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초연결 사물인터넷 플랫폼이 일종의 골격이라면, 인공지능은 모든 것을 연결한 수족을 능동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두뇌로 비유할 수 있다. 클라우드가 빅데이터를 확보해 분석하면 인공지능을 통해 초연결 단말기들이 유기적인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미래 모델이다.

인공지능은 최근 음성 인터페이스를 시작으로 서서히 비전 인터페이스까지 수렴하기 시작하며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각 기업의 인공지능 전략은 어떻게 분류할 수 있을까? 크게 홀로서기와 합종연횡의 개방형 생태계로 분류되며 운용방식과 로드맵에 따라 별도의 정의가 가능하다.

▲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이 빅스비와 가전의 만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음성 인터페이스에서 시작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은 음성 인터페이스의 발전과 함께 태동했다. 인공지능의 활용에 있어 언어, 즉 음성 인터페이스를 유력한 관문으로 해석해 인공지능 스피커를 출시했기 때문이다. 구글이 구글번역을 통해 머신러닝 기술을 도입, 정교한 번역 기술을 확보한 후 조금씩 음성 인터페이스로 진격해 구글홈까지 출시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텍스트 기반의 검색에서 음성 인터페이스로 향하는 장면이 최근의 인공지능 트렌드다.

구글은 구글 어시스턴트, 애플은 시리, 아마존은 알렉사, 마이크로소프트(MS)는 코타나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인공지능 비서 역할을 수행하며 오랫동안 생활밀착형 서비스로 거듭났으며 조금씩 텍스트 기반의 인터페이스에서 음성 인터페이스로 이동하며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열었다.

가장 선명한 대립구도는 구글과 아마존이다. 아마존은 MS와 연합해 알렉사와 코타나의 연동을 강화하고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부터 구매 엔드단으로 이어지는 솔루션을 개발했다. 구글은 아마존의 오프라인 진격에 우려를 보이고 있는 월마트 등 전통적인 유통 공룡과 손을 잡았다. 커넥트 프로젝트 등으로 아마존의 공급에 대응한 월마트 동맹은 구글의 구글 어시스턴트를 자기네 오프라인 매장에 비치하는 방식으로 아마존의 파상공세에 대비하고 있다.

▲ 구글도 디스플레이 스마트 스피커 경쟁에 나섰다. 출처=구글

‘AWS와 아마존 인공지능 VS 구글 클라우드와 구글 인공지능, 기존 오프라인 유통 거인’의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클라우드부터 빅데이터 수집, 인공지능에 이르는 기다란 전선이다. 최근 구글홈의 약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글로벌 인공지능 시장의 변화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바이두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인공지능 굴기도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데이터 확보와 클라우드, 인공지능으로 이어지는 경쟁은 모두 음성 패러다임을 중심에 두고 인공지능 스피커로 귀결된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스마트홈을 넘어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차 등의 영역으로 빠르게 번질 것으로 보인다. 스마트폰 이후의 플랫폼을 찾으려는 노력이 많아질수록 차세대 하드웨어 플랫폼 경쟁도 치열해질 것이다. 이는 반도체 슈퍼 사이클과 디스플레이 시장 활성화 등 전자업계의 나비효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음성과 인공지능, 하드웨어가 모두 플랫폼이 되어 이를 기점으로 다양한 사업 가능성을 엿볼 가능성이 높다.

▲ 갤럭시S9의 인공지능 전략이 눈길을 끈다. 출처=삼성전자

국내 제조업 양강의 인공지능 전략은?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인공지능 시장 규모는 지난해 6조4000억원에서 오는 2020년 11조1000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한국무역협회와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인공지능은 단순한 상담과 특정 서비스 사업에만 도입됐으나, 미국 인공지능은 화자를 식별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2.2년이 아니라 20년 뒤쳐진 수준으로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중국 인공지능 기술력에도 덜미를 잡힌지 오래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지난해 산ㆍ학ㆍ연 전문가 5287명을 설문해 국내 ICT 산업 기술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통신과 방송 분야에서는 다른 나라를 압도했으나 인공지능이 주축이 되는 ICT 기술력은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흐린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기준 중국은 미국과의 ICT 경쟁력 격차가 1.8년으로 좁혔졌으나, 한국은 1.9년을 기록했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3년간 약 18조원을 인공지능에 3년간 투자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며 중국 과학기술원에서 근무하는 인공지능 연구자만 1429명에 달한다.

국내 인공지능 인프라가 다소 약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각 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지능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는 가전 경쟁력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인공지능 전략을 수립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 구글 안드로이드에 종속됐던 과거를 떨치고 독자적인 인공지능 플랫폼 구축에 나섰다는 뜻이다. 비브랩스의 플랫폼을 중심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3번의 해외출장을 떠났다. 전장사업부터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사업 기회를 타진하는 가운데 핵심에는 인공지능 전략 구상이 있다는 평가다. 이 부회장이 유럽과 북미로 떠났던 3월28일(현지시간) 삼성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인 손영권 사장이 현지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 파리 삼성전자 연구개발 센터 설립을 약속한 것이 시작이다.

유럽 일정을 마치고 캐나다로 넘어가 삼성전자 몬트리올 AI랩도 방문했다. 삼성전자의 공식발표는 없지만 캐나다 토론토의 요리연구가 아키라 백의 인스타그램에 이 부회장의 사진이 올라오며 확인됐다. 현재 삼성전자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오슈아 벤지오 교수팀과 협업해 인공지능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 삼성전자 빅스비 플랫폼 강화 전략이 가동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5개 인공지능 거점도 구축됐다. 삼성전자는 세트부문 선행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 리서치(SR)가 지난해 11월 한국 AI 총괄센터를 신설하고 인공지능 연구 역량을 다져왔으며, 올해 1월에는 실리콘밸리에 AI 연구센터를 설립한 바 있다. 이어 한국 AI 총괄센터를 중심으로 미국에 이어 영국, 캐나다, 러시아에 글로벌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신설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삼성 리서치의 무게감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 리서치는 한국 AI 총괄센터, 실리콘밸리 AI 연구센터를 비롯해 영국과 캐나다, 러시아의 연구센터를 활용해 선행 인공지능 연구를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11월 DMC 연구소와 소프트웨어 센터를 통합해 만들어진 삼성 리서치는 세계 24개 연구거점과 2만명의 연구개발 인력을 끌어가는 삼성 인공지능 로드맵의 허브가 될 전망이다. 인공지능 경쟁력을 세계 거점으로 풀어가면서, 한국을 중심에 두고 판을 키우겠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선행 연구개발 인력을 2020년까지 1000명 이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AI 센터 개소식에서 김현석 대표는 환영사를 통해 “앞으로 한국 AI 총괄센터와 함께 선행연구에 집중해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삼성만이 가진 강점을 기반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 석학인 세바스찬 승 교수와 다니엘 리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소위 '승리 듀오'다. 이들은 모두 세계 인공지능 분야의 최고 권위자다. 두 교수는 1999년에 인간의 뇌 신경 작용에 영감을 얻어 인간의 지적 활동을 그대로 모방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공동 개발했고, 관련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가 혁신업무를 총괄하는 CIO(최고혁신책임자)에 데이비드 은 삼성넥스트 사장을 임명한 것도 눈길을 끈다. 삼성전자에서 CIO 직책이 생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공지능을 중심에 두고 가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투입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 자회사인 삼성벤처투자가 지난해 인공지능 음성인식 플랫폼 오디오버스트에 460만달러를 투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만 인수합병 후 그리스 음성기술업체 이노틱스, 국내 인공지능 챗봇 서비스를 구현하는 플런티를 연이어 인수하며 인공지능 기술력을 가다듬는 한편 카카오 I와의 연동에도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인공지능 전략은 단독 생태계로 풀이된다. 방대한 가전제품 경쟁력을 바탕으로 빅스비를 중심으로 하는 독자적인 인공지능 생태계를 짜겠다는 방침이다. 만약 타이젠이 제 역할을 해 줬다면 그 효과는 배가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삼성전자가 독자 인공지능 전략을 지향한다면 LG전자는 오픈형 생태계다. 구글과 아마존 등 다양한 기업들과 손을 잡았다. 최근 출시하는 모든 스마트폰에 구글 어시스턴트가 탑재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LG전자도 칼을 빼들었다. LG전자는 지난 5월 국내 인공지능 스타트업 아크릴에 10억원을 투자해 지분 10%를 취득했다고 밝혔다. 아크릴은 감성인식(Emotion Recognition) 분야에서 수준 높은 기술력을 갖추고 있는 인공지능 전문 스타트업이며 자체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 조나단(Jonathan)은 사용자의 질문에 지식에 기반한 단순 답변이 아닌 질문자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에 알맞은 답을 해준다는 설명이다.

LG전자 인공지능과 로봇의 시너지, 나아가 개방형 생태계 전략과 관련이 있다. 아크릴의 감성인식 기능을 LG전자가 키우고 있는 로봇 경쟁력과 연결하기 때문이다. 외부의 경쟁력을 빠르게 체화해 인공지능의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로봇의 하드웨어 로드맵으로 풀어나가는 전략이다. LG전자는 현재 인공지능, 로봇, 자율주행 등에서 독자 개발한 기술뿐 아니라 대학, 연구소, 스타트업 등 외부와의 협력을 통해 미래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LG전자는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력이 등장하고 있으나 시장을 석권한 플랫폼은 아직 없다"면서 "결국 초연결 시대의 가장 중요한 대목은 호환성이며, 이것이 LG전자 오픈 플랫폼 전략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테크 세미나에서 오랜시간을 할애해 오픈 플랫폼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인공지능 오픈 생태계는 사용자 경험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단독 생태계와 비교해 종속의 우려가 남는다. 'LG전자 만의 특별한 사용자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구글이나 애플 등이 특별한 사용자 경험을 통해 인공지능 시장을 장악하면 LG전자는 또 다시 종속성의 함정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구글 어시스턴트가 한국어보다 영어에 더 특화되어 있다는 점, 비전 인공지능과 음성 인공지능 기술이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LG전자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LG전자의 인공지능 파트너십 생태계는 무색무취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 LG전자는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아니다"면서 "자체적인 기술력 강화를 통해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계에서는 LG전자가 당장의 인공지능 전략은 개방형 생태계로 풀어내고, 주로 로봇산업에 집중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초 스마트홈과 연계된 로봇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후 올해 초 가전전시회 CES 2018을 통해서는 로봇포트폴리오를 총칭하는 브랜드 ‘클로이(CLOi)'를 시작으로 다양한 라인업을 공개하고 있다.

▲ SKT의 누구가 편의점에 활용된다. 출처=SKT

통신사는 '탈'통신, 포털은 '큐레이션'
통신3사는 탈 통신 전략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누구, KT는 기가지니, LG유플러스는 네이버와 협력한 가운데 인공지능 스피커 경쟁도 펼치고 있다.

SK텔레콤은 누구 스피커에 T맵을 연동하는 하며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T맵x누구가 주인공이다. 운전 중 화면 터치 없이 음성 명령만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거 변경할 수 있는 차세대 내비게이션 서비스다. 스마트폰 기반의 내비게이션이 인공지능과 연결돼 길 안내뿐만 아니라 음악 서비스를 비롯해 날씨, 일정 등을 말로 이용하는 일종의 카 라이프 서비스로 진화한 것이다.

T맵이 인공지능과 결합한 것은 내비게이션의 새로운 진화로  해석할 수 있다. 운전 중 음성 명령만으로 `누구` 스피커가 제공하는 30여 가지 기능 중 운전에 특화된 약 10가지를 사용할 수 있다. 커넥티드카의 비전을 빠르게 장악하겠다는 의지다.

KT의 기가지니는 IPTV와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원내비에 기가지니를 탑재해 인공지능 전략을 키운다는 전략도 세웠다. LG유플러스는 네이버와의 협력으로 스마트홈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클로바의 활동영역이 커지고 있다. 출처=네이버

통신사들이 탈 통신 비즈니스의 일환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다면, 포털 사업자들은 검색 기반의 큐레이션 솔루션을 활용하고 있다. 네이버는 클로바를 통해 조금씩 외연을 확장하고 있으며 글로벌 전략에도 활용하고 있다. 카카오는 카카오미니가 있다. 올해 카카오미니와 카카오 스마트홈을 통해 인공지능 전략을 구축한 후 카카오내비에도 인공지능을 탑재, 생태계 구축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