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10년 이상 계속된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이 임박했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가 내놓은 공개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 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도 이를 받아들이기로 해 반도체 백혈병과 관련한 문제가 11년 만에 해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삼성전자·반올림간 제2차 조정(중재) 재개를 위한 중재합의서 서명식’에서 양측은 조정위의 중재합의서에 서명할 것으로 보인다.

조정위는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조정위가 지난 18일 제안한 중재방식으로 제2차 조정재개에 대해 모두 동의했다”면서 “이에 따라 삼성전자, 반올림, 조정위원회 3자간 ‘제2차 조정 재개를 위한 중재합의서 서명식이 24일 열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정위는 지난 18일 “2차 조정은 지금까지 해온 조정 방식이 아니라 중재방식인데 중재방식은 조정위가 양 당사자의 주장을 듣고 결론에 해당하는 중재결정을 내리면 양 당사자는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일종의 강제조정 방식”이라면서 “이번 제안이 조정위의 마지막 제안이고 중재방식의 수용 여부를 21일 자정까지 알려달라”고 삼성전자와 반올림에 요청했다.

김지형 조정위 위원장(전 대법관)은 “단순히 삼성전자와 반올림간의 사적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숙제”라면서 “지금은 문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인내심을 갖고 조용히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반올림 어떤 길 걸어왔나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는 지난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3월 삼성반도체 3라인 근무자 황유미씨가 백혈병으로 숨졌다.  그해 11월 삼성반도체 백혈병 대책위원회가 발족했고 이듬해인 2008년 2월 ‘반올림’이라는 시민단체가 발족되면서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본격 제기됐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는 역학조사와 실태조사가 진행됐다. 2008년에는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를 했고, 2009년에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의 백도명 교수팀이 삼성반도체 직업환경조사를 벌였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미국 인바이런사가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2012년 11월 삼성전자는 반올림에 대화를 제안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삼성전자와 반올림 사이에는 뚜렷한 대화나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4년 8월에는 반올림에 이은 가족대책위가 발족했다. 그해 10월 삼성전자-반올림-가족대책위의 3자는 ‘조정위원회’에 조정안을 위임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두 달 뒤인 12월에 조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정안을 만들기로 합의한 후 현재 조정위원회가 발족했다. 

이후 조정위는 2015년 7월에 조정권고안을 작성하고 발표했다. 그러나 7월에서 8월 이어진 조정과정에서 합의에 실패하고 삼성전자는 그해 9월 자체 보상안을 발표하고 보상했다. 10월에는 반올림과 일부 피해자가 삼성전자의 자체보상에 반발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농성은 2일로 1000회를 맞이했다.

조정위원회 올해 1월부터 내부검토를 통해 1차 조정안에 대한 쟁점과 양측의 요구사항, 전문가 자문 등을 했다.  이후 올해 6월 조정위는 조정방식으로는 합의를 이끌어 내기 불가하다고 판단해 2차 조정은 양자가 조정위에서 제시하는 중재안을 받아들이는 ‘중재방식’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중재안에는 어떤 내용이?

중재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재계는 질병 보상 방안, 피해자 보상안, 삼성전자의 사과, 재발방지 대책 등이 담겨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삼성전자가 중재안을 수용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으로는 이재용 부회장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된 후 반도체 백혈병 문제 해결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는 점이 거론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반올림과 삼성전자 양측 모두 다 10년 이상 대화를 지속하고 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온 만큼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면서 “이 부회장의 의중에 더해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통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있어 이번 합의가 이뤄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