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성은 기자]

▲ 일반 농업 현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곤포 사일리지. 출처=블로그(별난세상 별별이야기)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하 농기평)이 최근 국내 농업환경에 적합한 ‘옥수수 사일리지(Silage) 조재기’를 개발했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농가가 아닌 일반 독자들은 사일리지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사일리지는 무엇이며, 우리 농업 현장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일까?

사일리지는 소에게 먹일 식물사료 공급 위한 저장기술

농사정보포털 ‘농사로’에 따르면 사일리지는 식물 생산이 어려운 한겨울과 같은 시기에 소 등 반추동물에게 신선한 식물사료(조사료)를 공급하기 위한 저장기술을 의미한다. 바싹 마른 건초와 달리, 가축이 먹기 좋게 적당한 수분이 있는 상태로 작물을 저장하는 것이 바로 사일리지다. 사일리지는 또 다른 이름으로 엔실리지(ensilage)나, 매초(埋草), 담근 먹이라고도 부른다.

아마 지방으로 내려가는 기차나 버스 밖 풍경에서 허허벌판인 논에 비닐로 포장된 커다랗게 생긴 둥근 원통을 보고, 저게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거린 기억이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곤포 사일리지’다. 곤포 사일리지는 수분 함량이 많은 목초류를 사일로(Silo, 곡물이나 조사료 저장 목적의 원형 단면을 가진 높이가 높은 시설) 용기에 진공저장 및 유산균 발효시킨 사료를 원형의 흰색 비닐(곤포)로 감아놓은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곤포 사일리지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이 외에도 사일리지를 수직으로 쌓는 ‘탑형’과 땅에 구덩이를 파고 사일리지를 발효시키는 ‘트렌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일리지를 저장하고 있다.
 

▲ 곤포 사일리지는 농촌을 친근하게 홍보하는 역할도 한다. 출처=국립축산과학원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 농업 현장에도 등장

최초의 사일리지는 기원전(B.C) 2000년경으로 추정하지만, 공식으로는 1877년 프랑스 농부인 고파르(A.Goffart)가 자신이 재배한 옥수수를 저장하면서 처음 사용했다. 일반적인 곤포 사일리지는 1970년대 유럽에서 시작됐으며, 사일로가 없는 농가에서 사료 저장방법으로 이용됐다. 우리는 2000년대 초반 등장한 작물 포장법으로, 주로 봄철에 조사료를 수확해 제조하고 있다.

곤포 사일리지에 자주 쓰이는 조사료로 보리와 목초, 생볏짚, 옥수수 등이 있다. 조사료 수확을 마치면 영양소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24시간 이내 수분 함량을 60~70% 수준으로 낮추는 게 중요하다. 다음에 이를 원형의 곤포로 여러 겹 감아 단단히 포장하는데, 이 때 발효를 위해 첨가제를 사용한다.

곤포 사일리지는 보통 0.04ha(약 120평)당 하나의 롤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소 30마리가 하루 먹을 양이라고 한다. 가격은 평균 1롤당 5만~6만원대다.  

▲ 곤포 사일리지 베일러 작업. 출처=블로그(꽃피는 바위)

왜 농업현장에서 사일리지를 쓰는 걸까?

사일리지는 발효시킨 조사료를 쓰기 때문에 단백질·비타민·카로틴 등의 함량이 높아, 가축 먹이로 알맞다. 또한 저장기간 동안 영양소 손실이 적고, 저장하는데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저장 공간 규모 면에서도 ㎡당 건초는 평균 70㎏ 정도 쌓을 수 있지만, 사일리지는 이보다 두 배 가까운 120㎏을 저장할 수 있다. 또한 옥수수, 볏짚, 보리 등 다양한 재료로 사일리지를 만드는데, 옥수수 사일리지는 일반 목초나 볏짚 사일리지보다 에너지(열량)가 많아 동물 성장에 더욱 유리하다.

다만 사일리지를 만드는데 특수한 기계나 시설이 필요하며, 일시에 만들기 때문에 노동력 투입이 건초보다 많은 편이다. 또한 사일리지를 제조할 때 많은 기술이 적용된다.

▲ 곤포 사일리지 상하차 운반작업. 출처=볏짚닷컴

사일리지 조재과정 복잡하고, 생산비용 커 농가부담 가중

농업현장에서 옥수수 사일리지는 크게 수확과 사일리지 이동, 베일 성형, 포장작업 등의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다. 조사료(옥수수 줄기와 잎)를 수확 후 1㎝ 내외로 짧게 절단하는 세절과정을 거쳐, 이를 운반할 수 있도록 베일러라는 압축기계로 조사료를 압축한다. 이를 베일이라고 하며, 베일이 결속장치에 의해 일정한 크기의 곤포로 둥그렇게 성형되는 과정을 베일 성형이라고 한다. 이를 비닐에 씌우는 랩핑(Wrapping)까지 마치면 사일리지가 최종 완성된다.

이처럼 사일리지를 조재할 때는 과정마다 수확 작업기·트랙터·베일 집게 등 여러 장비가 필요하고, 시간과 노동력 투입비용도 큰 편이다. 또한 이러한 장비들은 주로 미국·유럽 등 수입산 제품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수입산 장비들은 대농이 많은 미국·유럽의 농업환경에 맞춰 개발됐기 때문에 소농이 많은 국내 농업여건에 잘 맞지 않은 측면이 있고, 가격도 대당 2억~3억 원대로 무척 비싸다.
 

▲ 국산 기술로 개발한 옥수수 사일리지 조재기. 출처=농기평

조재과정 한 번에 처리 가능한 국산 기술 옥수수 사일리지 조재기 개발

이처럼 복잡한 사일리지 조재과정을 단순화하면서 값비싼 수입산 기기를 대체해 축산농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차원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농기평은 2015년부터 2년간 국산 옥수수 사일리지 조재기 개발 기술에 R&D 지원을 했고, 최근 수입 대체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국내 맞춤형 옥수수 사일리지 조재기 개발’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연구를 주관한 ㈜명성 관계자는 “옥수수 사일리지 조재과정에 따르는 모든 작업을 한 대로 합해 농가의 생산비용과 노동력을 기존보다 최대 절반까지 줄이는 효과를 얻게 됐다”며 “대당 가격도 수입산 대비 30~50% 줄인 9500만원 수준으로, 옥수수 사료 생산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