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SK텔레콤이 18일 대대적인 요금제 개편안을 발표했다. 기존 세분화된 요금제를 T플랜 5개 요금제로 단순화해 사실상 보편 요금제와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로 스펙트럼을 넓혔다. KT의 데이터ON 요금제와 비슷한 행보로 평가된다. 상위 요금제에서는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하며 경쟁을 촉발시켰으나 보편 요금제에 준하는 하위 요금제는 없는 LG유플러스의 행보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SK텔레콤은 T플랜을 발표하며 보편요금제를 의식한 행보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의 과도한 규제에 불편한 심기도 감추지 않았다.

▲ SKT 서상원 사장이 T플랜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T플랜은 무엇?

SK텔레콤이 공개한 T플랜은 스몰, 미디엄, 라지, 패밀리, 데이터 인피니티 요금제로 구성됐다. 기존 밴드 데이터와 비교하면 이름도 쉬워졌고 구간도 간단해졌으며 무엇보다 기본 데이터 제공량이 늘었다.

스몰 요금제는 월 3만3000원에 1.2GB의 데이터를 제공한다. 월 2만원에 1GB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보편요금제와 유사하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보편요금제가 국회에 계류된 상태에서 통신사가 선제적으로 대응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미디엄 요금제는 월 5만원에 데이터는 4GB다. 라지 요금제는 월 6만9000원에 100GB 데이터를 제공한다. 미디엄 요금제 이하 요금제에 최대 400kbps 속도제어가 걸렸고 월 1만9000원을 더 내면 100GB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라지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데이터 활용이 많은 층을 라지 요금제로 묶으려는 전략을 구사한 뉘앙스다. 패밀리 요금제는 월 7만9000원에 150GB 데이터를 제공한다. 인피티니 요금제는 월 10만원에 데이터 완전 무제한이다.

스몰과 미디엄 요금제는 특정 직업군을 겨냥하기도 했다. 자정부터 오전 7시까지 데이터 사용 시 사용량의 25%만 차감하고 영상과 부가통화 기능도 제공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은 가족이 모두 T플랜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데이터 사용량과 패턴을 면밀히 분석해 컨설팅하는 전략도 구사할 예정이다.

T플랜의 가족결합 혜택이 눈길을 끈다. 가족 중에 한 명만 패밀리, 인피니티를 이용하면 각각 20GB와 40GB의 데이터를 나눠 사용할 수 있다. 이동전화·집전화 음성과 문자는 모두 기본 제공이다.

▲ T플랜 요금제. 출처=SKT

통신사 요금전쟁 막 올랐다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시장 1위 사업자기 때문에 요금 인가제의 적용을 받는다. 요금안을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면 정식 출시까지 최소 3주 이상이 걸린다. KT와 LG유플러스가 속속 파격적인 요금정책을 발표했음에도 SK텔레콤이 뒤늦게 요금전쟁에 뛰어든 이유다.

요금전쟁의 시작은 LG유플러스다. LG유플러스는 지난 2월 데이터 제공량과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 ‘속도, 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를 출시했다. LG유플러스 PS부문장 황현식 부사장은 “지난해 말 데이터 스페셜 요금제 가입자 비율이 국내 통신 시장 전체의 30%를 넘어설 정도로 고객의 데이터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선보인 ‘속도, 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는 업계의 실질적인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 출시를 이끄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요금제 가격은 8만8000원이다. 별도의 기본 데이터 제공량 없이 무제한으로 LTE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며 통신사들이 기본 제공량 소진 후 적용하는 3Mbps 속도 제한도 없다. 순수한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 출시로 볼 수 있다.

나눠쓰기 데이터 혜택도 있다. 데이터 주고받기와 쉐어링, 테더링을 모두 포함한 ‘나눠쓰기 데이터’ 한도를 업계 최대 월 40GB까지 제공한다. 이용자 본인의 데이터 사용량과 별개로 제공되기 때문에 ‘데이터 주기’만 40GB가 가능해진 셈이다. 기존 데이터 주고받기의 조건이었던 ‘본인 잔여량 500MB 이상일 때’, ‘기본 제공량의 50%까지만’ 등의 제한도 없어진다. 4인 가족 중 1명만 요금제를 가입하더라도 나머지 3명에게 각각 월 13GB, 연간 156GB를 주는 게 가능해졌다. LG유플러스는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를 출시하며 U+야구, 골프 등 모바일 동영상 콘텐츠도 강화하며 상위 요금제 활용을 독려하고 있다.

약점도 있다. 가계통신비 부담의 주범으로 통신사가 과도한 상위 요금제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한다는 비판이 나오기 때문이다. LG유플러스는 하위 요금제 출시에 나서지 않고 있다.

KT는 상위 요금제에 집중한 LG유플러스와 달리 상하위 요금제 스펙트럼을 넓혔다. KT는 5월30일 음성과 문자 무제한을 기본으로 두고 데이터만 고를 수 있는 선택 요금제를 출시하고, 새로운 로밍 요금제와 저가 요금제를 전격 공개했다.

데이터ON 3종 요금제가 핵심이다. 기존 데이터 선택 요금제와 똑같이 유무선 음성통화와 문자는 기본 제공하며 데이터 무제한도 지원하지만, 일부 요금제는 속도 제한을 걸었다. 데이터ON 톡은 월정액 4만9000원에 매월 기본 데이터를 3GB 제공한다. 데이터ON 비디오는 월정액 6만9000원에 기존 요금제에 비해 제공 데이터를 대폭 늘려 매월 100GB를 제공한다. 데이터ON 프리미엄은 고가 요금제다. 월 8만9000원에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제공하고 속도제한도 없다.

데이터 요금제만 보면, LG유플러스의 속도, 용량 걱정 없는 데이터 요금제는 KT의 데이터ON 요금제 중 가장 높은 요금제인 데이터ON 프리미엄과 비교될 수 있다. 요금은 LG유플러스가 8만8000원, KT는 8만9000원이다. 두 요금제 모두 속도 제한이 걸려 있지 않아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로 볼 수 있다. 두 요금제를 중심으로 각 통신사 헤비유저(트래픽을 많이 사용하는 가입자)들이 규합될 가능성이 높다.

KT는 데이터ON의 이름으로 데이터ON 톡, 데이터ON 비디오라는 세부 요금제를 출시하며 스펙트럼도 넓히고 타깃층도 명확하게 했다. 반응은 좋다. 한 달만에 50만명의 가입자를 유치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신규 가입자 중 데이터ON 비디오 가입자의 비중은 50%가 넘으며, 데이터 사용량은 기존 데이터 선택 요금제 65.8 대비 81%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K텔레콤의 T플랜은 상위 요금제에만 집중한 LG유플러스, 스펙트럼을 넓히고 타깃층도 명확하게 잡은 KT의 진화형이다. 5개의 요금제를 중심으로 데이터 제공을 확 늘렸기 때문이다. 일부 요금제는 KT와 비교해 기본요금이 다소 높다는 지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출혈경쟁으로 봐도 무방하다. 인피티니 요금제는 신형 스마트폰을 6개월 주기로 교체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서성원 SK텔레콤 MNO사업부장 사장은 "당분간 매출 타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 KT가 데이터ON 요금제를 설명하고 있다. 출처=KT

보편요금제 운명은?

SK텔레콤은 요금 인가제의 덫에 걸리고, 이동통신 시장 1위 사업자라는 상징성에 발목이 잡혀 요금경쟁에 늦게 참전했다. 물론 '액션'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KT와 LG유플러스처럼 로밍 요금제 개편에도 나섰고 위약제도 손 봤다. 약정기간의 절반을 넘긴 후에는 할인반환금이 줄어들며 약정 만료 시점에서는 0원이 되도록 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골자다.

타사와 비교해 요금전쟁 참전도 늦었고, 대응도 제한적이던 SK텔레콤이 하위 요금제에서는 보편 요금제, 상위 요금제에는 최근 트렌드인 진정한 무제한 요금제를 아우르는 큰 그림을 그린 이유에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 하위 요금제는 보편 요금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통신사들이 행동에 나서지 않아 보편요금제를 출시할 수 밖에 없다"던 정부의 발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서성원 SK텔레콤 MNO사업부장 사장은 보편 요금제와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스몰 요금제에 대해 "보편요금제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서는 T플랜 등장을 계기로 정부가 추진하는 보편요금제 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부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정부가 보편요금제 등의 카드를 던지며 민간시장에 과도한 개입에 나선다는 지적에 대해 서 사장은 "업체들끼리 치고 받고 싸워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정부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