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정부와 삼성 사이에 훈풍이 감지되고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건 문재인 정부가 일각의 비판을 무릅쓰고 악화일로를 걷는 국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삼성에 러브콜을 보냈고, 삼성은 그룹 신뢰도 강화와 성장동력 확보는 물론 이재용 부회장 경영 복귀의 신호탄을 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 방문 계획을 거론하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만남을 시사했다. 두 사람은 내달 초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2라인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삼성전자가 가진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1위라는 상징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방문한 것도 김 부총리의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30일 산업부에 따르면 백 장관은  “세계 1위의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지켜낼 수 있도록 반도체 산업의 발전을 지원하겠다”면서 “기업을 위한 산업부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발판을 마련하는 한편 지원을 아끼지 않을테니, 기업도 국내 경제 활성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는 주문이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내달 만남을 설명하는 키워드도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9일 인도 노이다에서 열린 삼성전자 공장 준공식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임미 만난 상태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은 공장 준공식 현장에서 약 5분간 만남을 가졌으며 두 사람의 자리에는 조한기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과 홍현칠 삼성전자 서남아담당 부사장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인도의 고속 경제성장에 삼성이 기여해 고맙다"면서 "한국에도 많은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에게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요청한 만큼, 김 부총리는 이 부회장과 만나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계산서를 제시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에 이어 김 부총리까지 이 부회장을 만날 가능성이 높아지자 재계에서는 삼성의 '화답'에 집중하고 있다. 김 부총리가 지난해 12월 LG를 시작으로 현대차, SK, 신세계를 연이어 방문해 총수들을 만났고 총수들은 이에 화답하듯 다양한 투자계획과 일자리 창출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삼성도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만남을 계기로 비슷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대규모 투자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이 만날 것으로 보이는 평택 제2라인의 투자 규모는 수십조원 수준이며, 지난해 7월 가동한 1라인은 2021년까지 30조원 투자가 예고되어 있다.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김 부총리를 만난 후 총 100조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삼성과 기재부 모두 이와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으나, 삼성전자가 올해 40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반도체 투자계획을 세웠다가 최근 상향조정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삼성도 김 부총리와 이 부회장의 만남을 통해 삼성 3.0 시대의 전기를 마련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재판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으나, 고 염호석 씨 시신탈취 논란과 노조와해 의혹 등이 불거지며 몸을 잔뜩 낮추고 있다. 삼성을 향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시선도 싸늘한 가운데 이 부회장의 전격적인 경영복귀 타이밍을 엿보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가 경제성장을 위해 삼성의 손을 잡는 순간 이 부회장 운신의 폭은 자연히 넓어질 전망이다. 최근 삼성은 반도체 백혈병 분쟁과 관련해 시민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중재에 전격 합의하고 삼성생명의 4300억원 만기환급형 즉시연금 미지급금을 일괄 지급하는 방안을 26일 이사회에 상정하는 등 분쟁과 갈등을 적극적으로 털어내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매개로 삼성에 러브콜을 보내는 장면은 이 부회장의 경영복귀에 큰 힘이 될 전망이다.

정부가 최근 규제개혁을 외치는 장면도 긍정적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9일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 헬스케어혁신파크에서 열린 의료기기 규제혁신 발표회에 참석해 정부의 규제혁신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등 신사업 육성에 나서는 삼성전자에게 큰 힘이 되어줄 전망이다.

이 부회장은 최근까지 유럽과 북미, 일본, 중국 출장을 통해 인공지능 등 새로운 ICT 전략을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규정했다. 김 부총리와의 만남을 통해 대규모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후 적절한 경영복귀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성공시킨 후, 정부의 규제 완화 행보에 보폭을 맞추며 제대로 된 삼성 3.0 시대를 열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