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回, 66×90㎝, 2016. 대만 타이페이 국부기념관에서 2017년 전시 한, ‘한국대만서예교류전’출품작.

“태양은 어제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이 불은 그 불과 다를까? 우리는 구름에게, 그 덧없는 풍부함에 대해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할까? 뇌운(雷雲)은 그 눈물의 검은 부대들을 가지고 어디서 오는 것일까?”<질문의 책,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시집, 정현종 옮김, 문학동네 刊>

‘회(回)’자는 사물이 회전하는 모양을 본뜬, 단순한 조형이다. ‘천진(天眞)’은 현존 상형문자인 중국 나시족의 동파(東巴)문자로 쓴 작품이다. 하늘과 말(馬)의 결합인데 아마도 그들은 하늘 아래 말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천진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김 작가는 북송시대 소동파(蘇東坡)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시는 공교함을 구하지 않고, 글씨는 기이함을 구하지 않으니 천진난만한 것이 나의 스승이다. 詩不求工, 字不求奇, 天眞爛漫是吾師.”

▲ 天眞, 70×175㎝, 2017. 전주 한국소리문화의전당에서 열린 2017년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본전시출품작.

◇자생적 한국추상화 갈증

청년시절 김정환 작가(KIM JEONG HWAN,キムジョンファン 作家,金政煥)는 서예활동을 하면서 꾸준하게 미술전시장을 찾았다. 그러면서 서예가에 그칠 것이 아니라 서예를 바탕에 둔 미술가의 꿈을 품는다. 회화작품이지만 그 가운데 서예적인 요소를 볼 수 있는 작품들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당시 서예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라고 하듯 그가 놓지 않았던 지향은 ‘자생적인 한국적추상화’였다. 그러한 내면의 갈망이 커지던 때, 2007년 서예개인전을 준비하던 중 우연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새벽녘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지금 운전기사가 시속 100km를 넘나드는 곡예운전을 하고 있는데, 잘못하면 여기서 죽을 수도 있겠다. 죽기 전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묵음(默吟,Poetry with Silence), 45×38㎝ Chinese ink Silica Sand Korean Paper mounted on Canvas, 2018.

그 길로 홍대 앞 화방으로 가서 그림도구를 샀다. “먹과 종이, 검은색, 화선지에 드러난 문자와 획, 그리고 먹 선의 번짐 등 서예적인 문자언어를 회화화(繪畫化)하는 작업에 미친 듯이 몰입한 것이다.”

2008년 서예가 아닌 회화로 ‘존재의 성찰(백악미술관)’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그는 작업하기 전, 명가들의 서첩을 임서(臨書)하면서 손을 푼다. 다른 작가들이 드로잉을 통해 선 작업을 한다면 서예를 통해 하는 것이다.

“나의 시선은 항상 동양의 전통적인 고도의 추상예술인 서예를 어떻게 회화적인 언어로 바꾸어 오늘의 시대에 부합하는 작품으로 드러내는가에 있다.”

▲ 41×32㎝

◇번지며 드러나는 존재성

2016년부터 발표한 ‘묵음(默吟)’시리즈는 캔버스에 화선지를 세 겹 올린다. 먹을 갈아 한 달 이상 두고 그 먹이 상하여 퇴묵 상태로 된 것을 쓴다. 경계선을 그리고 다시 그 위에 검은 돌가루로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등 집적(集積)의 과정으로 완성된다.

흰색과 검은색을 통해 공간의 비움과 채움을 드러내는데 검은색은 흰색으로 인해 새롭게 의미를 갖게 된다. 숨을 쉴 수 있는 여백 흰색은, 공(空)과 무(無)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신의 존재성을 보이게 된다. “노자(老子)에 ‘검은 가운데 검은 것이 가장 묘함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玄而又玄 衆妙之門.’라는 말이 나온다. 

이 글을 보는 순간 단순한 검은색이 아닌 다른 세계의 크나큰 매력을 느꼈다. 작업하는 매 순간마다 동양의 검은색 그 현색(玄色)을 드러내고자 공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