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BM이 개발한 인공지능 프로젝트 디베이터가 2016년 이스라엘 국가 토론 챔피언인 노아 오바디아와 토론을 벌였다.    출처= IBM Newsroom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에 또 하나의 흥미로운 대결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토론 배틀이다. 토론은 바둑이나 체스와는 달리 명확한 규칙이 있는 게 아니어서 승패를 가리기가 어려운 대결이다. 승패 자체가 주관적 판단에 달려 있다. 규칙을 분석하고 추론하는 데 능한 전통적 인공지능엔 익숙하지 않은 게임이다.

취재 기자들과 IBM 직원들이 조용히 앉아 있는 가운데, 검은색 기둥 같은 몸체(그렇다. SF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에 나올 법한 물건이다)의 디스플레이 화면에는 세 개의 파란색 공이 허공에 떠 있으면서 서로 앞 뒤로 움직이고 있다.

시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 디베이터(Project Debater)가 어떤 반박을 할 것인지 주시하며 기다리고 있다. 지금 한창 정부 보조 우주 탐사에 대해 인간과 컴퓨터가 토론하고 있는 중이다.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방금 2016년 이스라엘 국가 토론 챔피언 노아 오바디아의 4분 발언을 듣고 분석하고 있는 중이다.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IBM 연구팀(인공지능 왓슨(Watson)을 만든 사람들)이 최근 개발한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이다. 그동안 토론의 기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경험으로 생각돼 왔다. 토론은 우리가 쟁점이 되는 문제를 어떻게 관할하고 연구하는지에 관한 문제이며,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특히 최근에는 우리가 많은 시간을 인터넷에서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다.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수억개의 논문, 보고서 및 뉴스 기사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과 숫자를 쏟아내는 것은 토론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논쟁을 이길 수 있는 문장을 결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IBM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컴퓨터의 언어와 의사 표현 습득이 점점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IBM은 토론이 가능한 주제 몇 가지를 사전에 골랐지만 컴퓨터와 인간 모두 미리 토론 주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컴퓨터는 추론에서의 차이를 앞세워 인간을 맹렬하게 몰아세웠다.

정부 보조금을 이용한 우주 연구에 대한 토론에서 찬성자로 나선 컴퓨터는 신문과 방송 등 방대한 자료로부터 자신의 주장에 대한 논거를 이끌어냈다. 컴퓨터는 모두 발언에 이어 인간 전문가 토론자의 반론을 들은 후 재반론을 펼쳤다.

컴퓨터는 여성의 목소리로 “우주 개발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좋은 타이어에 투자하는 것과 같다”면서 정부 보조금을 이용한 우주 연구가 인간의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매우 건전한 투자라고 주장하며, 도로나 학교, 건강보험 등에 대한 투자보다도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IBM은 지난 2011년 IBM의 왓슨 컴퓨터가 제퍼디(jeopardy) 퀴즈 대회에서 2명의 인간 퀴즈 달인들을 물리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연구팀에게 토론용 컴퓨터 개발을 시작하도록 했다.

IBM의 토론용 컴퓨터는 방대한 자료들에 대한 단순히 검색을 넘어,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검색 엔진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알고리즘 기술을 이용해 검색된 자료들을 스스로 이해해 요약하고 이를 새로운 문장으로 만들어냈다. 또 아마존의 인공지능 알렉사나 구글의 음성인식과 비슷한 기술을 이용해 상대 인간 토론자의 질문과 답변을 이해하고 실제 사람의 소리와 거의 같은 소리로 토론을 이어갔다.

▲ 프로젝트 디베이터는 수 억 개의 논문, 보고서 및 뉴스 기사로 구성된 데이터베이스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나 사실과 숫자를 쏟아내는 것은 토론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논쟁을 이길 수 있는 문장을 결합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출처= TheVerge

IBM은 이번 컴퓨터와 인간 간 토론에서 승패를 가를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토론대회 챔피언으로 인간을 대표한 2명의 토론자 중 하나로 나섰던 노아 오바디아는 컴퓨터가 몇몇 공허한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무서운 토론 상대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특히 컴퓨터의 유창한 말솜씨와 빼어난 문장 구사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토론을 지켜본 영국 스코틀랜드 던디 대학의 토론 전문가 크리스 리드 역시 토론 상대자의 반격을 미리 예상해 처음부터 반론의 여지를 주지 않는 컴퓨터의 기술에 감탄했다고 말했다.

IBM의 다리오 길 AI 담당 부사장은 토론용 컴퓨터를 당장 상업화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이러한 AI 기술이 앞으로 변호사들이나 정보와 관련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 책임자인 IBM의 아르빈드 크리시나는 “인공지능은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며 기업 경영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상충되는 견해가 많은 기업 이사회에서 인공지능은 감정을 배제한 채 대화를 듣고 모든 증거와 주장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에, 증거에 기반한 의사 결정의 수준을 높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적 판단이나 편견에 치우칠 우려가 있는 반테러 정보 분석에서도 토론 인공지능이 유용할 것으로 보았다. 그는 “두 경우 모두 기계가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지만 의사결정 토론에서 또 다른 목소리로 참여해 의사결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험을 지적하거나 유용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의견도 있었다. 모든 인공지능이 그렇듯,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토론 로봇은 얼마든지 악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챗봇 등을 많이 쓰는 소셜미디어에서 그런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알렌 인공지능 연구소(Allen Institute for AI)의 오렌 에치오니 소장은 <MIT 테크놀로지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이벤트만으로 IBM 시스템의 능력을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공개토론이 아니라 사전에 잘 계획된 시연회이기 때문이다. 크리스티안 하몬드 노스웨스턴대 교수도 “IBM의 소프트웨어는 자신이 뭘 말하는지도 모르면서 단지 앵무새처럼 지껄인 것일 뿐”이라며 이번 이벤트는 일종의 일탈적 오락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이번 토론에서 프로젝트 디베이터의 답변은 인상적이긴 했지만 항상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그것이 아직은 인간과 동등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