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모바일 시대가 열리며 구글의 안드로이드와 애플의 iOS가 글로벌 시장을 정복하자 국내 ICT 업계도 자연스럽게 구글과 애플의 공세에 직면했다. 하드웨어의 자존심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보여줬으나, 핵심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에서는 구글 안드로이드 동맹군으로 활동하는 것에 그치며 제한적인 행보만 거듭했을 뿐이다. 포털 구글의 파상공세에도 네이버가 토종 ICT 플랫폼으로 인상적인 방어전을 펼쳤으나, 최근에는 글로벌 ICT 기업 역차별 논란이 불거지며 이 마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최근 글로벌 ICT 플랫폼 기업이 다시 국내 시장을 정조준하고 나섰다. 지금까지는 모바일 플랫폼 중심의 전략이 핵심이라면, 이제는 초연결 생태계 시대에 걸맞은 다양한 파생 플랫폼까지 범위가 확장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대표 사례가 넷플릭스와 아마존 AWS, 중국의 화웨이다.

▲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이 빨라지고 있다. 출처=넷플릭스

“넷플릭스, 공포의 대마왕”

글로벌 OTT(오버더탑) 시장의 강자 넷플릭스는 최근 많은 도전에 직면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에 일격을 당한 사업자들의 합종연횡이 불거지며 ‘타도 넷플릭스’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콘텐츠 왕자 디즈니는 지난해 넷플릭스와의 계약을 종료하는 한편 713억달러를 투입해 21세기 폭스 일부 사업부를 인수했으며 통신사 AT&T도 타임워너 케이블 인수에 합의하며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2011년 NBC유니버셜을 인수하는 한편 막판까지 21세기 폭스를 노린 컴캐스트와, 최근 콘텐츠 매출 비중을 높이고 있는 애플을 비롯해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서비스하고 있는 아마존도 큰 틀에서는 경쟁자다.

미국 방송사들의 연합체인 훌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강한 콘텐츠 전략으로 넷플릭스와 정면승부를 벌이고 있다. 디즈니가 21세기 폭스 사업부 일부를 인수하며 훌루 지분을 크게 늘린 대목이 중요한 이유다.

넷플릭스가 많은 견제를 당하고 있지만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시장의 최강자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2016년 글로벌 서비스 후 몸집을 크게 불렸으며 올해 80억달러의 콘텐츠 투자를 계획하는 등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중이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디즈니를 누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여세를 몰아 국내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주로 콘텐츠 투자, 수급과 관련된 전략이다. 넷플릭스는 케이블 방송사 딜라이브와 협력하는 한편 최근에는 LG유플러스와 손을 잡고 콘텐츠 제공에 나서고 있다. 많은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까지 제작하면서 가공할 위력을 보이고 있다.

결국 지상파 방송사가 나섰다. 지상파 방송사 협의체인 한국방송협회는 지난달 17일 "넷플릭스는 국내 진출 이후 다양한 방법으로 미디어시장을 장악하고자 시도해 왔지만, 지상파방송은 유료방송을 비롯한 미디어 산업계 전체와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우리나라 미디어산업 생태계를 적절히 보호해 올 수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 LG유플러스가 불합리한 조건으로 넷플릭스와 제휴하면서 지금까지의 미디어산업 생태계 보호를 위한 노력들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고 주장했다.

22일 KBS와 MBC 등 지상파 방송사 대표들은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을 만나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미디어 기업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 테레사 칼슨 AWS 공공부문 부사장이 클라우드 강점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공공 클라우드 AWS, 5G 통신장비 화웨이
초연결 인공지능 생태계의 핵심 관문인 클라우드 시장도 심상치않다. 민간은 물론 공공분야에 클라우드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것은 이제 시대적 명령이다. 클라우드는 온-프레미스 시대와 비교할 수 없는 보안 인프라를 확보했으며, 기술의 즉각적인 시너지 발생을 넘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즉각적인 대응 플랫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경우 클라우드를 도입하면 비용까지 획기적인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피터 무어 AWS 아태지역 공공부문 총괄은 21일(현지시간) AWS 공공부문 서밋 현장에서 “클라우드를 활용하면 IT 인프라 비용을 50% 이상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을 넘어 공공부문의 클라우드 도입은 당연한 수순으로 평가되지만, 미국 기업인 아마존 AWS가 국내 공공부문에 진입하려고 문을 두드리는 장면은 전혀 다른 가치판단이 필요하다. AWS의 강력한 글로벌 인프라가 국내의 취약한 클라우드 시장 인프라를 순식간에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장비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화웨이 딜레마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 통신3사가 5G 주파수 경매를 마친 상태에서, 오는 10월까지 통신장비업체를 선정하며 화웨이의 손을 잡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화웨이는 5G 주력 주파수인 3.5GHz 대역의 통신장비에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것으로 확인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에 밀리지만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에서는 최강자의 입지를 가졌기 때문에, 화웨이가 국내 5G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화웨이의 통신장비는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기술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화웨이가 최근 백도어(임의적 정보유출)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화웨이가 국내 통신3사를 통해 장비시장을 장악할 경우 토종 5G 경쟁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메기냐? 황소개구리냐?
넷플릭스와 AWS, 화웨이는 모두 핵심적인 ICT 플랫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세계적으로 검증을 받았으며, 강력한 존재감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국내 시장에 무분별하게 진입할 경우 토종 ICT 인프라가 파괴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당장 넷플릭스가 케이블 방송사, IPTV와 연합해 콘텐츠 볼륨을 키우는 한편 지상파가 우위를 가진 수급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지상파는 직접수신율이 5%도 되지 않는 등 플랫폼 권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주력인 콘텐츠 수급 역량도 빼앗기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넷플릭스가 지상파 붕괴 시나리오의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다.

일각에서는 넷플릭스를 우려하는 지상파의 시각을 ‘기득권의 몸부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상파는 비용절감을 이유로 외부제작사 비중을 높이면서 일종의 하도급 후려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 지점에서 넷플릭스가 강력한 콘텐츠 수급, 지원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에 진입하자 지상파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넷플릭스의 등장이 콘텐츠 다양성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도 있다. 지상파 주도의 콘텐츠 시장에서 볼 수 없었던 글로벌 트렌드의 콘텐츠들이 넷플릭스의 손에서 탄생한다면, 오히려 국내 콘텐츠 시장이 풍성해질 수 있다는 논리다. 국내 지상파들이 미국의 훌루와 같은 푹(콘텐츠연합플랫폼)을 성공적으로 키우면서, 전체 스트리밍 시장에서 넷플릭스와 경쟁하면 긍정적인 시너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신중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미디어렙(SMR)을 구성해 포털과 손을 잡고 유튜브를 몰아낸다는 취지로 가닥을 잡았으나, 지상파 콘텐츠만으로 유튜브를 견제하지도 못했고 15초 광고만 논란에 휘말렸다”면서 “사용자 경험에 집중한 새로운 전략이 넷플릭스 충격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넷플릭스가 일종의 메기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뜻이다.

AWS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의 클라우드 도입에 있어 미국 기업인 AWS를 100% 맹신하는 것은 지양해도, 최소한의 기회비용을 냉정하게 따져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글로벌 클라우드 인프라를 가진 AWS를 공공부문에 일부 열어주면서 AWS도 관심이 많은 인재 양성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국내 기업들이 AWS를 활용해 글로벌 인프라를 일종의 기반 플랫폼으로 삼도록 만드는 전략을 공공부문에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국내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AWS를 받아들인 공공부문과 연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당연히 비용도 아낄 수 있다. 테레사 칼슨 부사장은 20일(현지시간) AWS 공공부문 서밋에서 “IT예산의 80%가 유지보수를 위해 쓰인다”면서 “클라우드를 도입하면 커다란 유지보수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보안과 신속성, 기능의 강화를 확보한 클라우드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글로벌 1등 기업인 AWS가 혁신의 바람을 불어와 국내 클라우드 업체 전반의 경쟁력을 키우는 촉매제가 될 여지도 있다. 윤정원 AWS 코리아 공공부문 총괄은 “글로벌 1등 기업이라고 미워하지만 말고, 업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AWS의 행보는 황소개구리가 아닌, 메기효과와 맥을 함께한다. 다만 5G 통신장비 시장에서의 화웨이는 더욱 냉정한 판단이 주문된다. 국내 통신사 관계자는 “화웨이를 통해 국내 통신장비업체의 상생을 끌어낼 요인이 아직은 없다”면서 “핵심 통신장비 인프라 구축에 있어 각 통신사들이 화웨이의 손을 잡거나, 잡지 않았을 순간의 기회비용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감한 백도어 논란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 3월 국회에서 “화웨이 장비가 깔릴 경우 보안 문제가 이슈로 부상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화웨이의 국내 5G 통신장비 시장 진입을 우려한 바 있다. 유 장관은 지난 2월 MWC 2018 현장에서 메인 스폰서인 화웨이 로고가 새겨진 출입증 목걸이를 일부러 교체하며 경계심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