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고율 관세부과로 포문을 연 미중 무역전쟁이 글로벌 경제 최대 변수로 부상한 가운데, 미국의 행보와 중국의 대응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도광양회를 버리고 대국굴기의 기치를 건 중국의 전격전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초강대국 미국의 건곤일척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 중국의 대국굴기가 거세다. 출처=CKGSB

미중 무역전쟁의 뿌리에는 중국의 비상과 미국의 위기의식이 깔려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중국이 스마트제조 2025를 통해 ICT 영역까지 공격적으로 파고드는 가운데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패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전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중국의 비상, 대국굴기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에 미국이 관세전쟁까지 불사하며 견제하는 것일까? 다양한 증거가 제시되는 가운데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2018 러시아 월드컵 현장에서도 비슷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스포츠 행사는 기업은 물론 국가의 대형 마케팅 기회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의 간접 경제효과로 국내 100대 기업 브랜드 인지도는 1% 포인트 상승해 약 11조6000억 원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스포츠는 이제 경제와 마케팅의 영역이다.

지금은 러시아 월드컵 시즌이다. 한국 대표팀이 졸전을 거듭하다 강호 독일을 맞아 극적인 승리를 거두는 등 짜릿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그 이면에는 브랜드끼리 치열한 광고 마케팅 전쟁이 이뤄지고 있다.

흥미로운 대목은 중국의 존재감이다. 중국은 이번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했으나 월드컵 현장에는 유독 중국 기업과 관련된 광고판이 많이 등장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5년 "앞으로 30년 이내에 중국 축구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고 '명령'할 정도로 축구에 대한 중국인의 열망은 강력하며, 그 열망이 기업 광고판 설치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시장조사업체 제니스(Zenith)에 따르면,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총 광고비는 24억달러를 기록했다. 그런데 국가별 비율로 파고들면 놀라운 사실이 나타난다. 바로 24억달러 중 중국 기업의 광고비 비율이 약 35%(8억3500만달러)를 차지해 1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 광고비인 4억달러와 비교해 2배 이상이며 주최국인 러시아의 6400만 달러를 압도한다.

중국계 후원사가 단 하나였던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달리, 올해 러시아 월드컵은 19개 후원사 중 7개가 중국 기업이다. 이들은 중국 미디어와 관광업의 선두주자 완다그룹, 전자기업 하이신(Hisense), 스마트폰 업체 비보(Vivo), 유제품 생산업체인 멍니유(蒙牛), 중국 전기차 생산업체인 야디(Yadea), 가상현실 기업 즈뎬이징(指點藝境), 남성복 브랜드 디파이(帝牌) 등이다. 특히 완다그룹은 최상위 등급인 ‘FIFA 공식 파트너’에 포함되어 FIFA가 주관하는 모든 공식 이벤트에 마케팅 권한을 갖게 되었다.

▲ 중국의 브랜드 파워 추이. 출처=CKGSB

FIFA의 오랜 부정부패로 인해 서구권 기업이 마케팅을 꺼리는 틈을 타, 중국기업은 오히려 월드컵 후원을 통해 해외 진출의 포석을 마련하고자 영리하게 글로벌 입지를 다지고 있다. 중국에 소재한 글로벌 MBA 학교 장강경영대학원(Cheung Kong Graduate School of Business)의 영자 중국 비즈니스 매거진인 ‘CKGSB Knowledge’에 의하면, 중국 소비자는 자국 브랜드가 이제 외국산과 동등하거나 더 우수한 면이 있다고 여긴다. 중국 기업은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품질 개선 투자에 전력을 다했으며, 이 과정에 중국 정부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 기업과 정부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는 지난 2004년 갤럽 설문 조사와 2016년 맥킨지 발표 결과의 극명한 차이에서 살펴볼 수 있다. 2004년 당시 갤럽 설문 조사에서 중국 소비자의 40%가 ‘메이드 인 차이나’는 ‘열악하거나 평범한 수준’의 제품으로 평가했지만, 2016년 맥킨지 발표 결과에는 중국 응답자의 62%가 동일 가격과 품질의 외국산과 중국산 중에서 자국 제품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 중국의 행보는, 이제 대국굴기라는 표현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