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미국과 중국의 2차 무역전쟁이 초읽기에 돌입했다. 두 나라는 6일부터 서로를 향해 340억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25% 관세를 매기는 치킨게임을 벌일 예정이다. 미국이 예정대로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중국 외교부와 국무원은 4일 브리핑과 성명을 통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면서 “미국 무역 패권주의에 머리 숙이지 않겠다”는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선제공격은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무역전쟁의 방아쇠를 먼저 당겼다는 논란을 피해가는 한편 유럽연합과의 공조도 모색하고 있다. 중국 현지 언론들은 ‘불사항전’까지 외치며 전의를 다지고 있다.

전초전은 이미 시작됐다. 두 나라의 통관 절차가 갑자기 까다로워지는 한편 중국인들의 미국 관광 제한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중이다. 6일 자정을 기해 미국이 340억달러 규모의 818개 품목을 겨냥해 1차 25% 관세를 매기는 순간, 두 나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ICT 반도체가 1차 타깃

중국 지방 정부가 3일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의 현지 생산과 판매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마이크론이 중국 현지에 2개의 공장을 운영하며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지만 전체 시장 규모로 보면 큰 타격을 입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를 심상치 않은 일로 보고 있다. 다양한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은 미국의 유일한 메모리 반도체 업계 강자다. D램만 봐도 1위 삼성전자와 2위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다. 중국이 지난해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D램 가격담합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중 무역전쟁의 잔초전으로 마이크론을 택한 것은 이상하지 않다.

흥미로운 대목은 마이크론의 본사가 미국 공화당의 텃밭이자 지난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몰표를 몰아준 아이다호에 위치한 지점이다. 중국 지방 정부의 마이크론 제재가 메모리 시장 전체로 보면 제한적인 타격이지만, 미중 무역전쟁의 큰 틀로 보면 심상치 않은 일로 평가되는 이유다.

▲ 마이크론이 중국 정부로부터 일격을 당했다. 출처=마이크론

마이크론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미중 무역전쟁은 ICT 반도체를 기점으로 확전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은 중국의 스마트제조 2025 로드맵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인공지능 분야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는 한편, 각 국의 인재를 모아 ICT 대국굴기를 완성하는 것을 탐탁치않게 본다는 뜻이다.

미국의 중국 ZTE 제재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ZTE가 이란과 무단으로 거래했다며 자국 기업과의 거래를 막는 강경한 행정명령을 내렸다. ZTE는 홍콩증시에서 상장폐지 가능성까지 나올 정도로 휘청였다. 다행히 트럼프 행정부가 ZTE에 대한 추가 제재에 나서지 않으며 사태는 소강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미국이 중국의 ICT 대국굴기 정책을 경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중국의 화웨이가 미국 시장 진출에 끝내 실패하고, 일각에서 미국이 우방국에게 차이나모바일과 협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압력을 넣었다는 말이 나오는 장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은 버틸 수 있을까

미중 무역전쟁이 5G부터 반도체 일반에 이르는 ICT 전체 인프라 업계에서 시작될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중국의 ICT 대국굴기, 특히 반도체 시장 경쟁력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반도체의 산업의 쌀로 불릴 정도로 핵심적인 전자제품이며, ICT 백년대계를 완성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에 나선 것도 결국 반도체 시장의 중요도를 명확히 이해했기 때문이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세계 최대 수준이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 자급률은 1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전량 해외에서 수입하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은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우한의 반도체 업체 XMC를 직접 시찰할 정도로 애정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기초체력이다.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시장 자생력은 막대한 자금 투입이 무색할 정도로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내에도 잘 알려진 칭화유니그룹의 자회사 창장메모리다. 2013년부터 16개 해외 반도체 기업들은 인수합병하며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32단 3D 낸드플래시 양산 목표는 올해 말로 잡았다. 삼성전자가 4년 전 양산에 돌입한 32단 3D 낸드플래시를 올해 말에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은 창장메모리, 즉 중국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기술력에 의문부호를 달리게 만든다.

D램은 더 우울하다. 중국 D램 업계의 기대주인 허페이창신은 3월로 예정됐던 새로운 시제품 개발에 실패했고 그 마저도 25나노 공정에 머물러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17나노 공정이며 SK하이닉스는 18나노 공정이다. 중국이 국내 반도체 인력을 빼가려는 행보를 계속 시도하는 이유다. 아무리 자금을 투입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내 반도체 인프라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팽패해져 있다.

미중 무역전쟁의 시작이 반도체에서 시작된다면, 중국은 한동안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특히 수급과 관련된 지점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텃밭에 본사를 가진 마이크론을 겨냥한 것까지는 좋지만, 그 이상의 ‘플랜’은 없다는 것이 문제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이 낮은 상태에서 수급 능력까지 떨어진다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이 장기화되면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어 잠재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있고, 무역전쟁이 짧게 끝나도 문제가 된다.

중국은 1차 무역전쟁 당시 미국의 대중적자 보존을 위해 마이크론의 반도체를 추가로 구입하겠다고 제의한 경험이 있다. 중국 정부는 큰 틀에서 유연한 정책을 구사할 수 있다는 뜻이며, 미중 무역전쟁이 종료된 후 두 나라의 관계가 정상화 전철을 밟을 때 미국과 화해한 중국이 반도체 굴기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 반도체 기업을 제재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