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기내식 공급 문제로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운항이 지연되는 사태가 이어졌다.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기내식을 싣지 못하고 출발하는 ‘노 밀(No Meal)’ 항공편이 속출했다. 기내식 납품이 지연되면서 납품 압박을 받은 협력업체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벌어졌다.

사실 이번 사태는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다. 연간 1300억원에 달하는 아시아나 기내식 사업을 둘러싼 이권 다툼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샤프도앤코가 납품을 지연한 것이 ‘기내식 대란’이 아닌, 15년간 기내식을 공급해왔던 LSG에서 게이트고메코리아(GGK)로 공급처를 바꾼 것이 대란의 시작이다.

여기에 지난 3월 발생한 기내식 공장 건설현장 화재가 이번 사태에 불을 지폈다. 예상치 못한 화재로 기내식 공급자 교체에 차질이 생겼고, 능력이 부족한 업체에 일을 맡기면서 사달이 났다. 

시작부터 잘못된 선택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말까지 ‘LSG스카이셰프’라는 업체를 통해 기내식을 공급해왔다. 이 기내식 업체는 2003년 독일 루프르한자 그룹이 80%를 투자하고 나머지 20%를 아시아나 항공이 투자한 합자회사다. 아시아나는 이 회사를 설립하기 이전 기내식 사업부를 자체 운영해왔다가 이를 LSG에 양도하고 5년 단위로 공급계약을 연장해왔다.

아시아나는 LSG와의 계약을 올해 6월을 마쳤다. 지난 1일 0시부터 기내식 공급업체를 LSG에서 ‘샤프도앤코’로 바꿨다. 샤프도앤코는 원래 아시아나항공이 주 공급 업체로 삼으려던 기내식 업체가 아니다. 이 회사는 하루 3000인분 정도 기내식을 공급하는 소규모 업체다. 아시아항공에 필요한 하루 기내식은 2만5000인~3만인분이다.

앞서 아시아나는 중국 하이난그룹 계열사인 유럽계 기내식 업체 ‘게이트 고메 스위스’와 6대 4의 지분 투자로 지난 2016년 ‘게이트 고메 코리아(GGK)’라는 법인을 설립했다. 아시아나는 GGK에 533억원을 투자해 40%의 지분을 취득했다. 이와 함께 30년 공급 계약을 맺었다. 기존 LSG에서 아시아나의 지분은 20%였다.

그러나 GGK가 인천 영종도에 건설하고 있는 기내식 공장 현장에서 지난 3월 화재가 발생하면서 일이 틀어졌다. 이로 인해 이사이나항공은 당장 기내식을 제때 공급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아시아나는 즉시 국내 기내식 공급 능력을 갖춘 대한항공, LSG, 샤프앤도앤코, CSP 등 네 곳과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시설부족으로 협조를 얻지 못했다. LSG와는 계약 조건이 맞지 않았다. 이에 임시방편으로 샤프도앤코와 CSP를 전면에 내세웠다. 샤프도앤코에서 일 생산 1만5000식을 채우고 CSP에서 나머지 부족분을 메꾼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 회사는 애초부터 공급능력이 부족한 곳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샤프도앤코가 아시아나와 3개월 임시 공급계약을 맺은 것은 지난달 15일이다. 샤프도앤코는 불과 보름 사이에 평소 생산량의 몇 배에 달하는 양을 준비해야 했다.

샤프도앤코가 기내식 공급을 시작한 지난 1일, 결국 기내식 공급 문제로 항공기가 잇따라 지연되거나 기내식을 싣지 못하고 출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 '기내식 대란'이 대중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내식을 공급한 첫날인 1일에는 전체 항공 80편 중 51편이 1시간 이상 지연 출발했다. 36편은 기내식 없이 공항을 떠났다. 2일에도 75편 중 18편이 1시간 이상 지연됐다. 16편은 기내식 없이 출발했다.

아시아나항공에 기내식을 제공하는 샤프도앤코 협력사 대표는 기내식을 제때 공급하지 못한 부담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해당 협력사는 조리된 음식을 식판에 담고 배열하는 업체다. 협력사 대표는 납품에 차질이 생겨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 아시아나는 이번 지연 사태가 포장과 배송에서 발생한 것으로 봤다. 그러나 포장할 물건(기내식)이 오지 않는 상황에서 포장을 완료할 수는 없다. 결국 전반적인 생산 차질이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에 대해 기내식 업체 관계자는 “포장처리는 모든 음식이 다 갖춰져야 밀봉 포장해 납품하는 구조다”라면서 “필요한 재료가 다 도착하지 않으면서 협력사는 납품이 어려워졌고, 납품하지 못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오른 협력사 대표가 부담을 떠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샤프도앤코 협력사는 애초 저가 항공사를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던 곳이다”라면서 “아시아나가 요구하는 수준의 기내식을 만들어낼 역량도 없었을뿐더러 물량 확보도 부족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나측은 이를 두고 “납품업체는 3만 식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꾸준히 주장했다.

문제의 발단, 알짜사업과 자금

기내식 사업은 항공업에서 수익률이 상당하다. 지난해 LSG의 매출은 1890억원이다. 영업이익은 344억원, 당기순이익은 27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18.2%에 이른다. 수치만 두고 보면 꾸준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사업이다. 기내식 업체가 항공업체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지난해 아시아나의 기내식 사업규모는 1280억원이다. 올 상반기까지 기내식 공급을 담당했던 LSG의 전체 매출의 67%나 차지한다.

업계에선 기내식 대란을 두고 근본 원인은 이 알짜사업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LSG가 공정거래위원회 등에 제기한 주장을 들어보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을 재건하려던 박삼구 회장의 강한 의지가 뒷배경에 자리 잡고 있다. LSG는 2016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계약 연장을 대가로 금호홀딩스에 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요구받았다. 그러나 LSG는 ‘배임’ 우려를 들어 이를 거부했고 결국 계약 연장은 무산됐다.

이후 금호홀딩스는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기내식 업체인 GGK에 합자 투자를 한 하이난항공그룹(HNA)에 접근한다. 하이난항공그룹은 지난해 3월 금호 측 요구에 응하면서 무려 1600억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무이자 조건으로 인수한다. 20년간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만기에는 주식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에 대해 박 회장은 "외환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LSG와 계약하다 보니 계약 조건이 아시아나에 불리한 것이 많아 더 유리한 조건으로 GGK와 계약을 한 것"이라며 "하이난그룹의 투자는 기내식 공급자 선정과 관계없이 신규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계약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박삼구 회장이 채권단 지배 아래 있는 금호타이어를 재인수하기 위해 금호홀딩스에 자금을 끌어모으던 때다. 그래서 아시아나 기내식 영업권을 주고 금호타이어 인수자금을 확보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측은 “금호타이어 인수와 별개로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사업적 제휴를 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후 금호아시아나의 금호타이어 재인수는 중국 타이어 업체 더블스타가 가로채면서 무산됐다.

박 회장의 ‘배임?’

박삼구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뿐만 아니라, 2015년 금호산업 인수 때부터 시중으로부터 자금력에 대한 의구심을 받아왔다. 박 회장은 2011년 그룹 워크아웃 당시 2011년 사재 3000억원을 출연하면서 전 재산을 다 내놨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런데도 2015년 사재 1500억원에 외부 투자자까지 끌어들이면서 7228억원의 자금으로 금호산업을 인수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선 박 회장의 자금 출처에 대한 의구심이 나돌았다. 금호홀딩스 이익을 위해 상장사들의 이익을 훼손했다면 배임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금호산업 인수 이후인 2016년부터 금호타이어는 경영실적이 급격히 악화한다. 특히 원가율이 급등하면서 납품 관련 이권을 넘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졌다.

그러나 아시아나의 형편은 만만치 않다. 올해 안에 닥칠 2조원 규모의 차입금 만기에 대비해 금호 아시아나 사옥을 팔고, CJ대한통운 주식을 헐값에 넘겼다. 미래 매출인 홍콩지역 수입금까지 담보로 잡고 유동성을 끌어모았다. 지금도 영구채 발행을 추진하고 있는 곳이 아시아나항공이다.

기내식 사태가 사흘째로 접어든 지난 3일, 법무법인 한누리는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한다”는 입장을 내놓는다. 소액주주를 모아 금호아시아나 경영진을 상대로 법정 다툼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한누리는 “하이난그룹으로 하여금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BW 1600억원 어치를 무이자로 인수토록 하기 위해 아시아나 항공의 기내식 사업권을 이용했다”면서 “이는 업무상 배임이자 전형적인 회사사업기회유용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한누리는 아시아나 경영진이 회사 이익이 아닌 제3자에 해당하는 금호홀딩스 이익을 위해 기내식 공급업체를 신설업체로 바꾼 것이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 있는 점, 적법한 이사회 결의조차 없이 기내식 사업권을 금호홀딩스의 자금조달을 위해 이용한 점 등을 소송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논란의 여파

현재 아시아나는 기내식 서비스 구성을 한시적으로 바꿨다. 메뉴를 줄이고 간편식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식이다. 기존과 같은 기내식을 공급하기에는 여력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다. 우선 중·단거리 노선의 이코노미클래스 기내식을 스낵박스와 간편식으로 교체했다. 비즈니스클래스는 메뉴를 줄였다. 퍼스트클래스는 특별식 서비스(궁중정찬)을 일시 중단했다. 이러한 기내식 서비스 변경은 9월까지 지속할 전망이다.

기내식 대란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다. 앞서 대한항공은 기내식 공급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으나 아시아나는 “현재 안정화를 거치고 있는 만큼 사양하겠다”면서 “향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에서 미리 티켓을 예약했던 승객들은 불만이 많다. 이를 일선에서 버텨내는 승무원들의 피로는 극에 달했다. 국내 대형항공사에 근무하는 A씨는 “논란은 잠잠해 졌지만 회사측의 꼼수대응으로 승객들의 불만을 그대로 전달받아야 하는 승무원들의 고충은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기내식 사태는 당장 계열사 주가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주가는 10일 현재 4100원 선으로 급락했다. 지난 5월 5330원까지 올랐다가 2개월 만에 23% 하락했다. 여름 성수기가 본격화 되는 상황에서 4년래 최저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금호산업도 지난 5월 1만5650원을 기록하며 연내 최고점을 찍었으나, 노밀 사태가 이어지면서 9510원까지 추락했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주가 동반 하락은 회사의 주식담보대출 차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호산업과 금호기업이 금융권으로 받은 주담대 담보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은 올해 1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 지분 33.47%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시가로 환산하면 약 2800억원이다. 이 지분은 우리은행과 중국건설은행, KB증권, 케이프투자증권, 유안타증권 등 금융권에 대출 담보로 제공돼 있다.

눈앞에 놓인 재무개선 작업도 난항이다. 회사는 올해 지분매각과 전환사채(CB)발행, 사옥 매각등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약 9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러나 이번 악재로 인해 주가가 휘청이고 유동성 위기를 맞이하면서 연내 만기가 도래하는 2조원의 차입금은 암초와 같은 존재가 됐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항공유가 급등과 지난해 2분기 장기 연휴에 다른 역기저 현상을 보이며 상반기 실적 부진이 전망된다"면서 "하반기 중국 노선 증편에 나서고 있는데 고수익 노선 정상화에 따른 이익 개선이 이번 사태를 종식시키고 회사 가치를 되찾는 길"이라고 진단했다.

한편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비리와 경영진 갑질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는 아시아나항공사 승무원 교육생들이 박 회장이 방문할 때 불렀다는 노래가 공개되며 여승무원 의전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아시아나항공사 측은 교육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행사라는 입장이지만 박 회장'기쁨조' 역할에 동원됐다는 관련 제보가 이어지면서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