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희준 기자]구리값이 심상찮다. 11일(현지시각) 선물시장인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구리 9월 인도분 가격이 3.4% 하락했다. 1파운드에 2.744달러를 기록했다. 팩트셋에 따르면, 이는 지난해 7월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구리값 하락을 두고 혹자는 미중 무역전쟁 탓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흔히 구리에는 '박사 금속'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경기 주기에 따라 소비량이 확연히 드러나 구리 소비량만 보면 경기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기에 붙인 별명이다. 이런 별명에 비춰보면 이번 구리값 하락은 경기가 안 좋다는 방증일 것이다. 구리뿐 아니라 금과 은, 백금과 팔라듐 등 다른 금속 가격도 내린 것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금융전문 매체 마켓워치는 구리값 하락을 미중간 무역전쟁 탓이라고 분석한다.  중국은 세계 구리소비량의 약 40%를 차지한다. 미국은 지난 10일  중국산 제품 2000억달러어치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케워치는 구리를 콕 집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미중간 무역전쟁 확산이 모든 금속상품 가격에 상당한 충격을 줬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일간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구리를 직접 지목했다. 즉 미국이 부과하는 관세의 표적이 되는 냉장고와 에어컨 등 소비재에 구리가 널리 쓰인다고 가격 하락 이유를 설명했다.  구리뿐 아니라 아연 값은 최대 6%, 스테인레스강과 전기차용 배터리용 금속인 니켈가격은 3% 내리는 등 기초금속 가격이 줄줄이 내린 것도 같은 맥락에서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중국은 구리를 비롯한 금속 최대 소비국이다.  미중 무역전쟁 확전은 중국의 구리 수요를 줄일 것으로 관측한 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서 구리값이 내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일본의 노무라증권은 글로벌 경기 둔화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인베스터스닷컴에 따르면, 노무라라증권은 이번주 보고서에서 "세계 성장 속도가 정점에 도달한 만큼 앞에는 감속단계(deceleration phase)가 자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성장률이 올해 4%에서 내년 3.7%로 둔화될 것으로 노무라는 예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5월30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보다 0.1%포인트 낮은 3.8%로 조정했다. 내년 성장률은 3.9%로 종전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물론 노무라증권도 미중간 무역전쟁도 가격 하락의 이유로 보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성장둔화, 유럽의 정치불확실성, 고유가 등 다른 요인들을 이유로 들었다.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올해 두 차례의 기준금리 인상이 뒤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귀금속 등 금속 상품에 기준금리 인상은 독약과 같다. 더욱이 기준금리 인상의 부산물인 달러 강세도 금속 가격 하락압력을 가한다. 최근 금을 비롯한 상품가격 하락의 상당부분은 달러 강세 탓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FT는 "인프라와 부동산과 같은  상품비중이 큰 내수분야가 약화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고 "분석가들은 중국 정부가 중국 경제에서 신용증가를 억제하려고 하기 때문에 구리소유가 둔화될 조짐을 보이는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