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언제나 나온 주장이지만 주주자본주의에 대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접근이 필요하고, 한국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재벌을 보는 시선도 양극단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에 속도 조절을 주문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 1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 생태계' 대담에서 (왼쪽부터)배상근 전경련 전무, 장하준 교수, 신장섭 교수가 토론을 하고 있다. 출처=전경련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기업과 혁신 생태계’ 특별대담에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교 교수와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현실과 혁신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했다.

장 교수는 ‘설비투자’ 중요성을 강조했고, 주주자본주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신 교수도 ‘혁신’을 강조하면서 경제민주화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정책과 산업정책 평가는 장 교수가 ‘보류’라고 말했고, 신 교수는 ‘기업정책은 F학점이고, 산업정책은 수강신청을 하지 않은 것 같다'고 평했다.

주주자본주의 폐해 경계 필요...경제민주화는 ‘허상’

한국경제의 문제점으로 장 교수는 주주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장 교수는 “현재 한국의 대기업들은 단기이익을 추구하는 주주들의 입김이 세졌고, 언제나 고배당,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는 주주들로 인해 기업 입장에서는 장기투자가 힘들어졌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주주들에게 돈을 많이 줘야 하는데 심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현금 자동인출기’ 수준이라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는 경제성장동력인 설비투자에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게 되고 이는 경제성장률을 낮추게 된다”면서 “현재 미국 기업들은 이윤의 90% 정도를 주주들에게 주는데, 이러다 보니 기업이 투자할 여력이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극복방안으로는 장기주주에게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장 교수는 “한 기업의 주식을 10년 이상 갖고 있으면 1주당 100표의 의결권을 주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면서 “민주적이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데 사실 민주주의와 기업 주주권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신장섭 교수는 혁신의 기본에 대해 ‘전략적 통제, 금융 투입, 조직 통합’의 3가지 조건이 필요한데 경제민주화는 이 조건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전략적 통제에서 민주적 결정은 자칫 포퓰리즘에 의한 잘못된 결정이 일어날 수 있고, 금융 투입에서도 적자를 보더라도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데 경제민주화로는 불가능할 수 있다”면서 “사장이 직원을 뽑는 기업은 절대로 민주적인 조직이 아니고 사장이 명령하는 조직이기에 조직적 통합 측면에서도 경제민주화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

▲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김동규 기자

 

한국, 왜 모든 정부마다 혁신만 외치다 끝나나

정부마다 강조했던 ‘기업 혁신 생태계 조성’에 대해서도 두 교수는 비판했다. 장 교수는 “생태계 조성을 해도 음식이 공급돼야 생물들이 진화도 하는데 자원 자체가 작게 투입됐다”면서 “언제나 재벌과 벤처를 나눠서 혁신을 강조했는데 사실 혁신을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데 지속적인 투자보다는 생계형 벤처만 난립하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지난 20년간 기업혁신관련 정책을 보면 벤처육성·창업열풍만으로만 생각을 했다”면서 “극단적인 비유지만 애들을 많이 낳아도 제대로 크는 자식이 없으면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文정부, 혁신성장 가능할까

혁신성장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국의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스웨덴과 핀란드의 예를 들면서 혁신성장 가능한 토양이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직장을 잃어도 월급의 65~70%를 받으면서 재교육을 받아 새기술로 노동시장에 다시 들어와서 더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이런 환경이 혁신이 잘 되는 이유”라면서 “노조 조직률이 80%가 넘는 나라에서 산업현장에 로봇이 많은데도 노동자들이 저항을 안하는데 이건 스웨덴이 복지국가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사실 한국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어떻게 기업을 규제하느냐만 이야기하니깐 조금 어려움이 있다”면서 “스웨덴 발렌베리는 스웨덴에서 경제력 집중으로만 따지면 한국의 삼성보다 더 큰 재벌인데도 노조 조직률이 높고, 복지로 발전을 해 왔다”고 설명했다.

▲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김동규 기자

 

억지로 재벌개혁은 금물

재벌개혁에 대해서도 두 교수는 인위적인 방법이 동원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재벌의 가족경영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인데도 억지로 없애기 위해 인위적인 것을 할 필요는 없다”면서 “오히려 국민들이 물건을 사 대기업이 된 삼성이나 현대와 같은 국민기업을 가족경영을 없애고 싶어서 지배구조를 와해시켜 외국 단기주주들에게 넘겨주려고 하는 것은 큰일날 일”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가족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를 비교했을 때 오히려 가족경영이 전문경영인의 경영보다 매출액과 이익증가율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연구 사례”라면서 “각각의 장단점이 있는 만큼 이분법으로 나누지 말고 한국경제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지주회사도 예전에는 불법이어서 재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순환출자라는 방법을 고안해 기업을 지배해 왔는데 이제는 또 지주회사로 바꾸라고 한다”면서 “이는 재벌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을 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 역할도 재조정해야

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의가 오갔다. 신 교수는 “한국은 주식시장의 7%를 국민연금이 갖고 있고, 대기업 지분의 10%정도도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 비중이 전체의 5% 정도인데 이마저도 민간에 위탁운용하고 있어 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현재 한국은 자본시장법상 의결권 위탁을 못하게 돼있고 국민연금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하는데 이는 전 세계서 유례가 없다”면서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을 개선해 국민연금의 주식 보유율을 5% 아래로 낮추고 연금이 국민의 노후 자산인만큼 중장기적으로 투자수익을 올려 노후에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을 가장 큰 의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틀만 잘 짜 놓으면 정부가 국민연금에 개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