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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희의 밑줄 긋는 여행] 모든 꽃이 아닌 오늘의 꽃을 위한 꽃병, 도쿄의 ‘디브로스’

사물에는 ‘휴식 시간’이 있습니다. 사물의 휴식 시간이란 사물이 사용되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역설적이지만 대부분의 물건들이 사용 중인 시간보다 사용되지 않는 시간이 더 깁니다. 꽃병도 예외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가정집에서는 꽃병을 사용하지 않을 때 꽃병을 보관하는 것이 번거로운 일 중의 하나입니다. 꽃의 길이나 형태에 따라 어울리는 꽃병을 다 사다 보면 꽃병들이 너무 많아져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집니다. 집이 작아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는 그 불편함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이런 이유로 꽃병을 살 때는 어떤 꽃을 꽂아 두어도 위화감이 없을 만한 기본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을 선택하게 됩니다. 꽃은 개인 취향이나 기분에 따라 살 수 있어도, 꽃병만큼은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에 제약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도쿄의 디자인 제품 브랜드 디브로스(D-BROS)가 만든 꽃병은 사용자의 편의뿐만 아니라 꽃과의 조화까지 고려해 기존 꽃병의 불편함을 없앴습니다. 디브로스 꽃병의 가장 큰 특징은 유리나 도자기처럼 꽃병을 만들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소재가 아닌 ‘비닐’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꽃병을 비닐로 만드니 시각적으로 눈에 띄는 것은 물론이고 보통의 꽃병이 가진 불편함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비닐로 제작했기 때문에 꽃병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납작하게 접어 간편하게 보관할 수 있습니다. 평평하게 펴진 꽃병은 종잇장처럼 얇아 기존의 화병에 비해 보관에 대한 부담이 극적으로 줄어듭니다. 게다가 접어서 보관을 하니 꽃병 바닥에 먼지가 쌓이지 않아 매번 사용할 때마다 별도의 세척이 필요 없다는 점도 장점 중의 하나입니다. 꽃병 보관에 대한 공간적 부담이 줄어 들고, 사용 과정상의 편의도 올라간 셈입니다.

▲ D-BROS의 비닐 꽃병 ⓒ트래블코드

비닐 소재는 공간적 여유와 더불어 꽃병 디자인에도 확장의 기회를 더합니다. 소재나 금형을 바꿔야만 새로운 디자인을 출시할 수 있었던 기존의 화병과 달리, 같은 모양의 비닐 위에 다른 일러스트를 입히기만 하면 보다 쉽게 신제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컬러와 패턴을 조합해 현재까지 약 60가지 디자인이 개발되었습니다. 사이즈도 미니, 레귤러, 라지 등 3가지가 있어 꽃의 크기나 개인의 취향에 따라 꽃병을 구비할 수 있습니다. 보관에 대한 부담도 줄고, 선택지마저 다양해지니 고객들은 기존처럼 모든 꽃에 어울리는 무난한 디자인의 꽃병만을 선택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어쩔 수 없이 취향을 포기하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꽃병을 고르고, 모든 꽃에 어울리는 꽃병보다는 오늘의 꽃에 어울리는 꽃병을 기꺼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소재의 변용으로 불편함을 해결한 디브로스는 광고 및 브랜드를 기획하는 드래프트(DRAFT)의 제품 브랜드입니다. 드래프트는 고객사를 위한 제품을 제작하다가 고객사의 사정에 의해 제품 개발에 차질이 생기는 경험을 거듭하자, 자체적으로 제품을 만들기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사내에 신설한 제품 개발 부서가 점차 발전해 현재의 디브로스가 된 것입니다.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체 기술력의 한계를 느낀 디브로스는 일본 전역의 장인들을 찾아 나섭니다.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고, 거기에 자신들의 디자인 역량을 더해 컵, 시계, 양초, 메모지 등의 자사 제품을 개발합니다.

디브로스는 자사 제품을 만들기 위해 장인과 협업하는 것을 넘어 일본의 우수한 전통 공예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합니다. 2017년에 개점한 긴자 최대 백화점 긴자식스의 6층에는 디브로스의 플래그십 매장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닐 꽃병은 물론 교토, 오사카, 오이타 등 각 지역 장인들과 합작한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디브로스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일본의 전통 문장(紋章)을 모티브로 리디자인한 생활 용품을 일본의 장인들이 직접 제작합니다. 현대적인 그래픽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약 350개의 문장들은 각 지역 장인들의 손을 거쳐 도자기, 부채, 도시락통 등에 구현됩니다. 일상적인 물건들이지만 동시에 경외감이 드는 예술작품이기도 합니다.

▲ D-BROS와 일본의 장인들이 협업하여 만든 부채와 대나무 젓가락 ⓒ트래블코드

디브로스는 디자인이 행복한 소통을 만들어 내는 힘을 갖고 있고, 그 힘을 세련된 모습으로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디자인 철학에 기반해 출시한 다양한 제품들은 하나같이 디자인의 기능성과 장식성을 살려 사용자에게 감각적인 디자인이 지닌 즐거움을 전달합니다. 디자인에 대한 탄탄한 철학이 다양한 범주의 제품들을 ‘디브로스’라는 정체성으로 아우릅니다. 디브로스가 상상력을 펼칠수록 일상이 즐거워지는 이유입니다.

최경희 트래블코드 이사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8.06.30  08: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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