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단골 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다 안주가 떨어졌습니다. 주머니는 얇고, 술만 마시기는 속이 아픕니다. 배시시 웃으며 말합니다. "이모님, 서비스 좀 주세요"

 

우리는 흔히 고객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소비할 때, 무료로 무언가를 요구할때면 '서비스 주세요'라는 말을 합니다. '서비스(services)=무료'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사실일까요? 서비스는 냉정하게 말해 무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연히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는 것을 상품으로 하여 판매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백과사전을 살펴보니 연관어로 '용역'이 있더군요. 용역은 '물질적 재화의 생산 이외의 생산이나 소비에 필요한 노무'로 정의됩니다.

맞습니다. 서비스는 무료로 재화를 얻는 것이 아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생산자의 노동력을 사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받아야 할 서비스를 단순한 무료로 인식하는 장면은, 국내 콘텐츠 산업의 치명적인 약점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받아야 할 콘텐츠 서비스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료로 소비해야 한다고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웹툰입니다. 최근 운영자가 검거된 불법 웹툰 플랫폼 밤토끼는 한 때 국내 웹툰 산업계를 파탄에 빠트릴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습니다. 1차 책임은 밤토끼에 있지만, 대가를 치르고 즐겨야 할 웹툰 서비스를 무료로 보려한 이용자들도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지금 네이버웹툰으로 가 유료로 전환된 웹툰을 보세요. 상황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네이버가 돈독이 올랐네'나 '작가가 미쳤네'라는 댓글이 심심치않게 올라옵니다.

뉴스 콘텐츠, 전문지식 콘텐츠 등 그 외 다양한 콘텐츠 서비스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우리는 너무 당연히 무료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 단추를 잘못 맞췄기 때문이에요. 포털 사업자들이 시장 초반 콘텐츠의 가치를 지나치게 낮게 책정해 플랫폼 스펙트럼 강화에만 집중했고, 그 결과 콘텐츠 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도 없이 모든 콘텐츠는 '무료'라는 패러다임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음원 콘텐츠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창작자의 권리를 대폭 강화한 방안을 발표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는 평가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당연한 말이지만 콘텐츠 산업은 붕괴됩니다. 콘텐츠가 무료로 소비되는데 누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개척하겠습니까. 비단 콘텐츠만의 문제도 아닌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커머스의 발전과 함께 익숙해진 무료 배송입니다. 우리는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받아야 할 서비스를 무료의 권리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배달비 논쟁의 결도 이와 동일합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사정은 다르다고 합니다. 지난 4월 카카오재팬의 김재용 대표는 픽코마의 성공신화를 설명하며 일본 콘텐츠 시장의 저력을 언급했습니다.

'기다리면 무료'라는 픽코마의 이색적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현재 일본에서 승승장구하는 중입니다. ‘출판왕국’ 일본에는 쟁쟁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포진해 있으며, 신생 서비스 픽코마의 미래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우려가 나왔으나 보란 듯이 반전에 성공했습니다. 기다리면 무료라는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한 것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다리면 무료는 만화책 한 권을 여러 편으로 나눈 뒤 한 편을 보고 특정 시간을 기다리면 다음 편을 무료로 볼 수 있고, 기다리지 않고 바로 다음 편을 보려면 요금을 지불하도록 설계한 모델입니다.

▲ 픽코마의 성공사례가 발표되고 있다. 출처=카카오

기다리면 무료는 만화책 매니아가 아닌 소위 라이트 유저를 위한 시스템입니다. 습관적으로 픽코마에 들어와 기다림과 콘텐츠 결제의 갈림길에서 선택을 유도하는 방식인데, 여기에는 명확한 전제가 필요합니다. 바로 콘텐츠 결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입니다. 김 대표는 "일본은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라면 당연히 결제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면서 "일본의 콘텐츠 산업이 성공할 수 있는 큰 동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서비스를 무료로 알고있는 우리와 비교하면 참 부럽습니다. 카카오재팬이 야심차게 준비한 픽코마TV가 일본에서 26일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이러한 다양한 시도가 벌어질 수 있는 동력도 결국에는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구조가 영향을 미쳤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콘텐츠에 합당한 대가를 책정하는 것. 사회 전반의 인식이 변해야 하는 큰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합니다. 최소한 단골 술집에서 "이모님, 서비스 주세요"가 아니라 "이모님, 무료 안주 있나요? 없으면 메뉴판 주세요"라고 말해보는건 어떨까요? 그래도 무료로 주신다면야, 받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