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예술과 ICT의 만남은 필연이다. 그러나 발전과 우려의 사이에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전자와 예술의 만남

예술과 ICT의 만남은 비단 박물관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실생활 속의 가전제품에도 예술의 가치가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 사례다.

삼성전자의 세리프TV를 보자. 특유의 디자인 감성을 내세워 많은 사람들에게서 호평을 받고 있다. 2016년 뉴욕현대미술관(모마)을 찾아가기도 했다. 세리프TV를 디자인한 세계적 가구 디자이너 에르완 부훌렉(Erwan Bouroullec)을 비롯해 유명 패션·인테리어 매거진, 업계 주요 인사, 미국 현지 기자 등 약 130명이 참석했다는 후문이다. 모마는 근현대 예술 거장들의 작품이 총망라돼 있는 미술관이며, 모마 스토어는 모마의 전문 큐레이터가 아름다운 디자인의 제품을 직접 선정해 판매하는 스토어로 잘 알려져 있다. 세리프TV는 모마 스토어의 첫 TV 판매다.

삼성전자는 세리프TV로 풀어낸 특유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여세를 몰아 더 프레임을 공개했다. TV가 꺼져 있을 때에도 그림과 사진 등의 예술 작품을 보여주는 ‘아트 모드’와 어떤 설치 공간과도 조화를 이루는 ‘프레임 디자인’이 특징이다. 단순히 영상 시청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공간을 갤러리처럼 만들어주는 개념이다.

아트모드는 제품에 내장돼 있는 예술 작품은 물론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사진이나 이미지를 화면에 띄울 수 있으며, 추가 콘텐츠 구매도 가능하다. 구본창, 얀 아르튀스-베르트랑(Yann Arthus-Bertrand) 등 전 세계 37명의 유명 아티스트 작품 100개를 기본으로 제공한다. 구매자 개인의 취향에 따라 본인이 보유한 사진 등의 이미지 파일을 활용하거나 TV 화면 또는 모바일 앱을 바탕으로 아트스토어에서 추가 콘텐츠를 구입할 수 있다.

조도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에 따라 밝기와 색상을 조정해 실제 그림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고 모션 센서를 통해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자동으로 TV를 꺼 불필요한 전력 소비를 막아주기도 한다. 본체는 차콜블랙 색상이나 소비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월넛, 베이지 우드, 화이트의 3가지 옵션 중 설치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상의 ‘프레임’을 선택할 수 있다.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 김현석 사장은 “과거에 TV는 제한된 공간에 놓여져 TV 또는 영상물 시청이라는 기능을 제공하는 데 머물러 왔다”면서 “앞으로는 집안 어디에서나 공간의 제약 없이 설치하고 사용자가 원하는 어떤 콘텐츠도 담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해 4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사진계의 거장 구본창 작가의 작품을 더 프레임(The Frame)으로 재정의해 눈길을 끌었다.

LG전자의 OLED TV도 유럽 문화에 녹아들었다. LG전자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 있는 헝가리국립오페라하우스(Magyar Állami Operaház)에 77형(모델명: 77EC98), 55형(모델명: 55EA98) LG 올레드 TV를 설치한 경험이 있다. OLED TV의 디자인 심미성을 극대화한 사례다. LG전자는 OLED TV의 강점을 알리기 위해 최근까지도 예술전에 참여하고 있다.

예술은 원래 기술과 한 몸… 비전과 우려

예술과 ICT의 만남은 시대의 흐름이다. 최근 갑자기 벌어질 일이 아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대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모나리자>로 유명한 예술가지만, 해부학자이자 사상가이며 과학자였다. 군수과학 분야에서 특히 두각을 보였다. 현재까지 남겨진 그의 수첩에는 초기 형태의 자동차, 비행기, 심지어 낙하산의 설계가 그려져 있으며 잠수기구도 있다. 두 개의 관을 통해 공기를 흡입하는 방식으로 잠수해 적군의 전함을 부수는 개인용 기구다. 또 아르키메데스의 아이디어에서 착안, 공성전 당시 해자의 물을 빨아올리는 양수기도 개발했다. 갑옷을 단숨에 관통하는 고성능 쇠뇌도 그의 손을 통해 탄생했다.

다빈치의 존재는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 오래 전부터 시도됐으며, 또 서로 영향을 미쳤음을 웅변한다. 그의 손에서 때로는 무기가, 때로는 아름다운 예술품이 등장한 것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술은 무언가를 원하는 지상의 행위며, 한때 종교와 만나 신성성을 부여받았으나 그 본질은 기술의 발전으로 표현의 영역을 키웠다.

두 영역은 함께 하면서 서로의 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정체성 훼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기술과 기술의 만남은 서로를 더 높은 곳으로 올리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체성의 훼손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