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코노믹리뷰>가 가락시장, 홈플러스(동대문점), 망원시장에서 조사한 농산물 가격. 출처=이코노믹리뷰.

[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 김진후 기자, 박자연 기자] 물가가 뛰어도 너무 뛴다는 말이 많다. 특히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됨에 따라 과일을 비롯한 농작물 작황이 나빠지고 더위로 수확을 하지 못함에 따라 생기는 공급량 감소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오르고 있다는 지적이 줄을 잇고 있다.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배추·무 등은 이달 들어 가격이 눈에 띄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은 자기가 느끼는 '체감물가'가 크게 오르자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배추와 무는 이달 들어 평년보다 20~40% 가량 가격이 뛰었다. 지난달 말 포기당 1561원이었던 배추 가격은 이달 중순 2652원으로, 지난달 하순 포기당 1561원에서 이달 상순 1828원으로 올랐고, 이달 중순에는 2652원까지 치솟았다.
무 역시 지난달 말 기준 개당 1143원에서 이달 초 1128원으로 소폭 떨어지다가 이달 중순 들어서면서 평년보다 43.7%나 오른 1450원까지 상승했다. 무는 재배 면적이 평년보다 9.6% 줄어든 데다 폭염까지 덮쳐 출하량이 줄어 가격이 많이 올랐다. 

이에 따라 7월과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크게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난 3일 발표된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달에 비해 0.2% 하락하고 전년 동월에 비해 1.5% 오르는 데 그쳤다. 생활물가지수도 전월 대비 0.1% 내리고 전년 동월 대비 1.4% 상승했다. 이중 식품은 전달에 비해 0.7% 내리고 1년 전에 비해서는 1.3%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신선식품 지수 가운데서 신선채소는 전달에 비해 10% 하락하고 전년 동월에 비해 6.4% 상승했다.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작황부진과 수확량 감소로 채소류와 과일류 가격이 오르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는 물론, 7월 소비자물가는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 소비자물가등락률 추이. 출처=통계청

 

 소비자가 직접 체감하는 밥상물가

<이코노믹리뷰>는 소비자물가가 얼마나 뛰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27일 오후 재래시장과 대형마트, 도매시장을 각각 한 곳 직접 찾아갔다. 재래시장은 망원시장, 마트는 홈플러스 용두동점, 도매시장은 가락동 농산물시장이다. 가보니 일부 품목은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만큼 값이 많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농산물이다도 파는 장소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났다. 재래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는 4500원으로 가장 비쌌고, 대형마트는 4290원에 판매하고 있다. 도매시장은 1kg에 1700원에 팔리고 있었다.

무는 재래시장에서 1kg에 2000원, 대형마트는 1개에 3990원, 도매시장은 1개에 2500원에 판매되고 있다. 배추와 무의 소비자 가격은 농림축산부가 조사한 가격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물가가 비싸졌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장보기가 겁이 난다며 망설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 소비자가 27일 오후 대형마트 홈플러스 동대문점인 농산물 코너에서 장을 보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이날 대형마트에서 채소를 둘러보고 있던 김영숙(동대문구, 72)씨는 “물가가 너무 많이 올랐다고 느낀다”면서 “가격 때문에 장보면서 식재료를 자꾸 들었다 놓게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날이 너무 더워서, 농사가 잘 안되지 않았겠나”라면서 “뉴스를 보니 폭염에 배추가 화상까지 입었다더라. 미리부터 추석 제사상을 걱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소비자는 "밥상 물가가 부담스러워 더 저렴한 대체품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을 더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면서도 “가끔 매장에서 장을 볼 때면, 선뜻 구매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는 소비자도 물가가 올라 무더위에도 좀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는 재래시장을 찾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는 “많이 오른 물가 때문에 더 많이 발품을 팔기로 했다”면서 “집 코앞에 할인마트도 있지만, 가격이 저렴한 시장으로 더 자주 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판매자도 더위가 오른 물가에 울상

<이코노믹리뷰>가 국대표 도소매 종합시장인 가락시장을 방문했을 때 상인들은 한결같이 물가 상승의 원인이 날씨라고 입을 모았다. 

▲ 27일 오후 서울 가락시장 가락몰 채소 코너에서 상인들이 저녁 장사를 준비 중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채소류 도매상인 류인수(가명, 62세)씨는 “고추, 무, 배추의 가격이 많이 올랐다”면서 “경매시장은 날씨와 물량에 따라서 가격 폭등·폭락이 잦다”고 전했다. 해당 품목이 오른 것을 두고 류씨는 “지금 농산물 물가가 오른 것은 여러 요인이 있다”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날씨, 그 다음은 생산지의 보관량, 가락시장 안의 인건비 순”이라고 설명했다.

파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박막례(가명, 72)씨는 “마트나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 같은 사람은 가격이 많이 오르면 손해”라면서 “너무 더운 것도 있지만 비도 안 와서, 수확을 하는 노인들 작업량이 적어진 게 큰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비닐하우스도 뜨겁게 달궈져 수확을 못 하고 방치되다보니, 배추나 무가 뿌리부터 썩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날이 더워서 가격이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양배추, 무, 오이, 호박, 열무 같은 것은 집에서 해먹을 때 가격이 오른 걸 살로 느낀다”고 덧붙였다.

▲ 서울 가락시장 가락몰 청과 코너에서 27일 오후, 상인들이 저녁 장사를 준비 중이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반면 과일상을 운영하는 김호빈(가명, 41세)씨는 “과일은 요즘 들어 그렇게 특이하게 변하진 않았다”면서도 "물량이 가격 변동폭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몇 품목을 제외하고는 날씨가 오히려 호재”라면서 “적당히 더우면 당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별 품목 중 레몬에 대해선 그는 “미국과 칠레산이 시간차를 두고 번갈아 수입되기 때문에, 공백기에 가격이 오르내리는 건 어느 정도 예정된 것”이라면서 “사과, 배 등의 저장 식품은 안정된 가격이라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과일상인 정유진(가명, 46세)씨는 특이한 과일로 수박을 꼽았다. 정씨는 “올해 수박은 얼마 전 큰 비로 당도가 많이 떨어진 상태”라면서 “더위까지 덮쳐 내가 먹기에도 맛이 별로다”며  냉정히 평가했다. 그는 “맛이 덜한데도 지난해에 비해 7000원에서 1만원 가까이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 직원도 오른 물가에 눈이 커진다. <이코노믹리뷰>가 홈플러스 동대문점 직원에게 시금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시금치를 찾은 직원은 한 단에 약 5000원에 이르는 가격을 보고 놀라면서 더 저렴한 게 있는지 찾아봤지만 없었다. 이 직원은 “시금치 뿐 아니라 농산물 전체가 비싸졌다”고 말했다.

▲ 망원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농산물. 27일 현재 가격은 오이 670원, 애호박 1500원, 양파 3000원/1.5kg였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무더운 여름, 야외에서 장사하는 망원시장 상인들도 울상이긴 마찬가지였다. 한 채소가게 주인은 “폭염이라 채소들을 들여와도 싱싱하지 않다는 평이 많다”며 착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그는 “그래도 (망원시장은)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주는 곳이라 그날 팔아야 할 채소들은 거의 다 팔고 있다”면서 “안정된 판매율 덕분에 일반 마트보다 좀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엔 원유 가격까지 인상을 앞두고 있어 우유를 사용하는 각종 가공식품 값도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제품을 이용한 제빵사들의 근심도 더해졌다. 망원동 일대에서 유명한 도넛 가게의 사장은 "원래는 우리집이 가격 대비 맛이 좋아서 줄서서 먹을 정도로 유명하다"면서 "보다시피 요즘 너무 더워서 예전만큼 많이들 찾지는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폭염과 물가상승이 소비자들의 소비를 위축시킨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 실장은 <이코노믹리뷰>에  “농산물 물가 폭등 원인은 폭염 등 기후요인이 크다”면서 “앞으로 농산물 물가가 추석까지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주원 실장은 “정부 등 당국자가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다”면서 “원인이 공급 부족에 있는 만큼 비축량을 풀거나 수입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