본격 이어지면서 가축 폐사와 농작물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특히 전라도와 충청도 , 경상도 등 가축 사육과 농작물 생산이 집중된 지역에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까지 신고접수된 전국 가축 폐사는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30일 오전 9시 현재 278만6129마리로 집계됐다.

닭·오리 등 가금류 최대 밀집지역 중 하나인 전라북도는 폭염에 따른 가축폐사 피해 규모가 78만 마리를 넘어섰다. 축종별로는 닭 70만1775마리, 오리 7만1380마리, 돼지 2298 마리 등이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충청남도는 닭 47만9714마리, 메추리 5000마리, 돼지 1595마리 등 총 48만6309마리로 집계됐다. 전라남도도 48만690마리로 집계됐으며, 닭 43만3815마리, 오리 4만5488마리, 돼지 1387마리 등이다. 

경상북도는 폭염특보가 내려진 11일부터 29일까지 상주·안동 등 농작물 주산지를 중심으로 11개 시·군에서 199헥타르(ha, 약 60만2000평) 규모의 농경지에서 고추와 포도, 자두 등 농작물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지난 26일 하루 만에 피해면적이 160헥타르(48만4000평)에 이르며, 과수의 햇볕 데임 현상 피해가 큰 것으로 조사됐다. 가축 폐사도 가금류와 양돈 등 35만마리(30일 오전 9시 기준)를 넘어섰다.

인삼 재배가 많은 충청북도에서는 27일 현재까지 햇볕 데임 현상과 말라죽은 농작물과 과수 면적이 9.5ha로 나타났는데, 인삼이 4.2ha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고, 이어 참깨 1.2ha, 옥수수 0.9ha 등의 피해가 집계됐다. 가축도 30일 오전 9시 기준 23만479마리가 폐사했다. 

이 외에 경기도는 28만3663마리(닭 27만2928마리·메추리 1만마리·돼지 735마리), 경상남도 9만3592마리(닭 7만8650마리·오리 1만4000마리 등), 강원도 5만9494마리(닭 5만9000마리 등)로 집계됐다. 제주도에서는 폭염으로 바닷물 수온이 28도 이상 올라 양식 중인 넙치 치어와 성어 14만5000여미가 폐사하며, 양식 어가들이 피해를 입었다. 가축도 닭 3000마리, 돼지 376마리 등 3376마리가 폐사처리 됐다.

▲ 7월 30일 오전 9시 현재 축종별, 지역별 가축폐사 현황. 출처=농림축산식품부

 

폭염으로 닭 폐사 늘고 포도수확 포기 농가 속출

전남 화순에서 산란계(알을 낳는 닭) 2만여 마리를 사육하는 농장 관계자는 “13대의 대형 선풍기와 환풍기를 24시간 내내 틀어놓고, 스프링클러로 양계장 밖에 수시로 물을 뿌리며 온도를 낮추려고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어제 일요일 하루만 150여 마리가 폐사됐다”고 전했다. 농장 관계자에 따르면 닭의 생활 적정온도는 평균 20~25℃다. 그러나 사육장 온도가 30도를 넘기면 산란 수가 줄고 32℃ 이상이면 닭의 호흡수와 체온이 급상승하며, 35도를 넘기면 더위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닭들은 영양결핍·탈수 등 질환이 발생해 폐사가 급격히 늘어난다. 29일 나주지역 평균 기온은 35도, 체감온도는 38.8도였다. 농장 관계자는 “이런 고온현상이 계속 이어지면 닭 폐사가 점점 늘어 달걀 전체 출하량이 줄고, 무게감소 등 달걀 상품가치도 떨어져 농장운영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경북 김천에서 샤인머스캣 청포도를 재배하는 여봉길씨는 “폭염이 보름 넘게 이어지다보니 포도 알이 쪼그라들고 잎이 말라죽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보통 포도는 기온이 33~34도 일때 당도가 최적화되는데, 김천 기온이 너무 높아 잎이 탄소동화작용을 제대로 못해 붉게 타버리고 있다”고 말했다. 여씨는 “나도 1만평 정도 포도를 재배하는데 절반 이상은 아예 수확할 수도 없을 정도다. 포도 수확을 포기하는 주변 농가들도 속출하고 있다. 다음 달 중순부터 수확을 개시해야 하는데, 그나마 남은 포도도 상품성이 많이 떨어져 큰 일”이라고 우려했다.
 

고랭지채소 작황 평년보다 약간 부진

강원도 해발 500~800m 25도 내외의 고지대에서 자라는 배추·무를 비롯한 고랭지 채소는 일부 보도처럼 작황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속단하기에는 이른 측면이 있다. 일부 지역에서 30도 안팎의 고온현상으로 결구율(배추가 단단한 정도)이 떨어져 상품성이 낮아졌거나 무름병이 발생한 것은 맞다,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은 정도의 차가 있지만 매년 그래왔고 예년과 비교해 현재 작황이나 수급이 크게 심각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강원도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강원도청 유통원예과 관계자는 “보통 고랭지채소 작황 수준을 100으로 볼 때, 평년 기준 20%는 생육부진이 늘 발생했다. 올해는 고온현상이 길어지면서 생육부진 비율이 30% 정도로 상승했으나 크게 우려할 상황까지는 아니다. 다만 폭염이 앞으로 7~10일 정도 지속될 때 생육부진 피해 범위가 확대될 수 있기 때문에, 도 차원에서 고랭지 농가를 대상으로 스프링클러 활용 관수작업 실시 등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 농협: 김병원 농협 회장(왼쪽에서 세번째)이 27일 강원도 평창을 찾아 고랭지배추 작황을 점검했다. 출처=농협중앙회

유통업계, 농산물 수급조절·품질관리에 적극 대비

앞으로 폭염과 고온현상이 지속되면 농산물 수급과 품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유통업계도 적극 대비하고 있다. 농협은 고랭지채소 등 당장 농작물 수급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만일에 대비해 정부·지자체 등과 연계한 수급대책을 마련 중에 있다.

농협경제지주 품목연합부의 김동균 무·배추 담당 팀장은 “고랭지채소 전체 물량의 90%는 주로 8월에 본격 출하하 만큼, 더는 생육피해가 늘지 않도록 해당 농가를 대상으로 속썩음병·무름병 약제 공급과 공동방제 등 생육관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지금과 같은 이상고온 현상이 지속될 때에는 배추 물량부족과 가격급등이 일어날 여지가 있기 때문에, 배추 출하조절시설(강원 대관령원예농협·경북 서안동농협)을 통해 비축한 2500t 규모의 배추 물량을 시장에 출하해 수급 안정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팀장은 " 또한 채소가격안정제(정부와 지자체, 농협, 농민이 함께 조성한 수급안정 사업비로 평년가격의 80% 수준으로 가격을 보전해주는 사업)를 적극 활용해 농가 피해를 사전에 방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대형할인점도 산지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공급량 확보와 품질관리에 매진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수박과 같은 일부 과일이 다음 달부터 물량이 부족할 것으로 보여 강원도 양구 등 고랭지지역을 중심으로 추가 산지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포도·복숭아를 비롯한 여름과일 품위가 지난해보다 상당히 떨어질 것을 감안해, 크기·색택·당도 등 최대한 높은 품위 위주로 선별하는 한편, 자체 콜드체인시스템(냉장유통체계)을 통해 신선도 관리에도 더욱 신경 쓰고 있다.

8월 배추·무 등 고랭지채소와 달걀 가격 상승 전망

 고랭지작물은 출하량 감소와 작황악화로 당분간 가격 강세를 보일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본부가 지난 27일 발표한 ‘고랭지 배추·무 동향 전망’을 통해 8월 중순까지 배추 출하량은 삼척·정선 등 주산지의 작황 악화로 평년보다 감소하며, 도매가격 역시 평년(10㎏ 기준 7720원)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8월 하순 이후 출하 대기면적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배추 농가들이 출하 전까지 철저한 작황관리와 함께 조기 출하를 통해 배추 수급을 조절해야 한다고 밝혔다.

무도 8월 중순까지의 출하량은 평년보다 감소하고, 이상고온 현상 때문에 8월 중·하순에 출하를 앞둔 무의 추가적인 작황 피해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가격 또한 평년(20㎏ 기준 1만2310원)보다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했다.

8월 계란 가격은 전체 산란용 닭 사육 마릿수(6개월 이상)가 일부 폐사 피해와 생산성 저하에도 불구하고, 산란에 가담하는 닭 사육의 증가로 지난해보다는 낮겠지만, 폭염과 진드기 피해로 산란율이 하락하면서 7월보다는 높은 970~1100원(특란 10개 기준)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